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별로 없어요는 사실 과학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과학자다운 발언이다. 생물학자들이 자기 분야 안에서는 실제로 저 감각을 뼈저리게 갖고 있다. 다만 그 겸손이 분야 경계를 넘는 순간에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의 예외가 된 인간을 보지 못했다.
겸손이라는 건 사실 성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지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자가 자기 분야에서 겸손한 건 그 분야의 무지의 지도를 갖고 있으므로. 개미 연구자는 개미에 대해 뭐가 아직 안 밝혀졌는지, 어떤 논문이 어떤 논문에 의해 반박당했는지, 자기가 확신했던 가설이 데이터 앞에서 몇 번 무너졌는지를 몸으로 기억한다. 수십 년간 내가 틀렸다는 경험을 그 분야 안에서 반복적으로 당해온 것이다.
그런데 분야 경계를 넘는 순간, 그 흉터가 없다. 저출산이나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틀려본 경험이 없다. 동료 심사에서 깨져본 적도, 학회에서 반박당해본 적도 없다. 무지의 지도가 없으니 자기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
아이러니한 건 전공 분야에서 쌓은, <나는 복잡한 걸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은 그대로 들고 넘어간다는 것.
또한 전문가일수록 패턴이 보인다는 감각이 강하다. 개미 군집에서 사회 구조를 읽어내던 사람이 인간 사회를 보면, 진짜로 뭔가 보이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자기 분야에서는 그 직관을 데이터로 검증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는 반면, 남의 분야에서는 직관이 검증 없이 바로 결론. 겸손을 만들어내던 장치, 그러니까 동료 심사, 재현 실험, 학계의 반박 같은 외부 교정 시스템이 통째로 사라진 채 직관만 남는 것.
이것은 성품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므로, 우리 모두가 그렇다.
모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