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좌절하고 외롭고 절망하는 때가 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혼의 치유사’ 독일 철학자가 말해줍니다. 인생은 그네타기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상승하면 반드시 하강하는 것이고, 그 리듬이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누구도 어김없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을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어느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은 책,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낙연의 사유,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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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복지를 늘렸기 때문에 재정난이 생긴 것이 아니다.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도민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이와 고령인구가 함께 늘어나니 보육과 교육, 돌봄과 의료, 교통과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도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출산율 늘어나면 나라 망함?
[이재명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종착지는 결국 국정의 만신창이인가?]
권력의 집중은 곧 책임의 집중을 의미한다.
국정 전반을 직접 틀어쥐는 '만기친람'의 통치 스타일을 고수해 온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결국 '만신창이 국정'이라는 위험한 경계에 다다르고 있다.
대통령의 결단이 많아질수록 민생은 흔들리고, 안보에는 구멍이 뚫리며, 사법 정의는 비틀거린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만기친람인가.
첫째, 사법과 민생 현장의 비명이다.
보완수사권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대통령이, 정작 보완수사권을 사실상 무력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앞에서는 거부권 요구를 외면한 채 법안을 그대로 처리했다.
그 결과 보완수사의 길은 막히고, 공소기각과 공소취소의 쌍칼을 틀어 쥐는 법적 환경만 조성됐다.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 서 달라는 국민의 절규는 외면당했다.
만기친람의 칼끝이 향한 곳은 과연 국민의 정의인가. 아니면 권력을 위한 방패막이인가.
둘째, 개헌을 둘러싼 비루한 침묵이다.
국가 백년대계와 권력구조 개편이 논란의 중심에 선 지금, "연임은 없다"는 한마디면 끝날 일을 대통령은 끝내 하지 않고 있다.
정족수를 핑계 대고 현실론을 앞세우는 사이 국민적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명확하고 정직한 선언 없이 가능성만 열어둔 채 기회를 엿보는 정치는, 결국 권력 연장 의지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노골적인 정치적 계산이다.
셋째, 카지노판으로 변질된 자본시장이다.
레버리지 ETF 등 고위험 상품의 성급하고 조잡한 정책 운용은 한국 증시의 변동성을 극단적으로 키웠다. 정부를 믿고 시장에 뛰어든 개미투자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희망이 아니라 손실과 절망이었다.
투기성 단기자금이 시장을 좌우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국제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우려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직접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넷째, 민생을 위협하는 부동산 폭정이다.
세제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세금폭탄은 집값을 잡기는커녕 국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마저 위협하고 있다.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을 지키던 고령층마저 수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은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헌법적 권리 침해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월세 대란이 에고 되고 있다.
폭등을 막지 못한 정책 실패를 징벌적 과세로 덮으려는 발상은 민생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 뿐이다.
다섯째, 구멍 뚫린 안보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최전방 장병들에게 빈 총을 지급하는 어처구니없는 경계태세가 드러났다. 이는 대북 굴종 기조가 군 전반에까지 스며든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급기야 미군 무인기를 오인 격추할 뻔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한미 안보 공조에도 불안 신호가 켜졌다.
안보망 곳곳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대통령의 책임 있는 설명과 대응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통치권의 무거운 권한은 국민의 삶을 지켜낼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피해자를 외면한 사법, 계산만 앞선 개헌, 도박판으로 전락한 자본시장, 거주의 자유를 흔드는 부동산 정책, 그리고 빈 총을 든 안보.
만기친람이 국정 장악을 의미할 수는 있어도, 국정 실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만에 가득찬 광란의 폭주가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모르는 국민들은 혼란과 짜증의 공포에 내몰리고 있다
국정이 더 깊은 만신창이로 추락하기 전에 대통령은 스스로의 통치 방식과 국정 기조를 근본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지금 국민 앞에 져야 할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이다.
몇 년 전 경찰 무능한 새끼들이 우리 밑에집 애가 뭔 짓을 했는데 주소를 착각해 우리집에 찾아와 문두드리고 안가고 밖에서 계속 있어서 내가 집 안에서 공포에 떨었던거 생각하면 자다가도 개씨발새끼들 욕이 절로 나옴 첨엔 경찰인 줄 몰랐고 건장한 남자 셋이서 벨누르고 문두드리고 또 욕나오네
검사 수사권 폐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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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전국 형사법 전공 학자 62인 의견문
검찰개혁과 보완수사권에 대한 형사법 전공 학자들의 의견
우리는 지금 검사의 보완수사권까지 폐지하려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정치적 논의를 지켜보면서 법학자의 학문적 양심에 따라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첫째, 수사ㆍ기소의 분리가 수사ㆍ기소의 단절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탄핵주의 관점에서 소추의 권한을 다시 나누어 수사와 기소의 주체를 분리하는 방향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분리하더라도 수사에 대한 검사의 통제는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탄핵주의에 따라 과거 법원이 보유하던 소추 권한을 검찰이 행사하게 된 후에도 영장제도와 공소기각, 공판절차에서 법원의 직권조사 등을 통해 법원이 검사의 소추권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둘째, 경찰 수사의 통제 및 보완의 수단으로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찰의 수사에 대한 통제 방법으로 검사의 수사지휘, 보완수사, 전건송치 등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는 검사가 원칙적으로 직접 수사하지 않고 경찰의 수사를 법률적으로 지휘하는 글로벌 표준, 곧 보편적 방법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 정부에서 직접 수사를 일부 유지하면서도 수사지휘권을 폐지한 데서부터 검찰개혁의 방향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수사지휘권의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으로 보완수사가 가능해야 하며, 보완수사의 완결성을 위해 전건송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보완수사 요구권만으로는 경찰의 수사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셋째,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남겨두면 공소청이 과거의 검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염려는 보완수사권 폐지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수사ㆍ기소의 분리에서 중요한 것은 수사를 개시하는 주체와 수사를 종결하는 주체를 분리하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를 개시한 사건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검사가 보완수사를 하는 것은 과거의 검찰이 무제한적 수사권을 가지고 인지수사 등 수사개시, 종결을 통해 수사권을 남용했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완수사권 남용의 위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는 공소청 내 수사인력의 제한 등 다른 제도적 장치로 통제해야 한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가 검찰권 남용을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아닐뿐더러, 이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의 폐해가 더 크다.
넷째, 특별사법경찰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는 계속되어야 한다. 특별사법경찰은 ‘사법(司法)’의 업무를 위임받을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아니라, 수사 관련 업무를 극히 예외적으로 담당하는 행정부의 공무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司法)’적 업무의 일부를 담당하는 검사의 지휘를 폐지하는 것은 사법절차의 일부인 수사과정에서 적법절차 위반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별사법경찰에 대해서는 검사의 수사지휘가 유지되어야 한다.
다섯째, 검찰개혁과 보완수사권의 문제는 정치공학의 논리가 아니라 사법절차의 법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수사절차는 사법절차인 형사절차의 첫 단계이다. 따라서 검찰개혁과 보완수사권 등의 현안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법절차의 법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보완수사권 전면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은 모두 정치적 진영이
달라서 그렇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형사소송법의 개정을 충분한 숙의 없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개혁’의 방식에 대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026.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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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심판인가, 선수인가
지금 한국 증시는 10년 전 중국 증시를 닮아간다.
2015년 중국은 정부와 관영 매체가 증시 상승을 부추기고 신용거래를 키웠다. 거품이 무너지자 매도 제한, 공매도 단속, 국가자금 투입 등으로 급히 규칙을 바꿨지만 결과는 신뢰 붕괴였다. 웃기는게 투자자들은 기업가치보다 정부의 다음 조치를 먼저 살피게 됐고, 중국 증시에는 더 큰 위험에 빠졌다.
지금 한국도 비슷하다.
외화 유출 막고 증시 활성화한다며 삼성/SK하이닉스 같은 핵심 종목에 2배 레버리지 상품을 얹었다. 오를 때는 추격 매수가 상승을 부추기고, 내릴 때는 기계적 매도와 손절이 하락을 키우는 구조다. 위험은 처음부터 뻔했다. 그러나 수조 원이 몰리고 개미들이 다친 뒤에야 예탁금을 올리고 거래를 제한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정부는 심판이어야 한다. 그런데 직접 선수로 뛰어들어 점수를 올리려 했고, 증시와 경제가 엉망이 되자 이제 와 규칙을 바꾸고 있다. 급등할 때는 정부 성과로 부각하고, 폭락하면 개인들 책임이란다.
정부가 자유 시장의 심판이란 위치를 망각하고 특정 방향으로 돈을 몰아 가격을 띄우고, 실패한 뒤 사후 규제로 뒤집는 것은 시장 왜곡이다.
2015년 중국은 관제 증시의 대가를 치렀다. 지금 한국은 그 실패를 그대로 복습하고 있다.
어제 코스피 시장을 보라. 판은 정부가 깔고, 손실은 개미가 떠안고, 헐값 매수 기회는 외국인이 가져갔다면 이것은 정부가 만든 투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