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이 복이다.>
"그때는 참 어려웠던 것을
잘 극복하고 지나고 보면
‘그게 더 복이었구나’ 할 때
이를 전화위복이라고 해요.
재앙이 복인 줄 알면
세상에 복 아닌 것이 없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일부러 만들 건 없지만
닥치는 재난을 굳이 피할 것도 없어요.
오히려 잘 극복하면 복이 된다,
이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두려워할 것이 없어요."
-법륜스님-
일본 심리상담사가 알려준 관계 정리 기준
“싫은 사람과 6개월 동안 연락을 완전히 끊어도 전혀 불안하거나 아쉽지 않다면, 그 관계는 정리해도 좋다.”
팔로우를 끊고, 연락처를 지우고, 필요 없는 연결을 과감히 자르는 것.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더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고 한다.
진짜 중요한 관계는 6일만 안 봐도 불안할 정도로 소중하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미련 없이 놓아주는 게 나를 위한 선택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만 쓰자.
심리학에 따르면,
좋아하는 카페나
익숙한 공간을 자주 찾는 사람은
감정 회복이 빠른 편이라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익숙한 장소는
뇌에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경계심과 긴장을 조금씩 낮춰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창가 자리,
늘 듣던 음악이 흐르는 카페,
자주 걷던 산책길처럼
반복해서 찾는 공간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힘들 때마다
괜히 그곳으로 발길이 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낯선 곳에서
에너지를 쓰고,
익숙한 곳에서
에너지를 회복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 하나쯤은 필요하다.
지쳤을 때
다시 나를 원래의 나로
돌아오게 해주는 곳.
그런 공간이 있는 사람은
무너져도 오래 머물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힘도
조금 더 빠르다.
5/ Then prove it with evidence.
Mention things like: ✅ Certifications ✅ Personal projects ✅ Freelance work ✅ Open-source contributions ✅ Portfolio improvements ✅ Interview preparation
Evidence beats excuses.
회사 생활에서 내가 잘못 짚었던 부분
1. 상사들이 내 성과를 잘 기억해줄 거라는 생각
업무를 직접 맡겨준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 결과를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보고서를 제출하면 상사가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있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인정해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사들도 수많은 업무와 미팅, 보고에 치여 있어서 한두 달만 지나면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2. 도움을 준 동료들이 고마워하며 관계가 쌓일 거라는 생각
프로페셔널한 환경에서는 내가 베푼 만큼 신뢰와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쌓인다고 생각했다.
야근하면서 동료 업무를 도와주거나, 어려운 부분을 대신 해결해주면 나중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든든한 관계가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회사 특유의 업무 중심 문화에서는 “그게 본인 역할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움을 줘도 특별한 감사나 호감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다음에도 “너는 잘하니까” 하면서 더 많은 일을 떠넘기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착각 때문에
결국 성과는 기록하고 알리고, 관계는 기대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연애가 금방 끝나는 이유
1. 대부분의 관계는 사랑이 부족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2. 상대한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일 때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면서 멀어진다.
3. 오래 가는 관계는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점을 발견했을 때도 쉽게 단정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오래 간다는 것
4. 좋아할 때는 누구나 다정하다.
5. 진짜 중요한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에도 상대를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태도다.
6. 어른의 사랑은 설렘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발견한 뒤에도 포용해주는 자세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관계를 좋아하는 줄 알았음.
연락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인간관계의 본질인 줄 알았음.
근데 살다 보니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관계 자체보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인 것 같음.
신기하게도
사람은 혼자 밥 먹는 건 괜찮아도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은 잘 못 견딤.
그래서 회사도 다니고.
동호회도 가고.
커뮤니티도 하고.
SNS도 함.
정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내가 소속되고 싶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도 비슷함.
커피가 맛있어서 가는 카페도 있지만
그냥 편해서 가는 카페도 있음.
주인도 알고.
자주 오는 사람도 알고.
굳이 말을 안 해도
익숙한 분위기가 있는 곳.
그런 곳은 이상하게 오래 다니게 됨.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음.
나를 특별히 좋아해 주지 않아도.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어딘가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생각보다 큰 힘이더라.
그래서
인맥보다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말을
조금 이해하게 됨.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곳.
내가 없어지면 조금 허전할 것 같은 곳.
예전에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안 떨고.
발표도 잘하고.
도전도 잘하고.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줄 알았음.
근데 살다 보니까
생각보다 자신감은 성격이 아니더라.
기억이더라.
내가 해본 기억.
망해본 기억.
버텨본 기억.
다시 해본 기억.
그게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였음.
신기하게도
한 번에 잘된 사람보다
계속 떨어져 본 사람이
나중에는 더 안 무너지는 경우가 많음.
이미 실망도 겪어봤고.
창피함도 겪어봤고.
거절도 겪어봤으니까.
예전에는
실패가 경력에 마이너스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함.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안 죽는다는 걸 배우는 과정 같음.
그래서 나이 들수록
성공한 사람보다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 더 대단해 보임.
한 번 잘하는 건 운도 가능함.
근데 계속 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신뢰 문제니까.
생각보다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못 믿어서 멈추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요즘은
잘할 수 있을까보다
안 되면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까를 더 생각함.
살면서 진짜 힘이 된 건
“나는 잘할 수 있어.” 라는 믿음보다
“망해도 다시 할 수 있어.” 같음.
신형철 평론가 인터뷰 너무 좋네.
"요즘 시가 안전해졌다는 말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하기도 했지만 그런 현상이 또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에요. 예전 시집에 불온하고 전복적인 에너지가 넘쳤던 건 그런 청년 정신의 거친 언어를 드물게 허락했던 공간이 시였기 때문이었겠죠.
https://t.co/hTpaOEu8d4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에 돈을 쓰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시간을 보내라고. 짧은 문장이지만, 읽고 나면 한동안 멍해진다.
우리는 대부분 반대로 살고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사랑, 우정, 추억, 평온함 같은 것들을 돈으로 대체하려 하고, 정작 돈으로 해결될 것들에 시간과 감정을 쏟아붓는다. 더 좋은 물건을 갖기 위해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포기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잊는다.
풍요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숫자를 먼저 생각한다. 통장 잔고, 평수, 연봉. 그런데 진짜 풍요는 어쩌면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 계획 없이 걷다가 마주친 저녁 하늘, 오랜 친구와 나눈 별 것 없는 대화, 혼자 조용히 앉아 마신 커피 한 잔.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시간을 내지 않으면 영영 경험할 수 없다.
하루키의 말은 소비를 부정하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는 기꺼이 돈을 쓰라고 한다. 다만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돈이 닿지 않는 곳에 삶의 진짜 무게중심이 있다는 것. 그 무게중심을 붙잡고 있을 때, 비로소 삶은 가벼워지지 않고 단단해진다.
가난, 외모, 인간관계가 드러내는 불편한 진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냉정하다.
1. 가난해지면 친구가 사라진다
형편이 좋을 때는 함께 웃고, 술을 마시고, 미래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돈이 바닥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순간, 그 관계의 실체가 드러난다.
연락이 뜸해지고, 약속이 자꾸 미뤄지며, 결국 존재 자체가 잊힌다. 이는 단순한 배신이 아니다. 많은 인간관계가 암묵적인 거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관계가 나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가’를 계산한다. 가난한 사람은 그 효용이 떨어져 보이고,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진다. 진심이었던 관계도 서서히 얇아지고, 결국 빈자리만 남는다.
2. 외모는 첫번째 관문이다
같은 실력, 같은 노력, 같은 태도라도 외모가 평균 이하라면 기회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취업 면접, 소개팅, 네트워킹, 일상적인 사회적 만남 어디에서든 보이지 않는 필터가 작동한다.
사람들은 첫인상에서 이미 가능성을 재단한다. 이는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뇌가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가깝다. 문제는 이 판단이 한 번 내려지면 좀처럼 뒤집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못생겼다’는 평가는 ‘능력도 별로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어지고, 그 추측은 실제 기회를 앗아간다.
3. 돈이 없으면 인품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아무리 성실하고,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해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사회는 돈을 기준으로 사람의 무게를 잰다.
가난은 인격까지 가려버리는 두꺼운 커튼이 된다.
‘착한데 가난하다’는 평가는 종종 ‘현실 감각이 없다’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치환된다. 반대로 돈이 많으면 성격의 결함조차 ‘개성’이나 ‘카리스마’로 포장되기 쉽다. 이는 공정하지 않지만, 현실이다.
4. 가장 깊은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서 온다
가족, 친구, 연인 —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깊이 찌른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상처는 선명하고, 오래 남는다.
멀리 있는 사람의 비난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등을 돌리거나, 실망시키거나, 이용할 때 느끼는 배신감은 뼈아프다. 그들은 당신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가 더 깊고, 치유도 더디다.
5. 남의 불행을 은밀히 반기는 사람들
내가 실패하거나 망하게 되면, 겉으로는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몰래 안도하거나 기뻐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 성공이 부담스러웠던 사람들, 비교당하는 게 싫었던 사람들, 혹은 단순히 남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상대적 우위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
이들의 미소 뒤에 숨겨진 작은 만족감은 쉽게 눈치채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비교를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 추락이 그들에게는 은근한 안도감을 준다.
6. 결국 진짜 내 편은 부모뿐일지도 모른다
세상 누구도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이익이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하지만 부모만큼은 내가 아무리 떨어지고 망가져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이 사실은 때로는 슬프다.
세상이 그만큼 차갑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일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사랑은 거래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7.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얻는 사람이 있다. 이는 잔인한 현실이다. 노력과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더욱 냉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잔인함을 직시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만 좇다 보면, 결국 더 깊은 절망에 빠지기 쉽다. 냉정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냉정함을 인정하고, 그래도 내 길을 가는 것.
외모를 바꿀 수 없다면, 실력과 태도로 승부할 수 있는 영역을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기반을 천천히라도 만들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면, 그 상처를 통해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대면서도, 스스로 설수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세상은 당신이 기대하는 만큼 따뜻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이유도 되지않는다.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그래도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냉정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저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