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보다 호헌이 먼저다>
나는 오랫동안 개헌을 주장해 왔다. 18대 국회(2008~2012)에서는 의원 182명이 함께한 헌법연구회 공동대표로 일하기도 했다. 나는 권력구조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나는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개헌보다 호헌이 먼저라는 것이다.
개헌의 초점은 권력구조(정부형태)에 쏠리게 돼 있다. 권력구조는 국회와 정부의 관계 또는 거리로 정해진다. 순수 대통령제는 국회와 정부를 분립한다. 의원내각제는 그 둘을 융합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절충형이다. 어느 권력구조도 사법권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은 흔들 수 없는 전제라는 뜻이다.
민주주의 부동(不動)의 전제로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 독립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이 현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명하다. 헌법을 고치는 것보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둥을 지키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특히 사법권 독립을 위협하는 세력이 개헌을 주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깨우침이다. 사법권도 선출권력의 하위에 있다고 말한 사람이 대통령이다.
개헌의 또 다른 성역은 대통령 임기연장 규정이다. 헌법 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못박았다. 대통령들이 임기연장을 위해 개헌하곤 했던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국민적 결의에서 나온 규정이다. 그러나 국무총리는 "5년은 짧다"고 운을 띄웠다. 법제처장은 그 조항의 개정여부도 "국민이 결단할 문제"라고 했다. 그들이 개헌을 주도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개헌을 하더라도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첫째, 사법권 독립은 지켜져야 한다. 둘째, 헌법 128조 2항도 지켜져야 한다. 한마디로 개헌보다 호헌이 먼저다. 헌법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개헌을 백지위임할 수는 없다.
<고립의 시대>
원제 '외로운 세기'.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최신 저서. 날렵한 문장과 풍부한 사례로 현대 사회를 해부한다.
저자의 진단은 이렇다. 만연한 외로움은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해치고, 사회경제적 비효율을 키운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와 포퓰리즘을 배양한다. 히틀러 지지자들의 특성은 야만과 퇴보가 아니라,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였다. 트럼프 지지층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적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포퓰리스트들은 국회의 본래적 기능, 독립적 법원과 자유 언론을 '악당'으로 몰아세운다. 세계에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주변화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극단주의 정당으로 몰려든다.
요인은 많다. 사람들은 하루 평균 221회, 3시간 15분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계산기가 암산 능력을 망가뜨렸듯이, 디지털 혁명은 공감 능력과 소통 능력을 약화시킨다. 소셜미디어는 사회를 심술궂고 잔인하게 만든다. 단기계약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노동방식과 경제시스템(긱 이코노미)은 고립을 심화시킨다. 재택근무의 증가는 직장 내 연대를 와해한다. 재택근무자들은 활력을 잃고 우울해지기 쉽다. 가림막도, 정해진 자리도 없는 사무실(오픈 플랜)에서 사람들은 집중하지 못하고 고립돼 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설적이게도, 실리콘밸리의 총아 스티브 잡스는 자녀들의 디지털기기 사용 시간을 제한했다. 빌 게이츠는 아이들이 14살 될 때까지 휴대전화를 주지 않았다. 영국은 2018년 정부에 '고독부'를 설치하고 장관을 임명했다. 독일 주간신문 '디 차이트' 기자들은 정치 양극화와 진영주의 심화를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2017년 기자들은 서로 모르고 정치 스펙트럼이 반대인 사람들을 두 명씩 짝지어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게 했다. 4만 명이 참가한 이 시도는 '의미심장'한 결과를 냈다.
비대면 기술에서 앞서가는 한국은 '고독의 위기'에 더 취약할 수 있다. 권력은 법원과 언론을 옥죄고, 사람들은 정치적 무기력에 빠졌다. 독재와 포퓰리즘은 사람들의 고립감과 무기력을 먹고 자란다.
<'은중과 상연'을 보고>
주변의 권유로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봤다.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단숨에 봤다. 알려진 대로 좋아하고 미워하다 죽음 앞에 화해하는 두 여성의 30년 서사. 자칫 신파처럼 흐를 수도 있는 스토리를 긴장감 넘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청자를 몰입시킨 것은 작가의 역량이었다. 스토리의 탄탄한 구성과 구어체, 도치법 대사가 압도적이었다. 당연히 '은중'과 '상연'의 상반된 캐릭터가 긴장의 최강 요소. 잔혹과 가련, 집요와 연약 같은 극단의 양면성을 표현한 '상연' 박지현의 열연이 돋보였다.
죽기 전날 '은중'에게 건네는 '상연'의 말을 포함한 대사의 미학이 나는 좋았다.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몇 마디만 소개해 본다.
"재밌었어. 네가 쓴 이야기. 네가 그걸 마저 쓰면 나는 이야기 속에 영원히 사는 거니까."(상연)
"내일 해뜨는 것을 볼거야. 내 마지막 태양에게 인사해야지."(상연)
"답이 없다는 걸 알아. 그래도 너의 시간을 같이 겪을게."(은중)
이 드라마는 '조력사' 이슈를 사회에 정면으로 던진 작품이다. 특히 조력사의 절차와 과정을 드러내 우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아시아 아프리카와 달리, 유럽과 미주에는 조력사를 합법화한 나라가 적지 않다. 이젠 이 문제도 우리 사회의 토론에 오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상연'의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의 토론이다.
"적어도 나한테 고통을 거절할 권리는 있잖아?"
<어느 쪽을 성공시킬까>
정부 여당의 사법권 파괴가 본격화했다. 우려했던 것보다 더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
그들은 검찰청을 없애기로 했다. 검사들은 보완수사도 못하고 기소만 담당할 것 같다. 수사는 행안부 산하 두 기관이 나누어 맡고, 경찰은 비대해진다. 수사와 기소의 최고 목표는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다. 이 '검찰개혁'이 그런 목표달성에 좋을지는 별로 논의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법원파괴다. 특히 대법원장 축출공작은 난폭하다. 여당에서 "사퇴하라"고 하자, 대통령실은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더니 말을 바꿨다. 말은 바꿨지만, 의도는 바꾸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논의한 적도, 논의할 계획도 없다"고 했으나, 여당은 사퇴, 탄핵, 대법원 대구이전 등 전방위로 옥죄고 있다. 급기야 대법원장이 대통령대행을 만나 재판을 얘기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들이댔다. 독재시대에도 없던 폭거다.
'사법개혁'은 따로 있다.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다양화, 법관 외부평가 도입 등 5개항이다. 법원에 정권의 입김이 들어가기 쉽게 만드는 내용이다. 또 다른 꿍꿍이도 있다. 대통령의 5개 재판에 오른 죄목들을 법에서 삭제해 '면소' 판결을 끌어내거나, 대통령 공소를 취소하는 것 등이다. 법치주의를 초토화시키는 무차별 포격이다.
그런 움직임들은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를 지우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대법원장 축출공작도 대통령 선거법 위반사건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때문이라는 것을 그들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12개 혐의를 모두 무죄 또는 면소로 만들 때까지 이런 소동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대통령 연임 개헌을 띄웠다.
대한민국은 운명의 기로에 내몰렸다. 만약 권력이 대통령 무죄(또는 면소) 만들기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서 '실패'하게 된다. 반대로 그런 무죄 만들기에 '실패'하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회복에 '성공'할 수 있다. 어느 쪽을 성공시킬 것인가. 그 중대한 선택이 대한민국 앞에 놓였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추석인사를 겸해 평산으로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을 아내와 함께 찾아뵈었습니다. 근황과 지난 일, 그리고 막걸리 얘기 등 여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내외분께서는 매우 건강하게 지내시며 여기저기 의미있는 곳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평산도 올 여름은 몹시 더웠다고 하십니다. 충만한 가을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3대 위기>
지금 한국은 3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우려했던 대로다. 위기가 멎기를 바란다.
첫째는 민주주의 위기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부터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의 5개 재판이 모두 중지됐다. 법원은 헌법 84조(대통령의 불소추특권)를 이유로 들어, 다수의 헌법해석을 뒤집었다. 검찰청 폐지를 포함한 검찰개혁 실험은 막바지에 왔다. 위헌시비를 받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더해 대법관 증원, 법관 외부평가제 도입 등으로 사법부 장악까지 서두른다. 이게 대통령의 사법리스크와 무관할까. 개인리스크가 국가리스크로 번졌다. 괴이한 인사로 공직사회가 도덕성에 둔감해지게 됐다. 언론은 주눅들었다.
둘째는 경제 위기다. 물가상승과 청년실업증가는 이미 심각하다. 한미관세협상이 정리되지 못해 철강과 자동차 등의 대미수출이 급감했다. 대미 투자액 5,000억 달러(695조 원)는 내년 예산안 규모(728조 원)에 필적한다. GDP대비 일본의 2배, EU의 7배다. 국민 1인당 1,350만원 꼴이다. 삼성전자의 작년 총투자액이 90조 원이었음을 감안하면, 695조원은 재정과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게다가 투자금의 사용처도, 수익배분도 미국이 정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1.000억 달러 에너지 구입을 따로 약속했다. 이제 기업들은 국내투자와 고용을 줄일 것이다. 그러쟎아도 주력산업인 석유화학이 무너졌고, 철강도 흔들린다. 그런데도 산업과 수출 대책보다 '빚내서 돈뿌리기'가 두드러진다. 국가부채 급증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래서는 미래가 위태롭다.
셋째는 대외관계 위기다. 정부도 대외관계의 근간으로 인정한 한미동맹이 불안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한국에 대한 불신을 거칠게 표출한다. 한국측은 혹시 모를 정치적 불상사는 피했지만, 턱없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했다. 그 와중에 중국, 러시아, 북한은 연대를 과시하고 나섰다. 한반도 정세의 유동성이 되레 커졌다. 대외정책 기조를 완벽하게 다듬고, 일관되게 지켜 나가야 한다. 표변에 무능이 겹치면 최악이다.
<한미정상회담 일주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관세(15%?)와 투자(3,500억+1,500억달러?) 등에는 안개가 끼어 있다. 양국 정부의 설명도, 언론의 보도도 많이 다르다. 진실이 무엇인지, 정부는 설명하고 언론은 취재보도해야 옳다.
한국측의 설명은 대체로 피상적이다. "경제통상 안정화, 동맹 현대화, 새 협력분야 개척 등 3대 목표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양 정상이 (서로를 칭찬하며) 호감과 신뢰를 쌓았다. 합의문이 필요없을 만큼 얘기가 잘됐다.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추가개방은 않기로 했다. 관세와 투자 등은 추가협의가 필요하다. 투자수익은 재투자 개념이다."
미국측은 꽤 구체적이다. "그들(한국)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거래는 끝났다. 그들(일본 포함?)이 9,500억 달러를 내기로 했다. 미국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도, 비관세장벽도 없애기로 했다."(트럼프 대통령) "일본, 한국 등이 내는 돈으로 국가경제안보기금을 만들고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자금을 댈 것이다."(러트닉 상무장관) "반도체 다음으로 조선업에서 미국이 지분을 가질 수 있다."(베선트 재무장관) "한국의 투자수익중 90%는 미국이 갖는다."(레빗 백악관대변인) "중국관련 정책과 방위비 문제로 분쟁이 있었다."(뉴스맥스)
미국측의 발언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를 읽기는 쉽지 않다. 서로 칭찬했다지만, 외신은 한국측의 '아첨'을 꼬집었다. 한국의 '숙청이나 혁명'을 언급한 트럼프의 SNS는 살아 있다. 한미관계의 불안정과 북중러 정상회동 움직임 등 한반도 정세는 유동성이 높아졌다.
한미 양쪽의 차이를 보면, 3대 목표에 성과가 있었다는 정부 설명은 불충분해 보인다. 불확실한 관세, 1년 예산에 육박하는 투자 규모와 어이없는 개념, 농축산물 추가개방 여부는 속히 정리돼야 한다. 비공개 회담에서는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합의문은 왜 없었는지도 설명돼야 한다.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는 더욱 절박해졌다. 정부의 정직한 설명과 언론의 치열한 규명이 시급하다.
<DJ 16주기>
김대중 대통령께서 떠나신 지 벌써 16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세상도 변하고, 대외환경도 변했습니다. 그래도 김대통령의 철학과 생애는 우리에게 여전히 가르침을 던져 줍니다.
김대통령은 1987년 민주화 개헌 10년 후에 대통령으로 당선하셨습니다. 그의 당선 자체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로서 정치적 민주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김대통령은 복지와 인권이라는 경제 사회적 민주화를 추진하셨습니다. IT산업과 한류의 기반을 다져 국가 선진화의 초석을 놓으셨습니다. DJP연합 등 전무후무한 보혁연정으로 국민통합을 시동하셨습니다.
김대통령은 필생의 철학인 햇볕정책으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셨습니다.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에 국회의원 특사단을 보내 사전설명을 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그 일원으로 미국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은 4강 모두의 지지를 받았고, 노벨평화상으로 세계의 평가도 얻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4강 모두의 지지를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그것은 탈냉전이라는 당시의 세계질서와 김대통령의 일관된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였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받고 있습니다. 정신 나간 비상계엄을 응징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했으나, 현실에서는 법치주의 파괴와 포퓰리즘 횡행이 민주주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의 IT와 문화 육성 같은 국가미래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포퓰리즘이 돋보입니다. 대외적으로 김대통령은 "한미동맹은 운명"이라고 말씀하실 만큼 한미관계를 중시하며, 그 전제 위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구축하셨지만, 지금은 한미동맹을 비롯한 4강 관계가 뒤틀리고 있습니다.
인사에 대해서도 김대통령은 "선거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자리는 능력있는 사람에게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들의 법적 문제가 생기자 김대통령은 국민께 진정으로 사과하셨습니다. 김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을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듯합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이 책을 꽤 오래 전에 꼼꼼히 읽었다. 이 책에 나오는 베네수엘라, 헝가리, 폴란드, 페루 등 독재자들의 사법부 파괴가 최근 국내에서 자주 인용됐다. 나는 미국 민주주의가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한 과정에 많이 끌렸다.
첫번째 위기는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민주) 때였다. 1937년 재선한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의 강력한 추진을 위해 보수적인 대법원을 재구성(court-packing)하고 싶었다. 그는 70세 이상의 대법관 숫자만큼 증원하려 했다. 그러나 야당 공화당과 법조계 등에 이어 민주당 의원들까지 반대하자 그는 계획을 포기했다.
두번째 위기는 매카시즘이었다.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미국에 위기감이 고조됐던 1950년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공화)은 공산주의자 축출을 주장해 선풍을 일으켰다. 그 인기 때문에 공화당 대선 후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도 한때 그와 함께 유세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가 당선한 뒤 상원은 공화당 의원까지 합세해 매카시를 불신임 결의했다. 그것으로 매카시 소동은 끝났다.
세번째 위기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공화)의 위터게이트 도청과 거짓말이었다. 1974년 상원은 닉슨 탄핵안을 상정했다. 닉슨은 탄핵부결에 필요한 34표를 확보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배리 골드워터 의원을 통해 닉슨에게 전달했다. 골드워터가 "탄핵반대는 많아야 10표도 안 된다"며 설득하자, 닉슨은 이틀 만에 사임해 탄핵을 피했다.
세 차례 모두 여당 내부의 결단으로 미국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했다. 위기마다 여당이 정파적 승리보다 민주주의 살리기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정당이면 민주주의 파괴도, 동료의 심각한 허물도 두둔하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한다. 번갈아 여당 노릇을 하는 두 정당이 도긴개긴이다.
이낙연,
"참담하고 부끄럽다”
“사법붕괴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진다. 사법이 붕괴하면 해외투자를 받기도, 수출을 늘리기도 어려워진다. 법치주의가 허물어진 곳에 누가 투자를 하며, 수입을 늘리겠는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두렵지 않길 바란다”
https://t.co/ZCduuO2F2l
<사법붕괴 신호탄인가>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서울중앙지방법원도 대통령 재판을 무기 연기했다. 두 법원은 모두 헌법 84조를 이유로 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는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마침 민주당은 대통령 재판중지법 처리를 보류했다. 두 법원의 처사가 사법붕괴 신호탄인지, 두렵다.
대통령 재판도, 헌법 해석도 중대한 사안이다. 그만큼 절차를 밟으며, 권위 있게 결정해야 한다. 대법원의 설명처럼 '개별 법원의 판단'에 떠넘길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재판의 계속 여부는 대법원이, 헌법해석은 헌법재판소가 최종결정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되도록 검찰과 법원이 결단하기를 바란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이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법과대학들은 이 불소추특권으로 '취임 전 재판까지 중지한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게다가 헌법 68조는 대통령 자격상실 사유의 하나로 '판결'을 명시했다. 대통령도 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재판 중지를 결정한 판사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배운 대로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사법부마저 가담한 꼴이 됐다. 국가 위기의 가장 깊은 원인은 엘리트들의 도덕적 이완이라고 생각한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일부는 미국도 이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은 법체계가 다르다. 미국은 법으로 상세히 규정하지 않고 판사의 재량을 넓게 인정하는 영미법 체계다. 한국은 법으로 최대한 규정하고 판사의 재량을 좁게 인정하는 대륙법 체계다.
이번에 재판을 줄줄이 연기하면, 5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혹시 더 무리한 방법이라도 쓸 것인가. 어려운 짐을 미래에 넘기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어렵더라도 이번에 정리하도록 사회의 지혜와 용기를 모았으면 한다.
사법붕괴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붕괴로 이어진다. 사법이 붕괴하면 해외투자를 받기도, 수출을 늘리기도 어려워진다. 법치주의가 허물어진 곳에 누가 투자를 하며, 수입을 늘리겠는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두렵지 않기를 바란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연이은 수면 부족에 잠시 숨을 고릅니다. 다하지 못한 것들은 다음을 기약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라 여깁니다. 불안한 미래와 예견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새로운 시민들이 보여준 ‘진보적 보수성’입니다. 이념과 지역을 넘어 사람을 보는 진보. 도덕성과 태도, 정통성을 가늠하는 입체적 보수. 역사의 진보보다 시민의 진보가 더 빠릅니다. 멀리 보고, 앞을 살피며 차분히 나아갑니다. On your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