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유별난 한국사랑에 대한 진실
한국인은 유독 자신을 국가와 강하게 연결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외국인을 만나면 “김치 좋아해?”, “BTS 알아?”, “한국 드라마 봐?”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기보다, 상대가 한국을 얼마나 알고 좋아하는지 확인하려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친밀감 표현 방식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주로 한국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아왔다고 호소한다.
만약 좋아한다고 대답했다면 "애인 있어요?", "나이는 몇살이세요?", "무슨 차를 타시나요?", "연봉은 어떻게 되나요?" 같은 사생활을 물어오는 방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런 한국만의 특이한 친밀감 표현에 대해 당혹감을 느끼는 외국인들이 상당했다. 내 외국인 지인들도 이런 것에 대해 나에게 호소했던 적도 있었고 말이다.
한국의 컨텐츠를 좋아하는 것을 곧바로 자신을 좋아한다라는 것으로 결부시킨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 앞에서도 한국의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면 거리감을 제로로 하고 민감한 사생활을 물어온다.
반대로 싫어하거나 관심없다는 듯이 대답했다면 뜨거웠던 감정은 곧바로 차가워지고 드물게는 적대적인 태도로 변하기도 한다.
한국에 관광온 외국인이 한국인들의 거리감이 없는 다정함이라던가에 반했던 이유는 서구권에 한정해서 개인주의와 프라이버시를 중시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특정인에 대해 깊이 파고 들지 않았기에 고평가했다는 것으로 추측한다.
반면 그 다정함이라는 게 곧바로 무례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은 자각하고 있을까?
사람의 관계또한 일방적이지 않으며 상대주의 원칙을 따르고 좋아지게 되려면 서로가 시간을 두고 존중과 이해로의 노력이 중요하다. 갑자기 친해진 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히려 그에 따르는 부작용만 남게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태도는 민족주의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외국인을 대하는 방식, 사람과의 관계에서 “빠른 관계”를 중시하면서 한국인과 한국을 거의 일체화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민족주의와 정확히 맞물려있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지 모르는 이야기.
1977년, 필리핀 마닐라. 아시아 여러 나라 대표들이 모인 국제회의장.
한국 대표가 단상에 서서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제2차 세계대전을 매우 강경하고 수위 높은 반일 발언으로 맹렬히 비판했다.
35년간의 강제병합,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문화말살 정책 등 일본을 날카롭게 성토하는 내용이었다.
회의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강렬한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인도네시아의 알리 무르토포 장군이 손을 들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자 정보차관이었던 그는, 신질서 정권의 실세이자 정보·외교 공작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발언 기회를 얻더니, 한국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일본은 아시아의 빛나는 등불이다. 일본은 아시아를 독립시키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이는 아시아 민중이 해야 할 싸움이었지만, 일본 민중이 나서서 희생한 것이다.”
회의장이 순간 조용해지더니, 동남아시아 국가 대표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알리 무르토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한국 대표는 그 자리에서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던 만큼, 이 한국 대표의 역사 인식과 강경한 반일 기조는 당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의 피해국으로서 일본 제국주의를 강하게 성토했던 그의 발언이, 오히려 ‘아시아 독립의 은인’으로 일본을 보는 동남아 시각 앞에서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무르토포 본인의 후일 회고에 따르면, 그날 그는 인도네시아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게 일본 통치기(1942~1945)는 네덜란드 식민지배 350년을 끝내준 ‘해방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강하게 품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 인식은 과연 옳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한 번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https://t.co/pil9N2vwD3
얘 진짜 무식하다ㅋ 아 유우시 본인도 모르는걸 어떻게 해명을 해ㅋㅋ 본인도 증조할배가 노비였던거도 모르면서ㅎ
야, 니가 쓰는 성 가짜고 증조할배가 돈 주고 사온거여. 너 노비 후손이라니까? 몰랐지? 노비증조할배가 재판에 기소당하는 후손 보고 참 기가 막혀하겠다ㅋㅋ
https://t.co/kwJZeuBIps
조작 아님. 이 분 증증조할배 노비신분 해방시켜준게 바로 유우시 조상임
조선은 백성의 반이상이 노비였음. 말만 노비해방 하다가 모양만 하는 척 진전도 없었는데 실질적으로 한꺼번에 노비해방 된 건 일본이 오고 나서임
감사해도 모자를 판국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 본보기를 확실히 보여주고계심
받)
71년생, 00:20 아빠가 안들어온다고 신고, 01:00경 투신 발견, 변사 확인, 서장 주재 회의 중.
(서초서) 본관~서관 사이 샛길에서 발견. 신고는 변사로 접수. 추락 여부는 아직 확인 중
유서발견 딸이 신고 ...미안하단 말만..김건희 관련 내용 없었다고 함
김건희의 도이치는 무죄로 확신했으나 민주당 추정 정치권과 민중기특검쪽 압박으로 선고 전까지 너무 괴로워했다고 함. 이에 도이치를 억지로 유죄로 돌려 판결해 놓고 양심에 어긋나 평소 가까운 극소수 지인에게만 괴로움 토로했다고. 비록 무죄인 도이치를 유죄로 쓰긴 했으나 형량이 적다고 선고이후에도 지속적인 비난과 압박에 시달림. 현재 자살로 추정
*이런 글이 떠돌고 있네요
[ 왼손잡이 에렌 티저 PV 공개 ]
언젠가 무언가가 되기를 꿈꾸는 평범한 디자이너 코이치와
압도적인 재능으로 인해 고뇌하는 천재 화가 에렌
두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십수 년을 그린
마음을 파고드는 청춘 크리에이터 군상극―
<자막 왼손잡이 에렌>
▶애니원, 2026년 4월 16일(목) 0시 30분 첫방송
일제시대 ‘강제징용’ 의 실상
흔히 한국에서는 징용을 ‘무급 강제 노동’으로 기억하지만, 당시의 1차 사료들이 말하는 실상은 다릅니다.
당시 노동 동원은 고임금과 체계적인 복리후생이 담보된 국가적 프로젝트였습니다.
특히 탄광이나 군수 공장 노동자는 당시 지방 공무원을 상회하는 급여를 받았으며, 가족수당, 별거수당은 물론 식사, 의료, 심지어 오락 시설까지 제공되었습니다.
당시 징용은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미숙련 노동자라도 본토 탄광에서 일하면 고향 농촌보다 몇 배 이상의 현금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에, 일부 지역에서는 모집 경쟁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숙소 완비와 고향 송금 제도는 가난한 조선농촌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자립 수단이었고
신체 조건과 역량을 갖추어 선발된 이들은 사실상 당시 노동 시장의 ‘엘리트’ 측면이 있었습니다.
또한 “가혹한 생활뿐이었다”는 주장으로는 당시 조선반도에서 일본 본토로 향하는 밀항자가 속출했던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징용령 이전의 ‘자유 모집’이나 ‘관 알선’ 단계에서부터 이미 높은 처우를 기대하고 자발적으로 응모한 인원이 상당했습니다. 오히려 일본 당국이 밀항을 엄격히 단속하고 도항 증명서가 있는 사람만 골라 보낼 정도로 일본행 희망자가 넘쳐났습니다.
징용을 단순히 ‘강제’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하는 것은 당시의 복잡한 경제적 흐름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당시 일본과의 압도적인 경제 격차와 그로 인한 노동력의 자발적 이동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증언 위주의 서사를 넘어, 행정 기록과 신문 자료가 증명하는 실상을 확인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