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면 이게 진짜 재밌음
그리고 그 언어에서의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감정선이라던지 리액션들이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언어를 쓰냐에 따라 나에 대한 느낌도 달라짐
나는 내 목소리톤 자체는 높지 않은데 한국어 발화할때는
목소리 톤이 좀 높아지는 편임
반면 프랑스어를 쓸 때는 건조하고 목소리도 낮은 편인데
그게 내 원래 목소리랑 제일 비슷한 것 같고 영어는 한국어와 불어의 중간 어디쯤임 대신 영어로 인토네이션이랑 악센트를
잘 살리는 편이라 자세히 들어보면 문법이나 어휘는 개 그지인데
처음 몇마디 나눌 때는 너 혼혈이야? 아니면 너 외국살다왔어?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 편이거든 물론 진대 나눠보면 아 이새키
토종한국인이네 뽀록남 (ㅎㅎ)
근데 최근에 나랑 영어로 대화하던 외국인 친구(여자)가 있는데 걔는 한국에서 10년 살아서 한국어도 잘한단말이야
갑자기 나보고 너 한국어 하는거 궁금하다고 한번 해보라는거임
그래서 한국어 해줬더니 애가 너무 놀라면서 완전 다르다고
한국어로는 약간 귀엽게 말하려는 경향이 있는거같다고 해서
놀랐음
한 유튜버가 일주일 동안 스크린을 포함한 불필요한 시각·청각 자극을 전부 차단하는 실험을 했음. 휴식 시간엔 핸드폰 대신 벽을 20분간 응시하고, 이동 중엔 음악도 안 틀고, 배경 영상 없이 하나에만 집중하는 생활.
결과가 꽤 충격적이었음.
1. 뇌에는 '멘탈 대역폭'이라는 한계가 있음
생산성 전문가 라이언 도리스가 말하는 핵심 개념임.
우리 뇌가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은 정해져 있음. 이걸 멘탈 대역폭이라고 부름.
문제는 이 대역폭을 뭘로 채우고 있느냐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인스타 피드 넘기고, 유튜브 틀어놓고 밥 먹고, 이메일 확인하고, 줄 서면서 뉴스 보고.
이게 다 '입력(Input)'임. 뇌 입장에서는 전부 처리해야 할 정보임.
정작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쯤이면 대역폭이 이미 반쯤 소모된 상태인 거임.
집중 못 하는 게 의지 부족이 아니라, 시작 전에 이미 뇌를 다 써버린 거임.
2. 실험의 세 가지 규칙
지루한 휴식 취하기: 쉬는 시간에 폰 보지 말고 벽을 응시함. 뇌가 진짜로 쉬려면 새로운 자극이 0이어야 함.
막간의 시간 머무르기: 줄 서거나 이동할 때 음악이나 영상으로 빈틈을 채우지 않음. 그냥 가만히 있음.
한 번에 하나씩 하기: 멀티태스킹을 멈춤. 배경 음악도 영상도 없이, 지금 하는 일 하나에만 집중함.
핵심은 전부 '입력을 줄이는 것'임. 뇌에 들어오는 정보를 막아서 대역폭을 지키는 거임.
3. 바뀐 건 집중력만이 아니었음
대역폭이 확보되니까 일에 대한 몰입도가 확 올라갔는데, 의외의 변화도 있었음.
반려견이랑 산책하는 순간이 더 풍요롭게 느껴지고, 가족과 대화할 때 더 깊이 몰입하게 됐음.
자극을 줄이니까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더 또렷해진 거임.
4. 실험 후 정리한 실전 팁 네 가지
가장 중요한 일 전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 것. 하루 중 대역폭이 가장 꽉 찬 첫 시간을 핵심 목표에만 쓸 것.
집중 안 될 때는 10~15분 벽 응시. 대역폭 리셋됨. 지루함이 끝나면 일이 훨씬 흥미롭게 느껴짐.
가능하면 종이와 펜을 쓸 것. 화면은 알림, 색상, 아이콘으로 뇌를 피곤하게 만듦. 종이는 출력에만 집중하게 해줌.
이메일, SNS, 유튜브 같은 입력은 하루 최대한 늦은 시간으로 미룰 것.
재밌는 건, 이 실험의 핵심이 '더 열심히 하는 법'이 아니라는 점임.
오히려 정반대임. 덜 넣는 법임.
생산성을 올리려면 뭔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진짜 병목은 이미 너무 많이 넣고 있다는 거였음.
집중력의 시대가 끝난 건 아님. 다만, 집중력을 지키려면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넣는 게 먼저인 것 같음.
유익한 갸루의 역사상식: 갸루는 일남들이 자꾸 여성스럽게 청초 어쩌고 여성력 여성여성 지랄해서 그래 존나 빡세게 꾸며주마 이러면 존나존나 여성이지? 라는 페미니즘적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걸의 일본발음 갸루가 됨. 당연히 기분나쁠때 기분나쁘다고 표현하는 인간다운 행위를 여혐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잘 못하기에 갸루라는 정체성을 방패로 인간다운 자신을 들어내는 여상해방적 문화에서 현재로 이어진 것
이거 진짜 맞는 말임... 사소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운동해야지" 같은 사소한 약속을 어기는 습관이 뇌에서는 '나는 통제력을 잃은 사람'이라는 데이터로 수집됨
이게 지속되면 '내가 아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고, '나는 왜이러지?'라는 인지부조화로 인한 무력감까지 이어질 수 있음
하지만 대부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의지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설계의 문제일 수 있음. 목표가 너무 추상적이라거나 당장 어느 단계를 넘어서야 할 경우에는 약속을 지키기 부담스러움
아주 작은 약속부터, 그리고 약속을 지켰을 때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 필요함. "나 쫌 하네? 다음 것도 해보자!!" 이렇게
인용으로 실례합니다. 80년생, 어릴적부터 만화의 독자였고 현재 웹툰 작가입니다. 며칠전 블루스카이에 썼던 글과 비슷한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다소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양해부탁합니다.
한국은 자국 만화시장이 있던 나라로, 초기에는 주로 대본소를 통한 대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군부독재 당시 심한 사전, 사후 검열이 있었죠. (폭력성이나 선정성만이 아니라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사회의 어두운 면, 예를 들면 주인공의 집이 가난하게 묘사된다는 점 조차도 수정의 대상이었습니다. ) 또한 1972년 정병섭 군 사망사건으로 만화=사회악이란 프레임화되어 만화책 보는것이 금지되고 만화가, 만화계종사자들을 고발하기도 했죠. 80년대까지도 5월 5일이면 만화를 모아 태우는 행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82년 '보물섬'이란 월간만화잡지가 창간됩니다. 어떻게? 바로 발간주체가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씨가 이사로 있던 육영재단이었습니다. (박근혜씨 개인은 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이후 독자층을 온가족으로 잡은 잡지와 순정만화잡지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88년부터 타겟층을 더욱 세분화한 잡지들이 쏟아졌죠. 주간 소년만화잡지 아이큐점프를 시작으로 90년대 말까지 수십종의 만화잡지가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큐점프에 연재된 '드래곤볼'이 단행본으로 나오며 다른 잡지들도 단행본이 나오게 됩니다. (보물섬이 나오던 시기에도 잡지연재분을 묶은 단행본이 나오기는 했으나 아주 인기작만이 가능한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가 대표적입니다.)
이 시기에 일본만화의 해적판 단행본도 급증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잡지가 수십종이 나올만큼 만화독자층이 늘었다.
2)만화 독자층이 단행본 형태와 가격에 익숙해졌다.
3)BUT 잡지에 연재된 만화가 아니면, 사실상 단행본으로 나올 수 없다.
3)이 다른 나라에 별로 없는 특이한 점인데요. 바로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 때문입니다. 한국은 (1910~1945), 무려 30년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했습니다. 때문에 1945년 독립 이후에도 일본 문화는 사람들에게 반발이 심했고 금기시 되었죠.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이란 총 4단계에 걸쳐, 금기시되던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는 내용인데요. 1차 개방이 98년입니다. 그러니까 1998년 전까지 일본 만화는 잡지 연재를 거친다는 꼼수를 써야만 단행본으로 나올 수 있었던겁니다. 하지만 잡지의 수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일본 만화 단행본을 불법, 해적판으로 찍는 곳들이 생긴겁니다.
그러나 98년 이후 만화잡지를 만드는 대형 출판사들이 그간 해적판으로 나온 작품들까지 죄다 정식 라이센스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애초에 품질이 조악했던 해적판들은 밀려났고, 틈새수요를 노린 극소수의 해적판도 2000대 초반에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에 대한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은 십여년간 해적판이 나도는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긍정적인 시각은 그동안 한국 만화가 일본 만화에 대응할 정도로 체급을 키워갈수있게 보호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97년, 한국의 원로 만화가 이현세 작가님의 작품 '천국의 신화'가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2003년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언론은 '역시 만화는 불량한 것' 이라는 마녀사냥을 반복했습니다. 군부독재시절의 검열을 겪은 작가분들은 '또냐' 라는 심정이 되었고... 이때 펜을 꺾은 작가분도 계십니다.) 만화책은 서점만이 아니라 문방구에서도 유통되었는데, 이 사건 이후 문방구에서는 만화책을 싹 치웠습니다.
그리고 1998년 IMF가 찬물을 끼얹습니다.
IMF로 경제가 어려워져서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는것은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대여점입니다. 이전에도 대여점(7~80년대의 대본소와 달리 일반 단행본을 대여)은 있었지만, IMF로 실업자가 늘어나자 정부에서 대여점을 장려한것입니다. 소규모로 시작할수 있는 자영업이라는거죠. 사람들이 대여점에서 빌려보고 단행본을 사지 않으니, 작가들의 수입은 쪼그라들고 출판사도 골치였습니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죠. 심지어 대여점은 만화를 사다가 대여가 잘 안되는 작품을 반품해버렸습니다. 이러니 작가들은 대여가 잘 되는 만화를 강요받기도 했고요. 출판사는 단행본이 대여점에 팔리는 숫자를 상정하여 찍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당시 고등학생이고 만화가를 꿈꾸고 있었는데, 작가로서 성공하려면 한국에서는 글렀다, 시장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만화독자와 지망생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겁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더 큰 타격이 옵니다. 스캔본의 출현입니다.
ADSL이 대중화되면서 집집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가능해졌죠.
대여점에서 책을 빌린 자들이, 다 스캔해다가 올려놨습니다. 이제는 대여점조차도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한국 출판만화시장은 정말... 죽지는 않는, 링겔 꽂아서 겨우 살아만 있는 상태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완전 폐허가 된 판에 웹툰이 등장합니다.
웹툰의 시작은 현재와 완전히 모습이 다릅니다!
2001년 개인 홈페이지에서 '컷이 없는 스크롤 형태의' 일기같은 짧은 만화가 연재됩니다. '마린블루스' 그리고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라는 작품들입니다. 이들은 큰 인기를 얻어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 포털사이트 DAUM에서 강풀 작가님의 '순정만화'가 연재되며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웹툰'이란 시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즈음의 웹툰은 출판만화를 연두에 두지 않고 웹툰을 그리는 작가, 출판만화를 준비하다가 웹툰으로 방향을 돌린 작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건 출판만화에서 튕겨진 작가들로 구성되었다고 보면 될겁니다. 이 즈음의 웹툰은 대부분 작품을 작가 1인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웹툰의 절반은 그럴겁니다. 외국에 수출되는 웹툰에 스튜디오 작품이 많은것 뿐입니다.) 그리고 NAVER도 후발주자로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하죠.
이때의 웹툰은 작가에게는 고료를 지급하지만, 소비자에게는 무료였습니다. 일종의 신문만화같은 개념이었던거죠.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빨리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출판만화가 빈사상태이지않습니까? 그러니까 거기로 갈 인재들이 웹툰으로 빨려들어옵니다. 그리고 극화를 연재해요. 컬러로!주간으로! 퀄높은 극화를. 적지만, 그래도 고료 받고 작품 발표할데가 사실상 웹툰밖에 없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웹툰은 분량도 퀄도 점점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몸이 버틸리가 없죠.
'웹툰은 일상툰이나 해야지, 극화로는 돈 못벌고 몸만 망가진다' 는 인식이 생겼죠. 그때 떠난 작가분들이 또 많고요...
그러다 DAUM이 '유료화' 를 시작합니다. 첫 유료화는 아주 조심스러웠고, 수익 배분도 작가에게 대단히 유리했습니다. 작가와 연재처는 어느정도 분량을, 어디부터 유료화할 것인지 긴밀하게 상의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화만 유료' 인 경우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며 '완결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료화'가 생겼는데 NAVER도 이걸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작가가 돈독이 올랐다'는 댓글로 대표할수 있겠죠. 하지만 웹툰의 연재주기와 분량, 퀄리티등을 보면 올것이 당연히 왔을 뿐이라고 봐야할겁니다. 일단 연재처 측에선 고료 상승부담을 유료분으로 덜 수 있었습니다. 작가도 수입이 늘고요.
또한 작품이 무료, 공짜라는 인식, 웹툰의 잘못 끼워진 단추이자 성장동력이었던 그것을 바로잡을수 있다는 팁도 따라왔죠. 완결후 유료화가 자리잡을 즈음 또다른 유료화가 등장합니다. KaKaopage카카오페이지의 '미리보기' 입니다.
소비자가 무료웹툰 이번주 연재분을 보고서, '돈을 내면' 다음 주 연재분을 '미리' 볼 수 있게 된거죠. 물론 그 미리 본 분량은 다음주면 '무료'가 됩니다. 하지만 미리,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결제하게 되는 시스템. (모 님께서는 이것을 당시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페이스북 소셜 게임(예: 팜빌)에서 힌트를 얻었을 거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걸로 한국웹툰의 유료시스템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봐도 됩니다. 연재할때 미리보기, 연재끝나면 전체유료화. 약간의 변형은 있어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DAUM과 NAVER라는 양대 포털 (+잠시 파란과 야후)이 지배하던 웹툰계에 웹툰을 서비스하는 웹툰전문사이트들이 생깁니다. 레진코믹스, 봄툰, 미스터블루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이트들은 무료분은 거의 없는 철저한 유료정책입니다.
이어서 불법사이트가 탄생합니다. 유료웹툰, 성인용 웹툰을 긁어모아서 한 사이트에 모아놓고 무료로 제공하죠. 이들은 사이트에 띄운 사기, 도박등의 배너로 수입을 얻는다고 합니다. 웹툰을 미끼로 쓰는 것입니다. (현재는 DAUM을 전신으로 하는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와 투믹스 등 다른 사이트들도 이런 불법사이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추정 피해액'을 산정했지만, 실제로 불법 사이트가 닫힌 기간동안 트래픽이 상승하는 데이터를 얻은것이 동력이 된 모양입니다.)
이후 코비드 19등으로 디지털 컨텐츠 사용이 늘어났고, 웹툰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됩니다. 스튜디오 제작 웹툰이 늘어났죠. 원 글에서 말씀하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수준의 분업제' 로 제작되는 웹툰입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은 현재진행입니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이 스튜디오 제작 웹툰은 한국 웹툰의 일부일 뿐입니다. 해외에 연재되는 작품에 스튜디오 제작이 많은 이유는 초장기 연재가 가능하고 (수익을 많이 낼 수 있음) 퀄리티가 안정적이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저 역시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고, 극화라도 1~2명 정도의 어시스턴트와 작업하는 작가분이 많습니다. 사실, 한국 웹툰의 다양성은 이런 개인 작가분들이 지키고 있다고 봐도 될겁니다.
(참고로 선우 훈 작가님@sunwoo_hoon 은 '무료일 때 작품이 더 다양했다. 그때는 뭐가 잘 팔릴지 몰랐으니까' 라고 말씀하시기도)
한국 입장에서는 웹툰이 성장하여 산업화되면서 처음으로 불법 해적판의 피해국 위치가 되었는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꽤 특이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원글의 <webtoon 발상지의 한국 사용자들에게 듣고 싶은 건 "왜 아직도 일본의 만화를 잘 읽는가?"라는 것>의 답변입니다.
저 개인은 전부터 봤기 때문입니다. 80년대부터 많은 잡지와 단행본과 애니를 보아왔거든요. 젊은 독자들은 '만화를 웹툰으로 처음 접한 세대'도 있지요. 그런 독자들도 일본의 만화를 보는 이유라면,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기 때문'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YouTube 와 넷플릭스등의 각종 OTT서비스 덕분에 애니메이션은 쉽게 접할수 있습니다. 그 팬층이 나아가 단행본도 구입하고 팬문화를 만들고 있는거라고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진짜 맞음.. 시간이 늘 순삭된다고 느끼는 사람들 특징이, 행동에 마침표를 못 찍고 영원히 쭈욱 이어가는 거라고 함(과몰입, SNS 중독 포함..) 나도 이 문제가 넘 고민이었는데 책에서 드디어 원인을 알게 됨
퇴근하고 4시간 동안 누워서 폰만 봤다면, 뇌는 그 시간 을 >>폰 본 시간<< 딱 1개로 저장함. 저장된 데이터가 1개뿐이니 4시간이 통째로 증발했다고 느끼는 거임
이런 시간을 줄이고 밀도 있게 쓰려면, 이 흐릿한 일상 중간중간에 억지로 >>마침표<<를 찍어서 선명한 기억을 만들어주면 좋음
•퇴근길에 좋아하는 노래 딱 3곡 온전히 듣고 끄기
•집에 와서 겉옷 걸고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기
•씻기 전에 책상 위에 있는 다 쓴 컵 하나 치우기
•유튜브 쇼츠 딱 15분만 보고 앱
이렇게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도 무언가 '끝났다'는 마침 표를 찍어줘야, 뇌가 많은 데이터가 저장 됐네라고 인식하게 된다고 함.. 하루가 너무 짧다고 느끼는 사람들 특히 ADHD들은 한번 연습해보면 정말 좋을 거 같음
나이가 들수록 실감하는게 교양이 부족하면 세상이 평면으로 보이는 것 같음. 같은 풍경을 봐도,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사람을 만나도 '아, 이게 이런 맥락이었구나' 하는 층위가 없으면 감동의 깊이와 즐거움의 폭이 확 줄어듦.
특히 여행에서 두드러지는데, 중국 시안 병마용 앞에 서서 '와, 크다' 하고 끝나는 사람과 '진시황이 사후 세계에서도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제작했다는 배경'을 알고 보는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완전히 다름.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임. 고전 한 구절, 역사적 사건 하나, 철학적 개념 하나가 대화의 깊이를 다르게 함. 그게 없으면 대화가 자꾸 “요즘 날씨 좋네 → 요즘 경제 어렵네” 수준에서 맴돌게 됨.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풍요로워진다는 점인 것 같음. 혼자 있을 때도 책 한 페이지, 다큐 한 장면, 산책 중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아, 이게 내 인생과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면서 내면의 대화다 지루하지 않게 되는 것 같음.
잠깐의 질 나쁜 도파민에 만족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보는 시야의 해상도와 입체감을 높이기 위해 지적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봤으면 좋겠음.
韓国でライブした。
本当に楽しかった。
韓国いいよな。
韓国はソンフンミンとかイガンインとかキムミンジェとかホンミョンボとかパクチソンとかキムヘソンとかイジョンフとかイデホとかオスンファンとかすごい。でも私が好きなのは韓国のロックバンドGUMXだ。
한국에서 라이브를 진행했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는 한국을 좋아합니다!
한국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홍명보, 박지성, 김혜성, 오승환, 이정후, 이대호 등 모두 대단합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록 밴드 GUMX입니다!
Q.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수많은 트랜스젠더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잠깐만요. 잘 말하고 싶다. 음…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면, 저는 우리가 잘 사는 게 첫 번째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은 한국에서 구릴 수밖에 없어요. 그 정체성을 구리게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여러분이 잘 살아야 돼요. 그러려면 그 어떤 젠더, 성정체성을 표현하는 휘황찬란한 말들보다, 당신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더 멋있는 정체성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바로 제가 운 좋게 그게 됐었네요. 음악가라는 정체성 덕분에 저도 저의 거지 같았던 그 정체성을, 거지 같았다고 인정하고,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당신의 정체성에 당신을 가두지 마십시오. 저는 음악 하면요, 제가 트랜스젠더인 게 그렇게 별로 안 중요한 순간도 있거든요. 트랜스젠더는 스스로 강해져야 합니다. 세상은 그다지 쉽게 안 바뀔 것 같거든요. 여러분이 강해지세요(웃음).
本日のハーフタイムショーは、3/9(月)に続き2回目のご出演となる
MAN WITH A MISSIONの「DJ Santa Monica」さんでした🐺🎸✨
ハーフタイムはホーム・アウェー関係なく、会場全体が一体となって盛り上がりました🔥🔥🔥
DJ Santa Monicaさん、今回も素晴らしいパフォーマンスを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サンロッカーズ渋谷 #Bリーグ
@MWAMofficial
【아코디온】 결혼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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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클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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