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나라 사이에서》
내 고향 광주와 금남로는,
안녕하신가요?
어릴 적 광주는
나에게 단순한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거리마다 남아 있던 5월의 상처,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던
공기의 무게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정의’라는 단어를 먼저 배웠습니다.
광주는 늘 아픈 도시였지만,
그 아픔을 핑계 삼지 않는 도시였고
억울함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광주를 자랑스러워했고,
호남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객지에서 살며
“전라민국”, “7시의 나라”
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먼저 아팠습니다.
그 말은 지역 비하였고,
내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나 스스로에게서 떠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호남은 늘 스스로를
피해자라 말해왔습니다.
차별받았고, 소외되었고,
억울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 말, 사실입니다.
호남은 실제로 오랫동안
정치와 개발의 변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피해의 역사’는
권력을 얻는 논리가 되었고,
예산을 끌어오는 명분이 되었고,
비판을 막는 방패가 되었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
광주형 일자리,
한전공대,
영암 F1,
무안공항,
새만금 잼버리…
정치가 끌어온 수많은 국가 사업들.
그때마다 우리는 “호남 발전”을 외쳤고,
권력은 표를 얻었으며,
막대한 예산이 쏟아졌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미래 산업이 아니라
유지비 폭탄이 되었고,
일자리가 아니라
적자가 되었고,
지역의 자산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빚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 실패를 말하면
“지역 차별”이라는 말로
모든 질문을 막아버립니다.
정책 실패를 말하면
배신자가 되고,
예산 낭비를 말하면
호남 혐오가 됩니다.
언제부터
비판하는 사람이 적이 되었습니까.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습니다.
그 출발은
분명 민주주의였고,
인권이었고,
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역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이유로
같은 선택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정의의 상징입니까,
아니면
수많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입니까.
정당은 점점
국민보다 개인을 지키는 조직이 되어가고,
의원들은 침묵하며
진영을 먼저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 옳은가.”
“이 정치가 아이들에게 남길 나라는 무엇인가.”
우리는
정치인을 평가하지 않고,
진영을 방어하고,
사실보다 편을 먼저 고릅니다.
우리는 지금
고향을 지키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진영을 지키고 있는 걸까요.
고향은 분명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고향은
판단을 멈추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역이 아니라
나라의 방향입니다.
애정은 고향에 두되,
판단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역은 삶의 터전이지만,
나라는 우리 아이들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정권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와 법치를 지키려는 흐름과,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흐름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람이 아니라 편을 선택해왔고,
원칙이 아니라 진영을 지켜왔습니다.
그 결과,
정치는 점점
국민보다 권력자를 먼저 보호하고,
정당은
민주주의보다 생존을 먼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점점
질문하지 않는 시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과 호남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과 진영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진영이 이기면
나라가 약해집니다.
나라가 약해지면
권력보다 국민들이 힘들어 집니다.
만약 호남이
나라의 방향보다
진영의 승리를 먼저 선택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후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왜,
나라보다 편을 먼저 골랐냐고.”
나는 아직도 믿고 싶습니다.
광주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정의의 기준이 살아 있다고.
권력보다 양심을,
진영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5월의 광주는
편을 들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 정신은
어느 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자산입니다.
부디,
내 고향 광주여.
진영에서 한 발만 물러나
다시 나라를 바라봐 주십시오.
정치인보다 아이들의 내일을 먼저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정의라는 단어를
정당이 아니라
양심에서 찾기 시작해 주십시오.
그날,
광주는 다시
대한민국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향을 사랑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미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진보’라는 단어가 내 자부심이었다.
정의, 약자 보호, 공정, 평등.
그 모든 가치가 민주당 안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진보입니다”, “민주당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백이 가장 부끄럽다.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나?
예전에 내가 혐오하던 보수의 부패·기득권·오만.
지금은 그걸 민주당이 더 노골적으로, 더 대담하게 하고 있다.
대장동, 대북송금, 허위사실유포…
측근들은 줄줄이 유죄인데
정작 당사자는 “치외법권”처럼 대우받는다.
부패가 문제가 아니라, 부패를 부정하는 태도가 더 역겹다.
이게 어떻게 ‘약자를 위한 진보’인가?
더 큰 충격은 주변이다.
정의·인권·공정을 외치던 친구들이
이젠 범죄 의혹엔 눈 감고, 사법 절차는 공격하고,
비판하면 “적폐”, “2찍”이라고 낙인 찍는다.
이견이 사라진 자리를 팬덤 충성심이 대신하고 있다.
정치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다.
이재명의 리스크 하나 지키려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통째로 내다버리는 중이다.
그리고 내로남불.
검찰 독립 외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수사만 들어가면 “정치 탄압”이라 울부짖는다.
언론 자유 외치던 사람들이
불리한 보도 나오면 “가짜뉴스”라며 입을 막는다.
이건 진보가 아니다.
이건 퇴행이다.
북한·중국 방식의 통제와 다를 게 없다.
나는 더는 침묵할 수 없다.
이 나라는 내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고
그들의 미래는 지금 우리의 분별에 달려 있다.
진영논리에 취한 순간, 불의는 구조가 되고
부끄러움을 잃은 순간, 민주주의는 실험대 위로 올라간다.
지금의 몰상식을 ‘그저 우리 편’이라고 용서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우리가 아는 나라가 아니게 된다.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눈을 감은 다수 때문에 무너졌다.
지금 벌어지는 사법 회피, 팬덤 정치, 내로남불 앞에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동조다.
부끄러움을 기억해야 한다.
그게 나라를 지키는 최소한의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