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경기도만으로 똑똑히 기억한다.
이재명이 경기도청에 들어온 이후, 완전히 청산되었던 부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눈오면 제설도 안되고 정류장도 개판나고 보도블럭도 깨진 채 방치되었다.
그런 이재명이 지금 김문수, 오세���, 남경필에 과를 돌리는 행위는 솔찍히, 구토가 난다.
저기 종로 탑골공원을 지나 낙원상가 뒷골목엔 늙은 음악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인력 시장이 있었다. 비록 연주인은 아니었지만, 송해거리에 허름하게 자리 잡은 국밥집에 앉아 선지해장국에 돼지 머릿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을 들이켜노라면 묘한 재미가 있다. 옆 테이블에서 얼큰하게 약주를 걸친 노인네들의 대화를 엿듣는 맛이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독신자들한테 '외로움 세금'을 왕창 걷어서 신혼부부한테 몰아주면 단박에 해결돼!" "서울 시내 주차장이 모자라? 한강에 거대한 스티로폼 띄워서 부유식 주차장 만들면 되잖아!" "전기가 부족하면 교도소 죄수들 방마다 자전거 발전기 달아서 하루 종일 페달 밟게 해!"
소주 기운이 올랐을 땐 "��, 순간 꽤 기발한데?" 싶어 무릎을 치다가도, 다음 날 술이 깨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어지간히 취했었구나" 하며 피식 웃고 마는 전형적인 술자리 헛소리들이다. 딱 이 수준, 국밥집 취객들이 얼큰하게 취해 내뱉는 안주거리 수준의 상상력이 작금의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내놓는 청년 주거 정책의 현주소다.
3선 중진이자 장관까지 지낸 민주당 황희 의원이 내놓은 '버스 하우스' 구상을 보라.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에게 1만 세대나 공급하겠다는 이 기막힌 아이디어는, 탑골공원 취객의 허풍이 아니라 일국의 집권여당 의원의 입에서 나온 공식 제안이었다. 네덜란드의 보트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5,000억 원이면 뚝딱 해치울 수 있다��� 호언장담한 그 얄팍한 대담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상하수도 배관은 어떻게 연결할 것이며, 얇디얇은 철판 외벽으로 한국의 혹한과 혹서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 뻥 뚫린 창문 너머로 여성 청년들의 치안은 도대체 누가 담보한단 말인가. "차라리 고시원이 낫다"는 대학생들의 절규는 배부른 투정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상식적인 반문이다. 도대체 청년들의 삶을 얼마나 하찮은 취급을 했으면, 폐차장으로 가야 할 깡통 버스를 '청년 주택'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덮어 내밀 수 있단 말인가?
여론이 무섭게 박살 나자 민주당은 황급히 당의 공식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해당 의원은 "순수한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며 슬그머니 게시글을 지웠다. 청년들의 주거를 담보로 던져보는 전형적인 간 보기 후 꼬리 자르기다. 간은 제발 집에서 찌개와 국을 끓일 때나 보시라. 어제저녁 들이켜신 양주가 아직 덜 깬 것이라면, 엄한 청년들 속 뒤집어놓지 말고 당장 시원한 냉수나 한 사발 들이켜고 본인 속부터 차리는 게 순서 아닌가.
한 번 뱉어낸 얄팍한 인식의 밑천은 삭제 버튼을 누른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폐버스를 집에 빗대는 이 기괴하고 오만한 소꿉장난 앞에서,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은 오늘도 씁쓸한 깡소주를 들이켤 수밖에 없다.
🚨 20세기에 실패한 공산주의는 왜 다시 고개를 들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부자 한 사람에게 500달러를 빼앗는다.
다섯 사람에게 100달러씩 나눠준다.
정치인은 1표를 잃고 5표를 얻는다.
이런 방식의 포퓰리즘이 반복되는 구조다.
버스를 공짜로 해주겠다.
현금을 나눠주겠다.
세금은 부자와 기업에게 더 걷겠다고 한다.
당장은 모두가 이익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업과 자본은 세금이 낮은 곳으로 떠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뉴욕·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와 플로리다로 기업과 자본이 이동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소련이 무너진 뒤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실패를 잊기 시작했다.
그 틈을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은 이미 수없이 증명했다.
지금 다시 고개를 드는 것처럼 보여도,
공산주의는 현실에서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 출처: 인사이트 윈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