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지 8개월 만에 전 남친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
그 네 글자에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괜히 프사도 바꾸고, 답장도 20분 고민했다.
’잘 지내. 너는?’이라고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혹시 내 검은색 후드티 아직 있어?”
아.
그 옷을 돌려받으려고 8개월 만에 연락한 거구나.
“있어. 택배로 보내줄게.”
그러자 그가 말했다.
“아냐, 직접 가지러 갈게. 그때 밥도 먹자.”
나는 또 혼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속 당일, 그가 도착하자마자 한 말.
거래처에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다가 자동완성 때문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원래 보내려던 문장은 이거였다.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급하게 입력하다 보니 마지막 단어를 잘못 눌렀다.
“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발견했다.
취소할까 고민하는 사이 상대에게 답장이 왔다.
“저도 업무적으로 많이 감사드립니다.”
나는 모니터를 한참 바라봤다.
상대는 실수를 눈치챈 것 같았지만, 모르는 척해 주는 게 더 민망했다.
결국 나는 답장을 보냈다.
“자동완성 오류입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괜찮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문자 끝에 늘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날 이후 나는 메시지를 보내기 전 반드시 두 번 읽는다.
특히 거래처에는 업무와 감정을 분리해서 보낸다.
친구 결혼식에서 축의금 봉투를 쓰다가 한참 멈춰 있었다.
신랑과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졸업 후 서로 바빠 연락이 뜸해졌다. 그래도 청첩장을 받고는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봉투에 이름을 쓰려는데 문득 걱정이 됐다.
‘내 이름을 알아보긴 할까?’
식장에 도착하니 신랑은 정신없이 하객을 맞고 있었다. 나는 축하한다고 인사하고 사진만 찍은 뒤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식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신랑이 멀리서 나를 불렀다.
“야, 너 잠깐만!”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오랜만에 와서 미안하다. 연락도 자주 못 했는데.”
신랑은 내 말을 끊었다.
“그게 아니라, 너 아까 봉투에 이름을 한자로 썼지?”
“응. 왜?”
“너 중학교 때 내 이름 한자로 틀리게 쓰던 애잖아. 이번엔 맞게 썼더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수많은 하객 속에서 신랑이 기억한 건 내 축의금 액수도, 오랜만의 안부도 아니었다.
십수 년 전 내 사소한 실수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웃었다.
오래된 친구란 가끔, 내가 잊어버린 흑역사를 가장 선명하게 보관하는 사람이다.
✍️ 수요일 저녁 7시, 일주일의 절반 고지를 넘긴 자의 여유
수요일 19시, 칼퇴하고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공기부터 묘하게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
일주일의 딱 중간이라는 거대한 산을 무사히 넘어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속 짐이 반쯤 털려나간 기분이지.
월요일엔 까마득해 보였던 주말이, 이제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로 성큼 다가온 게 느껴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 저녁은 나한테 주는 소소한 포상으로 맛있는 거 챙겨 먹거나 맥주 한 잔 시원하게 기울여도 전혀 눈치 안 보이는 밤.
일주일의 가장 가파른 경사를 무사히 넘겨낸 우리 𝕏친들, 오늘 밤은 편안하고 따뜻하게 보내자고! 고생 많았어! 🍗🍺✨
매일 오후 7시, 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광고인 줄 알고 끊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결국 어느 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방은 잠깐 침묵하더니 물었다.
“혹시 오늘도 안 오시나요?”
“누구세요?”
“오늘도 예약 취소하시는 줄 알고 확인 전화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근처 사진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예전에 증명사진을 예약하면서 연락처를 잘못 적은 사람이 내 번호를 등록해 둔 거였다.
나는 예약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분이 예약을 자주 바꾸셔서요.”
그런데 전화를 끊기 직전 직원이 말했다.
“혹시 그분 아시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황당해서 웃었다.
“저도 오늘 처음 알게 된 분인데요.”
그날 이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대신 가끔 오후 7시면 휴대폰을 확인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의 약속이 내 일과표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