사유 많이 시청해주세요🩵
Q 이낙연의 사유 시작하길 잘했다 느끼는 순간?
제가 현실 정치에서 이렇게 물러난 뒤로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유튜브를 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하나 생겼다고 느끼지요. 요즘 이 유튜브가 제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하고 가장 재미를 느끼는겁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즉시 경질하라]
국가기관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조직범죄 가능성과 공범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경찰에 의한 엽기 살인사건이다. 골든타임을 일부러 흘려보낸 고의범이다.
유재성 경찰청장 대행에게 책임을 물어 즉시 경질하라!
한성숙 국무총리가 제주 사건만 수사하라고 한 것은 축소, 은폐다.
전국 실종사건을 전수조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https://t.co/SZzTDZm27u
나는 글을 다루고 사유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주장에 함부로 '궤변(詭辯)'이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최근 진보 언론의 상징이라 불리는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을 마주하고서는, 그 원칙을 처참하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긴 한 줄의 문장은 단순한 궤변을 넘어, 민주 공화국을 떠받치는 근대 법치주의에 대한 완벽한 사상적 파산 선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한 것을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대통령을 끝까지 설득하든 자신이 양보하든 관행을 지켰어야 했다. 국정에서 관행은 법률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눈을 굳게 감고 다시 활자를 곱씹어 본다. 평생을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법의 지배를 부르짖어왔던 원로 언론인의 입에서, "국정에서는 관행이 법률보다 우위"라는 마피아 조직에서나 통용될 법한 망발이 튀어나왔다. 헌법 104조가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고유한 임명제청권을 '법대로' 행사한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권력자와 밀실에서 티키타카를 하던 '짬짜미 관행'을 법보다 우위에 두고 숭배하라니. 평생을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온 대법원장에게, 법전 대신 뒷골목의 룰을 따르라고 훈계를 두는 저 기괴한 뇌 구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건의 본질은 자명하다. 사법 리스크의 올가미에 목이 졸린 이재명 체제가 대법원을 자신들의 사적 방탄 로펌으로 사유화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강요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위헌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내 헌법적 권한은 여기까지이니, 불만이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해 역사적 책임을 지라"며 서면을 툭 던진 것이다. 이것은 관행 파기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권력의 외압에 맞선 사법부 수장의 가장 외롭고도 차가운 헌법적 저항이다.
그런데 성한용 기자는 이 헌법적 저항을 짓밟기 위해 또 하나의 끔찍한 궤변을 동원한다. 그는 과거 대법원이 대선 직전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것을 두고 "만약 파기자판으로 피선거권을 박탈했다면 시민혁명이 일어나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며 협박에 가까운 겁박을 늘어놓는다. 심지어 대법원장을 향해 헌법의 가장 기본인 국민주권 원리를 모르는 무자격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사법부의 합의된 판결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 조롱하고, 161석의 입법 완력을 쥐고 사법부를 협박하는 것을 국민주권이라 포장하는 이 지독한 인지부조화. 이쯤 되면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성한용이 아니다. 이재명이라는 1인 수령을 옹위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과 펜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안성한용', 완벽하게 부패해 버린 '상(傷)한용'일 뿐이다.
법치의 심장인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야 할 언론인이, 오히려 권력자와의 밀실 관행에 순응하라고 대법원장에게 훈장질을 하는 사회. 헌법이 명시한 권한 행사보다 1인 교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더 숭고한 국정 철학으로 찬양받는 나라. 이재명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언론마저 스스로 이성의 목을 매달고 궤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작금의 풍경이야말로, 자유주의의 붕괴를 알리는 가장 서늘하고도 비극적인 전조(前兆)다.
차마 끝까지 뉴스를 지켜보기조차 괴로워 기사 링크는 가져오지 않았다. 스무 살,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이 40대 주점 사장에게 끔찍한 짓을 당하고도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발생 52일 만에 경찰이 피해자에게 보낸 서류는,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차가운 불송치 통보서 단 한 장이었다. 그 종이 쪼가리를 받아 든 청년은 사흘 뒤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차가운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상식의 눈으로 이 기가 막힌 수사 과정을 뜯어보자. 사건 당일 청년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만취 상태였다. CCTV에는 대화 도중 눈물을 훔치고 가해자에게 질질 끌려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심지어 청년의 휴대폰에는 사건 전후로 성폭력을 당했다거나 죽고 싶다며 지인들에게 보낸 절규의 메시지가 명백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신고 당일 단 한 차례 피해자를 부른 것이 전부였다. 휴대폰을 열어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합의된 관계였다는 가해자의 뻔뻔한 변명만을 덥석 물어 사건을 서둘러 덮어버렸다.
청년이 목숨을 끊으며 남긴 이의신청서가 접수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그나마 두 달 뒤면 법 개정으로 영영 사라져 버릴 그 알량한 보완 수사 요구라도 내려졌다. 청년이 자기 목숨을 내던지지 않았다면 이 끔찍한 범죄가 경찰의 서랍 속에서 영원히 묻혔을 것임을 증명하는 서늘한 팩트다. 권력자들의 방탄을 위해 망가뜨린 제도가 평범한 서민의 생명줄을 썰어버린 완벽한 제도적 타살이다.
이 비극을 마주하며 과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그널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빽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 짓을 해도, 잘 먹고 잘 살아요.?"
좌파 성향의 대중들은 화면 속 형사가 토해내는 저 정의로운 절규에 미친 듯이 열광했다. 현실과 가상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실제 배우 조진웅의 범죄까지 감싸고 돌았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저 대사에 열광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하던 그들은, 정작 극 중 이재한 형사의 그 서늘한 물음 앞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는가.
그들이 맹신하는 이재명 체제가 만들어낸 2026년의 대한민국이야말로, 돈 있고 빽 있는 범죄자들이 가장 살기 좋은 완벽한 생지옥이다. 자신들이 추종하는 정치인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그들은 사법 시스템의 최소한의 견제 장치인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무자비하게 거세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일선 경찰이 가해자의 말만 듣고 대충 사건을 덮어버렸을 때, 힘없고 빽 없는 서민은 억울함을 호소할 마지막 비상구조차 사라진 끔찍한 사법 생태계가 완벽하게 구축된 것이다.
드라마 속 명대사에는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던 그 얄팍한 감수성으로, 정작 현실에서는 권력자들의 방탄을 위해 사법 제도를 난도질하는 짓에 열렬히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 소름 끼치는 인지부조화와 집단적 몽유병이 합작해 낸 결과, 빽 없는 스무 살 청년은 가해자의 뻔뻔한 변명 한마디에 짓밟힌 채 차가운 바닥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그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혐오해 마지않던 바로 그 부패한 세상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열어 제낀 셈이다.
진정한 정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에게 자아를 의탁해 열광하고 환호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억울한 자들의 비명을 외면하게 만든 이 기괴한 사법 시스템의 붕괴를 똑바로 직시하고, 그 법을 만든 자들에게 준엄하게 책임을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죽음으로 이의를 제기해야만 비로소 국가가 돌아보는 이 잔혹한 나라를 합작해 낸 권력의 공범들은 기억하라.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라면, 스크린 밖의 이 차가운 죽음 앞에서 처절하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바꾸고 뜯어고쳐야만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병에 걸려 있다. 특히 정치권이 그렇다. 문제가 생기면 그들은 늘 이렇게 윽박지른다. 대안 없이 반대만 하지 마라. 시도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니냐.
하지만 상식의 눈으로 대답해 보자. 대안이 왜 없는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현행 유지를 하는 것, 그냥 가만히 냅두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대안일 수 있다.
최근 국제의회연맹 자료를 바탕으로 한 주요국 연간 통과 법률 수를 보면 두 눈을 의심하게 된다. 영국 36건, 프랑스 62건, 미국 68건, 일본 91건.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국회는 1년에 법을 채 100건도 통과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는 무려 2,277건이다. 다른 나라들이 1년 내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기 다루듯 애지중지 신중하게 법을 다듬을 때, 우리 국회는 공장에서 붕어빵 찍어내듯 하루에만 예닐곱 개의 법을 마구잡이로 뜯어고치고 통과시킨다는 뜻이다.
이 미쳐버린 숫자가 도대체 정상으로 보이는가. 법이라는 것은 국민의 일상과 경제의 밑바닥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무서운 약속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도 세계 선진국들의 가장 훌륭한 법리들을 차용하고 다듬어 만들어 낸 꽤나 훌륭한 시스템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법이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가장 최근 제정된 탓에 그 장단점을 잘 취합해 만든 굉장히 잘 개선되고 정교한 법 체제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던 어느 법학자의 소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1년에 수천 건씩 법을 뜯어고치며 누더기로 만드는 작금의 미친 폭주 앞에서는, 그 법학자의 자랑스러운 소감마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판이다.
도대체 왜 더불어민주당은 이토록 숨 막히게 법을 난도질하고 뒤엎으려 드는가. 제발 그걸 왜 바꿔야 하는지 상식적인 납득부터 시켜보라는 국민의 절규에는 귀를 막은 채, 무조건 시도해야 한다며 억지를 부린다.
이 비정상적인 입법 폭주를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서늘한 의심 하나가 고개를 든다. 이것은 단순히 국회의원들이 실적을 채우려는 얄팍한 꼼수가 아니다. 여태껏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모범적으로 성장해 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 자체를 깡그리 부정하고, 국가 체제를 아예 다른 방향으로 뒤집어엎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개혁과 적폐 청산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붙여 놓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념적 입맛에 맞게 국가를 재설계하겠다는 폭력말이다. 징벌적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을 부수고,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규제 법안을 쏟아내며, 심지어 입맛에 안 맞는 판사를 압박하려 사법부의 룰까지 뜯어고친다. 특히 정말 걱정되는 보완수사권 폐지. 1년에 2천 번씩 법을 뒤집어엎는 국회는 헌정 질서를 지키는 입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허물고 그 위에 자신들만의 전체주의적 성을 쌓으려는 철거반처럼 느껴진다면 과한 표현인가?.
멀쩡하게 잘 굴러가던 나라의 뼈대를 뒤흔들며 대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자들에게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둔다. 우리는 당신들의 그 무모한 시도와 얄팍한 실험을 원한 적이 없다. 제발 섣불리 뜯어고치려 들지 말고, 확신이 없거든 차라리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 두어라. 멀쩡한 법을 흉기로 만들어 국민의 삶을 옥죄는 입법 폭주를 멈추는 것. 지금 이재명 체제의 거대 여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위대한 대안은, 제발 아무 법도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있어 주는 것뿐이다.
내가 죽은 뒤에 대홍수가 오든 말든 상관없다(Apres moi, le deluge). 18세기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이 남긴 이 소름 끼치는 망언은, 오직 당장의 권력 유지나 사치에 눈이 멀어 국가의 미래를 절벽으로 밀어 넣는 부패한 권력의 무책임함을 상징하는 역사적 격언이다. 그리고 2026년 8월, 대한민국 국회 한복판에서 이 18세기의 파괴적 망언이 합법적인 국가 분식회계의 탈을 쓰고 완벽하게 부활했다.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기간전력망법 개정안의 껍데기는 제법 그럴싸하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전력망 공사를 3년간 한시적으로 민간 업자에게 맡기되, 공사가 끝나면 소유권을 한국전력에 무조건 넘기게 하여 좌파 지지층이 발작하는 민영화 논란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의 속내를 뜯어내고 현장의 숫자를 들이대는 순간, 그 이면에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고금리 사채를 끌어다 쓰는 이재명 체제의 악랄한 폰지 사기극이 도사리고 있다.
원래 국가 전력망 공사의 상식적인 룰은 이렇다. 한전이 5퍼센트 안팎의 금리로 자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 뒤, 민간 건설사에 돈을 주며 시공을 맡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예를 들어 100원의 비용으로 국가 인프라가 완성된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기괴한 법안은 이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민간 업자가 알아서 자기 돈으로 전봇대를 세우고 전선을 깐 다음 훗날 한전에 청구서를 내밀라는 것이다. 여기서 치명적인 숫자의 마술이 발생한다. 신용도가 높은 한전은 5퍼센트로 돈을 빌릴 수 있지만, 건설 업체들이 시장에서 돈을 융통하려면 12퍼센트 이상의 살인적인 고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당신이 건설사 사장이라면 내 돈으로 먼저 공사를 한 뒤 나중에 한전에게 정산을 받을 때, 원래 받기로 했던 100원만 달라고 하겠는가. 당연히 시장에서 끌어다 쓴 12퍼센트의 사채 이자에 무려 시공사의 이윤까지 얹어 150원, 200원의 청구서를 들이밀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새로 통과된 이 법안은 이러한 민간의 고금리 이자와 이윤까지 전부 국가가 보장해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100원이면 끝날 국가 사업을, 굳이 150원의 세금을 퍼부어가며 민간 사채업자들의 배를 불려주겠다는 꼴이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왜 이토록 멍청하고 기괴한 손해 보는 장사를 법으로 강행했는가. 목적은 단 하나다.
지금 당장 이재명 정권의 임기 동안 발생할 정부와 공공기관의 장부상 지출을 3년간 지워버리기 위한 교활한 회계 조작이다. 겉으로는 정부 지출을 줄여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는 척 코스프레를 하면서, 그 이면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다음 정권과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폭탄으로 돌려막기를 한 것이다. 내 임기 중에는 100원의 지출도 잡히지 않게 장부를 분식하고, 3년 뒤 임기가 끝날 즈음 불어난 150원의 고금리 청구서는 다음 정권이 세금으로 갚으라는 참담한 폭탄 돌리기다.
국가 인프라 건설을 핑계로 사채를 끌어다 쓰고 그 빚을 후대에게 떠넘기는 짓을 우리는 결코 국정 운영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라는 법인을 숙주로 삼아 벌이는 거대한 배임 행위이자 범죄다.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를 위장하기 위해 국가의 펀더멘털에 고금리 사채의 빨대를 꽂아 넣은 자들. 내 권력의 임기만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다음 정권과 청년들이 수백조 원의 이자 폭탄에 익사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저 끔찍한 도덕적 파탄. 대홍수가 오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이재명 체제의 이 야만적인 폭탄 돌리기를 지금 멈추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받아들 훗날의 청구서는 단순히 전기 요금 인상에 그치지 않고 국가 파산이라는 처참한 결말로 돌아올 것이다.
국민의힘이 유튜브 정치에 빠진 것이 아니라 레거시 미디어가 언론의 참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만만한 야당 비판 기사나 주로 쓰고, 올림픽공원, 참정권, 부동산 문제는 축소하거나 청와대 항의받고 제목을 바꿔주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의 최고 사명은 거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곽종근을 개인 유튜브에 협박성으로 출연시켰고, 앞다투어 김어준 쇼에 나가 정책 설명하기 바쁘다.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 입틀막법에 쫄지 말고!
[대한민국이 중국인의 ATM기가 됐다]
한국에서 단 1개월만 일한 중국인도 국민연금을 타 먹을 수 있다.
중국에 이렇게 퍼주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중국인이 댓글로 “이재명 연임”을 응원하고,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중국인의 몰표를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중국에 굴종하고 중국인의 이권을 챙기기 때문이다.
중국 간첩과 댓글 조작을 잡아내고, 중국인 선거 참여를 폐지하지 못하면 우리 국익을 지킬 수 없다.
당장 중국인의 우리 세금 빼먹기를 중단시키고 강력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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