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ldong70 내가 진짜 딴건 다참는데 문통 한게 뭐있나 말하는 입을 닥치라고 하고싶음🤡
윤석열 당시 국민 반이 지지했던거 까먹음?!
점잖으니 지네 맘대로 쑤셔대도 되는듯이 은혜도 감사함도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라고(나는 문파도 팬도 아니지만 훌륭한 분이란건 압니다)
추미애의 '재정빨대' 발언 의도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소방 예산 약 1조 5천억 원 중 경기도가 여전히 약 90% 수준을 부담해야 하는 구조적인 재정 문제를 지적한 것인데 야당인 국힘이야 그렇다치고 지지율 추락으로 궁지에 몰린 김민석을 비롯한 뉴일베들은 아주 난리가 났구만. 민주당의 지지율을 깍아먹는 위험한 존재는 '맥락맹'들, 국힘의 사고와 전혀 다르지 않다.
실제 발언 내용.
2026년 10월 13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을 언급하며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 인건비만 하더라도 2027년에 1조 1천�� 원을 잡아먹게 된다"
비상계엄 시기 대통령지정기록물, 내용도 아닌 '목록'만 공개하라는 판결에도 대통령기록관은 항소했습니다. 재판 내내 "무엇이 지정��는지 알 수 없다"던 기관이 뭘 더 다투겠다는 걸까요? 다섯 달 전 확정된 세월호 판결과 나란히 짚었습니다.
https://t.co/Dz3TqavbD7
지금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으로 있는 정을호가 발의했다는 이른바 대한교육기관법 개정안의 실체를 뜯어보면 실소가 터져 나온다. 교육의 중립성을 위반하거나 사회 통념에 벗어난 교육을 하는 대안학교는 아예 등록을 거부하고 시설을 폐쇄하겠다는 것이 뼈대다. 그리고 그들이 들이민 교육 중립성 위반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승만 건국 대통령 업적 가르치기다.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을 가르치는 것이 사회 통념에 위배되어 학교 문을 닫아야 할 중범죄로 취급받는 나라. 이것은 교육 정책이 아니라, 국가가 뇌수 속의 사상까지 통제하겠다는 섬뜩한 전체주의의 선전포고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이미 좌파 진영의 거대한 정치적 병참 기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른바 민주 시민 교육이라는 거룩한 포장지를 ���워 반미, 친북, 왜곡된 평등주의를 주입하는 거대한 사상 공장말이다. 전교조와 좌파 교육감들이 수십 년간 진지전을 충실히 수행하며 공교육이라는 진지를 완벽하게 장악하며 그들은 아마도 공립학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아이들이 좌파의 세계관을 표준 규격으로 장착한 맹목적 유권자로 대량 생산될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10대와 2030 세대를 보라. 그 거창한 사상 개조 프로젝트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스마트폰과 커뮤니티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실시간으로 팩트를 교차 검증하는 뉴미디어 세대에게, 80년대식 낡은 선동과 주입식 이념이 통할 리 만무하다. 입으로는 평등과 개천의 가재를 외치면서 뒤로는 자기 자식들의 입시 스펙을 위조하고 특목고에 꽂아 넣는 그 역겨운 내로남불을, ���년 세대는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조롱하고 있다. 교육 통제만으로 인간의 사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기계적 표준화 공정이 완전히 파산했다는 이 서늘한 팩트를, 오직 우물 안에 갇힌 좌파 기득권 자신들만 모르는 눈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붕괴해 가는 통제 시스템에 또 다른 치명적인 버그까지 생겼다. 획일화된 좌파식 공교육에 염증을 느낀 학부모들이 기꺼이 자기 지갑을 열어 아이들을 기독교 대안학교나 보수적 가치관을 가르치는 미인가 대안학교로 빼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안학교들의 성과는 좌파의 뼈를 때린다. 국가 지원금 한 푼 받지 않고도, 우수한 커리큘럼을 통해 해외 명문대 진학률을 압도적으로 높이며 글로벌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해외 명문대로 진학한 이 엘리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체득한 채 사회의 주류로 성장한다면, 이것은 좌파 기득권 카르텔에게 자신들의 ���제 붕괴를 의미하는 가장 끔찍한 악몽이다.
여기서 아주 상식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저들이 그토록 지워버리지 못해 안달 난, 소위 리박스쿨의 이승만과 박정희가 대체 누구인가. 한 명은 적화통일의 위협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뼈대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세웠고, 다른 한 명은 폐허가 된 나라의 거시경제 기반을 닦아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밀어 올렸다.
반면 좌파 진영이 신흥 종교처럼 떠받드는 자들의 면면을 보라. 뇌물을 받고 검찰 조사를 받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대통령,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며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대통령, 그리고 거시 경제와 외교 안보가 뇌사 상태에 빠졌는데 고작 야구장 암표 근절에 핏대를 세우며 영웅 행세를 하는 현직까지 아주 볼 만하다.
이게 양심적으로 비교나 될 법한 잣대인가. 누굴 미화���거나 띄우자는 말이 아니라 공과 과를 공평하게 평가해봐도, 좌파의 그 어떤 거룩한 위인을 데려다 놓아도, 폐허 속에서 국가의 체제와 경제의 근간을 세운 두 거인의 공로에 비빌 수 있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기는 하는가 말이다.
이러니 나를 자꾸 보수쪽으로 더 기울게 만드는 게 바로 너희 좌파라는 얘기다.
문익환의 정신을 기리는 대안학교는 버젓이 등록을 허가해 주면서, 우남 이승만을 가르치는 학교는 사회 통념 위반이라며 폐쇄하겠다는 저 기괴한 이중잣대는 결국 콤플렉스의 발로다. 자신들의 자식들은 온갖 편법과 위조를 동원해 해외 유학과 의대 진학의 스펙을 만들어 주면서, 평범한 학부모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선택한 대안학교의 사다리는 이념의 잣대로 무참히 걷어차 버린다. 이것이 바로 평등을 입에 달며 부동산 시장을 파괴했�� 좌파가 교육까지 망쳐버리려는 패악질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승만을 가르친다고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저 투명한 조바심은, 결국 그들의 얄팍한 좌파 ���념이 자유로운 사상의 경쟁 시장에서는 단 하루도 자생할 수 없는 열등한 불량품임을 스스로 만천하에 고백하는 처절한 항복 선언에 불과하다.
우남 가르치면 극우세뇌교육 "교육은 국가의 것이 아니다!" - 이태희 그안에진리교회 담임목사 | 261015 | 이지현 사무총장 ... https://t.co/yd3ZzINnwV 출처 @YouTube
♤ 윤석열 1기 국회의원 출신 장관
추경호, 원희룡, 권영세, 박진, 이영, 김현숙
♤ 이재명 1기 국회의원 출신 장관
정성호, 윤호중, 김윤덕, 김성한, 안규백
정동영, 전재수
각각 정부 출범 초기, 내란 전임을 감안
하고 보면 전공/경력 면에서 이재명 내각이
객관적으로 나아 보임?
먼저, 밤늦은 시간까지 제 글을 꼼꼼히 읽고 이토록 긴 감상문을 남겨주신 정성에 건조한 감사를 표합니다. 비꼬기 위해 동원하신 현학적인 칭찬들도 기꺼이 받아두겠습니다.
다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참으로 실소가 터져 나오는 모순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제게 "허락 없이 캡처해서 조리돌림을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셨지요. 그런데 애초에 제 글을 허락 없이 멘션 걸고, 본인의 입맛대로 인용하며 저격의 불씨를 당긴 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 본인 아니셨습니까? 본인이 남의 글을 끌어다 쓰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고, 제가 그 논리의 빈곤함을 해부하기 위해 인용하는 것은 '효수(梟首)'이자 폭력이�� 느끼신다면, 그 얄팍한 내로남불의 감수성부터 스스로 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자, 선생님께서 '건조하게' 털어보자고 하셨으니, 저 역시 감정을 완벽히 배제하고 선생님의 그 길고 감정적인 텍스트가 품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들을 하나씩 쪼개어 드리겠습니다.
첫째, 사법 시스템에 대한 지독한 몰이해입니다.
선생님은 묻습니다. "헌재의 결정을 ��중해야 한다면서, 박 검사는 왜 자신의 직무정지 징계에는 반발하느냐. 하나만 해라"라고요.
이 문장을 읽고 저는 선생님이 법치국가의 기본 시스템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이 나라 최고 규범에 대한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사법적 결론입니다. 반면, 박상용 검사가 받고 있는 징계는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거대 여당의 압박과 그에 굴복한 행정부인 법무부가 내린 '부당한 행정 처분'이자 정치적 탄압입니다.
법을 수호하는 검사가, 정치적 보복에 불과한 행정 징계에 맞서 싸우는 것과, 국가 최고 사법기관의 헌법적 판결을 존중하는 것이 어떻게 모순이 됩니까? 오히려 부당한 행정 권력에는 저항하고, 헌법의 최종 판결은 승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일관된 '뼈대 있는 법조인'의 자세입니다. 이 둘을 구분조차 못 한 �� "왜 하나만 안 하냐"고 따지는 것은 통쾌한 일침이 아니라, 그저 기초적인 법 상식의 파산을 자백하는 것일 뿐입니다.
둘째, 사적 트라우���를 '사상 검증'의 무기로 삼는 폭력성입니다.
선생님께서 과거 조선족 댓글 부대를 추적하다가 겪으셨다는 그 지독한 살해 위협과 미행의 공포, 자택까지 추적당해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그 끔찍한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 서늘했던 고립감과 두려움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뼈아프게 들리시겠지만 한 가지는 명확히 하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과거에 겪은 그 끔찍한 사적 피해가, 오늘날 최전선에서 이재명과 좌파 카르텔의 범죄를 캐내다 유배당한 현직 검사를 향해 '사상 검증'의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는 면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배신당하기 싫어서, 피아 식별을 위해 분별하는 것뿐이다"라고 포장하셨지요. 하지만 법을 다루는 공직자에게 "내 입맛에 맞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않으면 너도 언제 변절��지 모르는 적이다"라고 윽박지르는 것. 그것은 분별이 아니라 '광기'입니다. 내 과거의 상처가 너무 크고 억울하니, 타인의 내면과 사상을 내 기준대로 통제하고 검열해도 된다는 논리. 그것이 바로 광주와 세월호의 슬픔을 무기 삼아 타인의 입을 틀어막는 좌파 홍위병들의 논리와 정확히 무엇이 다릅니까?
셋째,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부정하시는 건 일부분 이해도 되고 본인의 자유지만,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폭력입니다.
가장 경악스러운 대목은 이것입니다. "나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제도의 노예가 아니며, 헌재의 권위는 국민이 부여하는 것이다."
듣기에는 무척 주체적이고 멋진 투사의 선언 같지만, 이 논리는 정확하게 대낮 투표소에서 "난 상관없으니까"라며 선거법을 뭉개버린 이재명의 초법적 오만함과 완벽한 쌍둥이입니다. 내 생각과 대중의 지지가 모이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조차 무시해도 된다는 사상. 그것은 보수주의자의 언어가 아니라, 법치를 찢��버리고 광장의 떼법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전체주의자의 언어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은, 합의된 '제도와 시스템'에 승복하는 것입니다. 헌재의 판결이 내 기분과 다르다고 해서 그 권위를 부정한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재명의 범죄를 단죄하는 법원의 판결에는 승복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까? 내 마음에 드는 판결만 정의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은 대중의 이름으로 거부하겠다는 그 오만함이 바로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망쳐놓은 진짜 병균입니다.
선생님, 긴 글을 통해 스스로를 방어하려 애쓰셨지만, 그 문장들이 증명하는 것은 선생님이 지키고자 하는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배신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과 내 편의 100% 순도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강박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건조하게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적은 이재명과 좌파 카르텔이라는 거대한 괴물입니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상처를 알아달라며 아군에게 사상적 순혈주의를 강요하는 '예민한 겁쟁이'가 아니라, 나와 조금 생각이 다르더라도 묵묵히 법과 원칙의 링 위에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차가운 이성'입니다.
열심히 써주신 답장에 저 역시 꽤나 시간을 들여 예의를 갖추어 답했습니다. 저의 이 서늘한 활자들이 선생님의 그 두려움과 강박을 조금이���마 환기하는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분별'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멈추고 진짜 적을 향해 싸우는 이성적인 밤이 되기를 저 역시 기원합니다.
좌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도나 우파 모든 분들에게 부탁드리는 말씀.
지난 십수년간 그래도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다 자부하던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가 왜 이렇게 퇴행한건가, 이 기원이 어디일까 고민하다 보면 매번 결국 이 결론에 도달하게 ���다.
근대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국민이 받들고 목숨 걸고 '지켜주어야 할' 정치인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주권자의 세금으로 고용된 한시적인 대리인이자 소모품일 뿐이다. 내 가치관과 이익에 부합하면 투표로 고용하고, 무능하거나 룰을 어기면 가차 없이 감시하고 끌어내려 폐기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민의 건조한 의무다.
대체 주인이 머슴을 지켜주고 옹위한다는 것이 상식의 영역에서 성립이나 하는가.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하고 정치인을 성역의 제단 위에 올린 뒤 "우리가 지키자"며 눈물 흘리는 자들은 주권자가 아니라 사교 집단의 노예일 뿐이다.
"저를 지켜달라"는 조작된 환상 속에서 정치인을 신격화하는 이 서늘한 주종의 역전. 낡은 죄책감과 죽음의 미학화에 기대어 무능한 권력자를 호위하는 저 좌파의 거대한 떼법이 타파되지 않는 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진정한 성숙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주권자가 지켜야 할 것은 썩어가는 정치인이 아니라, 차갑고 건조한 법치와 상식뿐이다.
사실 이 비극의 출발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 있다. 내가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내면에서 차갑게 지워버린 이유는, 그에 대한 인간적 연민이 메말라서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그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뒤, 완전히 망가져 버린 좌파 진영의 맹목적 태도와 죽음을 미학화하여 권력의 자양분으로 빨아먹는 파렴치한 정치꾼들 때문이었다.
하나의 건조한 팩트체크부터 해보자. 좌파 진영이 마치 종교의 성물처럼 떠받드는 문장이 있다.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들은 노무현이 남겼다는 이 호소를 ���계 삼아 정치인을 끝까지 맹신하고 옹위해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러나 팩트는 잔혹할 만큼 다르다. 2002년 덕평수련원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실제로 뱉은 언어는 이것이었다. "(저를) 감시도 하고, (저를)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 좀 해주세요."
그는 결코 자신을 지켜달라 애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뒤, 사람들은 철저히 다른 말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기억하고 싶어 했다. 비극적 죽음 앞에서 슬픔에 빠진 맹신도들에게는 차가운 진실보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고, 스스로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얄팍한 죄책감을 덜어줄 거룩한 순교 서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좌파 정치꾼들은 대중의 그 나약한 죄책감을 파고들어, "이제는 이재명을 지켜야 한다"는 기괴한 프레임으로 대중을 세뇌하고 권력을 연장하는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을 ��성했다.
그러니 중도나 우파분들도 제발 따라할 걸 따라하시라. 모든 정치인 그저 내 가치관과 맞으면 지지하고 그외의 대부분은 감시와 견제의 대상일 뿐이다.
언제 한 번 다루고 싶은 친일환수법에 대한 주제였는데 딱 때맞춰 이재명이 떠들어줬다.
이 법을 들여다보면 21세기 민주 공화국 한복판에 기괴한 신분제가 부활하고 있는 느낌이다. 혈통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대물림하는 전근대적 야만은 북한의 '백두혈통'���만 존재하는 줄 알았으나, 순진한 착각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좌파 진영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을 입맛대로 재단하고 가공하여, 기어이 이 땅 위에 북한의 '항일 빨치산 핏줄'을 완벽하게 모방한 남한판 백두혈통, 이른바 신(新)골품제를 주조해 내고 있다.
이들의 지독한 '역사 공정'이 얼마나 노골적이고 계산적인지는,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이재명의 입을 통해 완벽하게 폭로되었다.
현충일(顯忠日)이 어떤 날인가. 북한 공산군의 남침에 맞서 피를 흘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낸 6.25 전쟁의 호국 영웅들을 기리는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국가의 제단이다. 당연히 추모의 중심에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켜낸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이 놓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재명이 그 신성한 제단 위에서 쏟아낸 텍스트를 건조하게 해부해 보라. 그는 뜬금없이 "사리사욕으로 공동체를 배반한 이들을 단죄하겠다"며 핏대를 세우더니, 며칠 전 공포된 '친일재산귀속법'을 들먹이며 친일파 부당 재산 환수를 현충일의 핵심 메시지로 둔갑시켰다.
6.25 호국 영웅들은 흐릿하게 지워지고, 그 빈자리를 '친일파 척결'이라는 낡은 증오의 선동이 채운 것이다. 도대체 왜 호국보훈의 달에 이런 기괴한 동문서답이 나오는가.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좌파가 입만 열면 부르짖는 ‘친일 재산 환수’와 북한의 ‘항일 빨치산 핏줄’은, 언뜻 다른 체제의 언어 같지만 사실 완벽하게 같은 궤도를 달리는 하나의 기괴한 '권력 세습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분���의 핏발을 거두고, 이 거룩한 도덕의 외피를 두른 법령의 텍스트를 건조하게 해부해 보자.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친일로 획득한 부당 재산'으로 규정할 것인가. 사법의 잣대가 이념의 도구로 전락할 때 법은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 이 법안의 제2조(정의) 조항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 서늘한 기형적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제2호 후문은 이 법의 핵심이자 가장 섬뜩한 맹점을 품고 있다. "러·일전쟁 개전 시(1904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이 말많고 탈많던 추정 조항 등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가 백 년 전의 뇌물성이나 대가성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반면, 재산의 소유자는 상속 등의 과정을 통해 취득 내역을 더 잘 알 수 있고, 행정소송 등 사법 절차를 통해 '친일의 대가가 아님'을 입증하여 반박할 기회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헌법에 위���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형법상 무죄추정을 기반으로 하는 법체계를 부정하는 입법으로 다시 한번 헌법소원이 당연히 이뤄져야 할, 철저한 정치적 판결이였다.-
이 짧은 한 줄의 조항이 파괴하는 근대 사법의 원칙은 참혹하다. 정상적인 법치 국가라면,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서는 그 재산이 범죄(친일 행위)를 통해 얻어진 부당 이득이라는 사실을 '국가'가 객관적 증거로 입증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법은 입증 책임을 완벽하게 뒤집어버렸다. 국가가 특정인을 친일파로 지목하기만 하면, 그가 1904년부터 1945년 사이에 취득한 모든 재산은 일단 '친일 재산'으로 묶여버린다. 국가에 귀속당하지 않으려면, 그 후손들이 1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영수증이나 증인을 찾아내어 "이 땅은 친일의 대가가 아니라 정당하게 내 돈 주고 산 땅입니다"라고 스스���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토지 소유권 제도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객관적인 공시 제도가 전무한 마당에, 백 년 전 조상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땅을 샀다는 사실을 현재의 후손이 무슨 수로 입증��단 말인가. 입증하지 못하면, 그 재산이 친일의 대가인지 아닌지 명확한 팩트가 없더라도 '추정'만으로 국가가 합법적으로 사유재산을 몰수해 버린다.
이것은 법치가 아니라, 답을 미리 정해놓고 증거를 끼워 맞추는 인민재판이자, 마녀를 물에 빠뜨려 살아남으면 마녀고 죽으면 무죄라던 중세의 마녀사냥과 완벽하게 똑같은 기전이다.
좌파 진영이 입만 열면 이 기형적인 법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이 법안이야말로 그들이 구축하려는 신(新)골품제, 즉 '조작된 항일 혈통'을 유지하고 반대파를 척결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합법적인 단두대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아도, 국가가 '친일'이라는 주홍글씨를 찍고 '추정'만으로 한 가문의 재산과 명예를 통째로 압수할 수 있는 초법적 권력. 이 끔찍한 사상적 흉기를 손에 쥔 이재명과 좌파 카르텔은, 이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적이나 기업을 향해 언제든 "너희 조상이 친일파가 아니냐"는 낙인을 찍어 밥줄과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를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어떻게 3대째 이어지는 기형적인 절대 왕정을 구축했는가. 그들은 '항일 빨치산'이라는 조작된 신화를 뼈대 삼아, 자신들의 핏줄인 백두혈통에 영원무궁한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신성한 항일의 혈통 앞에서는 어떠한 절차도 무의미하다. 이 핏줄에 반기를 드는 자는 단순한 정치적 반대파가 아니라 '민족의 반역자'로 규정되어 가차 없이 숙청당한다. 역사를 종교화하여 반대파를 멸절시키는 완벽한 독재의 공식이다.
지금 대한민국 좌파 진영이 이미 흙으로 돌아간 지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유령들을 끊임없이 현실 정치판으로 소환해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이유도 정확히 이와 같다. 그것은 민족의 정기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친일파를 척결하는 우리'는 곧 '현대판 독립군'이라는 거룩한 도덕적 면류관을 스스로의 머리 위에 씌우기 위한 가장 값싸고 안전한 정치적 코스프레다.
이재명이 현충��� 제단에서 6.25 영웅들을 보다 친일재산환수를 꺼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6.25의 호국 영웅들은 김일성이 내세운 그 '항일 빨치산'의 후예들, 즉 공산 정권에 총구를 겨누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들이다. 뼛속 깊이 친북·반미 노선에 뿌리를 둔 좌파 카르텔의 세계관 속에서, 공산주의의 남하를 막아낸 국군은 결코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 없는 껄끄러운 존재다. 그러니 6.25의 진짜 영웅들은 슬그머니 치워버리고, 오직 자신들의 진영을 신성한 핏줄로 묶어낼 수 있는 '항일'이라는 조작된 십자가만 주야장천 높이 쳐드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친일 청산 선언은 과거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 자신들의 진영에 복무하지 않는 보수 우파와 상식적인 국민들의 이마에 '토착왜구'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넣어 정치적으로 멸절시키겠다는 파시즘적 경고장이다. 우리만이 항일과 민주화의 핏줄을 이어받은 정통 세력이니,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모두 친일파의 후예로서 국가의 요직과 부를 박탈당해야 한다는 끔찍한 신(新)골품제의 선포인 셈이다.
이 거대한 사기극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역사를 철저히 사유화한다. 5.18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은 그 누구도 묻��도 따지지도 못할 거대한 종교로 만들었고, 급기야 19세기의 동학 농민 운동까지 소환해 신성한 건국 혈통의 반열에 올렸다. 5.18 유공자 명단을 끝끝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혜택을 세습하는 닫힌 카르텔. 심지어 백 년도 더 지난 동학의 후손들까지 유전자 감식이라도 하듯 찾아내어 보상과 예우를 논하는 기막힌 촌극.
이것은 역사의 추모가 아니라, 과거의 희생을 담보로 현재의 권력과 세금을 갈라 먹으려는 '약탈적 비즈니스'다. 정치적 피해자성(Victimhood)을 항일 빨치산의 훈장처럼 세습하며 국가 요직을 독식하는 이 지독한 내로남불 속에서, 공화국의 대원칙인 '기회의 평등'은 처참하게 찢겨 나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특정 혈통이나 역사적 출신이 권력을 보장하는 프리패스가 될 때, 그 체제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 낡은 봉건주의다. 북한의 김씨 일가가 항일 빨치산이라는 조작된 백두혈통을 내세워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듯, 이재명과 남한의 좌파 카르텔 역시 역사적 연결점도 미약한 동학이나 항일, 민주화라는 조작된 혈통주의를 내세워 대한민국 시스템 위에 도덕적 군주로 영구히 군림하려 든다.
현충��� 제단에서조차 호국 영령 대신 친일 청산을 외치는 저들의 표독스러운 언어. 이념의 포장지를 걷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역사의 상처를 팔아 권력을 세습하려는 참으로 천박하고도 똑 닮은 두 괴물의 얼굴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재명이라는 권력의 ��을 통해, 대한민국 한복판에 북한식 백두혈통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세련된 언어로 복제되는 소름 돋는 평행이론을 목도하고 있다.
몇번이나 밝혔었지만 나는 과거 패션 좌파였다. 깊은 사고과정 없이 그저 타성으로 그들과 이념의 궤적을 함께 했던 자, 혹은 그 거대한 ��덕적 환상을 깨고 중도 우파의 영토로 건너온 관찰자로서 지금의 민주당을 바라보고 또 보수진영을 바라보면 참 묘하게 번짓수를 찾지 못하는 것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보수 일각에서는 이른바 '구주류(문조털래유)'와 이재명을 위시한 '신주류'의 내전을 두고, 머지않아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멸망할 것이라며 팝콘을 씹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민주당이라는 이익 집단의 생물학적 본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오판이다. 이들의 내전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상품이 어떻게 주류 무대로 편입되었는지 그 기원부터 짚어보아야 한다.
원래 이재명은 철저한 비주류, 변방의 아웃사이더였다. '손가혁(손가락���명군)'으로 대표되는 한 줌의 극단적 팬덤이 그의 밑천 전부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당의 심장부를 꿰찰 수 있었을까.
해답은 당의 거대한 막후 설계자였던 이해찬과의 ‘전략적 동맹’에 있다.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가 다급했던 이해찬은 많은 흠결과 비호가 넘쳤지만 가장 전투력이 뛰어났던 이재명을 선택했다. 이 철저한 이익 교환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담보물이, 바로 이해찬의 수족이면서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내려가 대북 사업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이화영이다.
그리고 이 거래가 성사될 때 전면에 나서준 핵심 스피커가 바로 유시민이었다. 유시민은 이재명의 수많은 도덕적 흠결과 전과에 거부감을 느끼던 친노·친문 지지층을 향해 "불우한 환경이 만든 상처일 뿐"이라며 논리적 면죄부를 발급해 주었다. 즉, 이재명의 권력은 이해찬의 지분 투자와 유시민의 세일즈가 결합해 세워진 불안한 합작회사였다.
그런데 지난 1월, 이 합작회사의 절대적 보증인이었��� 이해찬이 사망하며 휴전 협정이 만료되었다. 보증인이 사라지자 이재명은 일종의 채권자인 구주류를 숙청하고 당의 소유권을 1인 체제로 등기 이전하려 들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덩치를 키워온 구주류가 얌전히 목을 내어줄 리 만무하다. 그들이 날린 가장 치명적인 카운터펀치가 바로 정청래를 필두로 밀어붙인 '전당대회 1인 1표제'다. 이는 겉으론 민주주의를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언제든 여론의 방향을 돌려 이재명의 강성 팬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정교한 목줄이다.
여기서 보수의 치명적인 착각이 발생한다. 이들이 주도권을 놓고 서로 칼을 겨눈다고 해서, 결코 어느 한쪽이 멸망하는 파국은 오지 않는다. 왜인가? 그들에게는 '좌파 권력'이라는 그 거대하고 달콤한 밥그릇을 통째로 엎어버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이라는 현재의 강력한 숙주가 무���지면 구주류 역시 권력의 자양분을 잃고 폐기물로 전락한다. 구주류의 방화벽이 무너지면 이재명 역시 사법 리스크의 파도를 견딜 수 없다. 그들은 서로를 혐오하면서도, 지독한 기생적 공생의 생���계 속에서 필요에 의해 서로의 지분과 존재를 인정하는 기형적인 타협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링 위에서는 피가 튀기도록 싸우지만 결국 밥상 앞에서는 숟가락을 나누는 마피아들의 공생이다.
단, 이 지저분한 밥그릇 싸움에서 철저하게 도축 당해야 했던 단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바로 이낙연이다.
그가 잔인하게 축출당한 이유는 단순하다. 도덕성과 품격, 정상적인 국정 경험이라는 그의 자산은 그들끼리 '해 먹고 치우는' 이권 카르텔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방해물이었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이재명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잠재적 위협이자 껄끄러운 감시자. 부패한 카르텔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 맑은 물은 반드시 퍼내어 버려야 할 불순물이었다.
그러나 진짜 묵직하고 절망적인 비극은 저들의 진흙탕 싸움 너머, 텅 빈 우파의 진영에 있다. 저들이 국가의 첨단 산업을 땔감으로 던지고, 심지어 본투표 용지가 동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참정권 훼손 사태마저 뭉개버리며 오직 집안싸움에만 매몰될 수 있는 이유가 무��이겠는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그들에게 그 어떤 실체적 위협도 되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무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가오는 7월 7일의 달력은 그 절망의 심연을 한층 더 깊게 파고든다. 이른바 가짜뉴스 근절을 핑계로 포털 플랫폼의 사적 검열이 합법화되는 그날 이후, 광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가파르게 꺾일 것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약관의 통제 속에서 합리적 우파의 발언권과 이성의 목소리가 설 자리는 처참하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부패한 괴물들이 안심하고 권력 다툼을 벌이도록 방조하는 무능과 얄팍한 법망을 동원해 합법적 입틀막이 완성되어 가는 사회. 이 거대한 야만의 포위망 속에서, 사유하는 시민들이 생존할 수 있는 이성의 영토가 과연 얼마나 남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