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공장장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왔습니다. 그러나 꺾이지 않겠습니다>
지난 금요일, 뉴스공장에 출연했습니다.
사실 그날, 저는 이틀간 총력을 기울여 후보 등록 서류와 공약을 검토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습니다. 무리한 일정인 걸 알았지만, 당대표 후보들이 전부 출연했고 저만 남았다고 해서 출연을 강행했습니다. 청년 후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리인 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저의 부족함이었습니다. 인정합니다.
정청래 후보 떨어뜨리러 나온 거 아니냐는 김어준 공장장의 집요한 질문에 저의 진심이 왜곡된 것 같아 말려든 것 같습니다.
노련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저의 부족함입니다. 말도 계속 끊기더군요. 저도 똑같이 끊을까 하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인터뷰 서두에 경선 시스템 개혁을 비롯해 제가 바꾸고자 하는 공약을 이미 말씀드렸기 때문입니다.
할 말은 이미 했으니, 남은 시간은 경청하겠다고 했습니다. 똑같이 끊으면 저도 똑같은 사람이 되니까요. 저는 끊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정치이기도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오면서 저 한마디로, "아, 이번 생은 망했다", '이생망'을 외쳤습니다. 준비한 걸 왜 다 못했는지, 왜 그 '경청'만 그토록 생각이 났는지요.
주변에서 많은 질책이 있었습니다. 저 김보미, 열심히 경청하며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갈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저를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 김보미, 경청하며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김어준 총수는 제가 왜 출마했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공정, 청년, 세대교체, 민주주의는 온데간데없고 "왜 나왔냐고. 당선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다들 안다고. 그러니까 현실을 인정하라고" 그러면서 "정청래 후보가 나오면 안 되는데 나왔기 때문에 경종을 울리려고 나온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몰아갔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저는 당선되기 위해 출마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싸우는 대상은 특정 후보 한 사람이 아니라, 민주당을 수십 년 동안 지배해 온 686 기득권정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계란입니다. 686 기득권은 바위입니다.
하지만 그 바위는 새 바위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썩고, 오랫동안 병들고, 수많은 균열이 생긴 낡은 바위입니다. 제 온몸을 던져 그 바위에 균열 하나를 만드는 것, 그 균열 사이로 다음 청년이 한 번 더 망치를 내리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여러분. 월드컵 우승 못하면, 출전하지 말아야 합니까? 서울대 못 가면, 공부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이길 수 없던 독재정권에 왜 맞서 싸우셨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왜 바보 소리를 들으며 부산에서 출마했고, 왜 대통령 선거에 나섰습니까?
질 것이 뻔하다던 그 도전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만들었고, 지역주의에 금을 냈습니다. 민주당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란으로 바위를 친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께서 출마하시던 그때, 함께 계란으로 바위 치던 사람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라. 줄 똑바로 서라. 나서면 정치 생명 끝난다. 이게 현실이다."
저의 첫 여론조사, 2% 나왔습니다. 비웃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2002년 제16대 대선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초기 지지율이 몇 %였는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2%였습니다.
2%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2%는 절망의 숫자가 아니라, 희망이 출발하는 숫자입니다.
기득권은 커 보일 뿐, 당원과 국민의 열망을 이길 수 없습니다. 권력은 강하지만, 민심은 더 강합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김어준한테 두들겨 맞았다"고들 하십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었고, 서툴렀고, 부족했습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전진하겠습니다. 실수하고 서툴러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습니다. 아니, 해야만 합니다.
일부 지지자들의 댓글폭탄, 문자폭탄도 쏟아집니다.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 김보미, 부끄러움과 좌절을 탁탁 털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나아가보겠습니다.
어제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오늘 새로운 입사지원서를 쓰고 계시는 우리 청년 여러분.
오늘도 오디션에서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뒤돌아 나오신 우리 예술인 여러분.
직장 상사의 모진 질책에 사직서를 품에 넣고도, 오늘도 출근하신 우리 직장인 여러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내일이지만,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계신 우리 모든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이 꺾이지 않는 마음을, 함께 품읍시다.
감사합니다.
@mi_ro__ 가부장제에 스스로 기어들어가서 부역자짓하면서 사회주류도 되고싶고 강자한테 붙어서 꿀빨거면 난 페미가 아니구나 인정하면 되는데 여권 운동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뽕도 느끼고 싶고 비혼페미에겐 니들이 하는건 진정한 페미가 아니라 여혐이라고 호통도 치고 싶고 남미새 주인공병 도진거라고밖엔
정치인으로서 박근혜의 업적은 여자라서 억빠 당한게 훨씬 많음. 일베들이 노무현 모욕하는 것보다 훨씬 심하게 조롱받고 언론에서 사생활 다 파헤치고 온갖 유언비어 날조 퍼뜨리고 성희롱하고 그냥 한 사람을 거의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죽여버린 거나 마찬가지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버티면서 아직 존재감 드러내는 것도 박근혜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보여줌.
남자를 좋아하면 ‘남미새’, 싫어하면 ‘과격한 페미’.
여자는 어느 쪽을 택해도 욕먹는 구조인데, 여성끼리 서로 자격 심사까지 해줄 필요 없음.
페미니즘은 여성을 또 다른 정답지에 가두는 운동이 아님.
남자를 만나든 안 만나든, 결혼·출산을 원하든 거부하든 여성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게 핵심이지.
우리가 비판할 건 여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남성들과 가부장제임.
대구남자 결혼시장에서 기피됐던 이유
한때 대구남자 결혼시장에서 은근히 꺼려지던 시절 있었음
명대사가 하나 있는데
"어디 여편네가 나가서 돈번다카노 집에서 살림이나 해라"
처음엔 그냥 무례함 그 자체로 들림
근데 5년 곱씹다보니 속 뜻이 보임
풀어보면 이런 뜻이었음
"밖에서 힘든 일 내가 다 감당할테니 너는 고생하지 마라 내가 있음"
결국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전달 방식이 문제였던거임
지켜주겠다는 말이 서툴러서 협박처럼 들렸을 뿐임
요즘은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 단 한명도 없을 듯 ㅋㅋㅋ
Chrystul Kizer was 17 when she killed the 34 year old man who had abused and sex trafficked her. Although a life sentence was sought she was sentenced to 11 years in prison in 2024 followed by five years of supervised release. They don't do this to men who murdered their w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