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성폭력을 증언한 일본군 병사 곤도 하지메 증언
1. 1940년 12월 징병 후 중국 산시성에서 복무
2. 신병 때 이미 인간성 말살 훈련 경험
3. 부대 안에서 위안소·성ㄴ예 존재를 직접 목격
4. 작전 중 붙잡은 중국 여성을 부대원들이 ㅇ간
5. 토치카 건설 현장에서 여성을 잡아와 7~8명이 차례로 강ㄱ
6. 계급 높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행한 사례도 있음
7. 1943년 30대 초반 여성을 여러 병사와 함께 윤ㄱ
8. ㄱ간 후 입을 막기 위해 살해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회고
9. 어떤 때는 여성을 살려두고 행군에 끌고 다니기도 함
10.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을 ㅇ간한 뒤 아기를 절벽으로 던진 장면 목격
11. 그때 병사들이 웃으면서 넘긴 기억을 평생 지니고 살음
12. 처음에는 위안소 이용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죄책감 없이 강간에 가담
13. 당시에는 “중국인은 돼지 이하”라는 교육 때문에 죄의식이 없었음
14. 2003년 도쿄고등법원 중국인 위안부 소송에서 원고 측 증인으로 출석
15.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다”고 말함
16. “전쟁이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
17. 자신의 가해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려 노력
이 증언들은 그의 저서 『ある日本兵の二つの戦場 ― 近藤一の終わらない戦争』과 2003년 도쿄고등법원 중국인 위안부 소송 법정 증언 등에 기록되어 있음
전쟁의 진짜 얼굴은 가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배우 하영 집안 관련해서 새로운 팩트 체크가 또 터짐.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가 정부 공식 기록이랑 관보 뒤져서 밝혀낸 내용인데, 하영 측이 집안 자랑으로 내세우던 증조부 안상호의 핵심 업적이 사실 한국 근대 의학의 선구자 김익남 선생의 업적과 뒤바뀐 거 아니냐는 의혹임.
그동안 하영이랑 하영 부친(2002년 중앙일보 기고문)이 주장한 안상호 스펙 요약:
지석영과 함께 관립의학교 교관 역임
4년간 32명의 근대 한국인 의사 배출
초대 한성의사회장(의사연구회 회장) 역임
문통이 국짐 놈들 따로 불러 골프 치며 "허허, 이제 87년 체제도 많이 낡았지요." 이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음? 항상 떳떳하게 행동하셨음.
개헌을 하고 싶으시다? 정면으로 개헌안 마련하시고, 당당히 서명함. 부칙에 당신의 임기를 명확히 제한하셨음은 물론임.
국정을 좀 문통처럼 깔끔하게 해라!
독립투사 자손 피는 못속이는 사례
허미미
독립투사의 자손인줄모르고
일본에서 자람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유도를하며
일본 1위찍음
할머니가 너는 독립투사의 자손이라며
너의 할아버지는 허석이고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를 하라
유언
허미미는 일본의 모��� 좋은조건을
뿌리치고
한국으로 귀화 파리올림픽
은메달을 땀
포부가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따서
허석 할아버지 묘에바치겠다 인터뷰
지금은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워
한국에서 생활
긴 싸움이었습니다. 마침내 함께 해냈습니다.
방금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검찰개혁의 여정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누구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외롭고 험난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에게 주���진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다했지만, 검찰개혁의 본질은 조직적인 왜곡과 공격 속에 가려졌습니다.
옳다고 믿는 일을 추진하면서도 매일같이 사실을 바로잡고 개혁의 진의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물러서면 편할 것이라는 유혹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개혁은 개인의 명예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검찰권의 오랜 관행과 맞서야 했고, 그 책임이 제게 주어졌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개혁의 필요성을 믿고 힘을 보태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형사사법제도가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모든 수사기관이 견제와 책임 속에 제 역할을 다하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