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마친 대한민국 대통령이 새로운 <전직 대통령의 역할>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아직 우리에게 낯섭니다.
저는 대한민국 정도의 나라라면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세계의 전·현직 정상들과 만나고, 국제적인 연구기관이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무대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직은 끝나도, 그동안 쌓은 경험과 세계 지도자들과의 인연까지 함께 끝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전직 지도자들이 그렇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퍼시픽센추리 연구소 갈라 만찬과 랜드연구소에서 연설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제17차 당사국총회(COP17)에 참석해 개회사와 기조연설을 합니다. 전 세계가 사막화와 토지 황폐화, 가뭄에 어떻게 함께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유엔 총회입니다.
이번 몽골 방문을 계기로 여러 전·현직 국가 수반들과도 만납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지금 세계가 마주한 여러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예정입니다.
우리도 이제 이런 모습의 전직 대통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참 좋습니다. 문 대통령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러한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잘 모시고 다녀오겠습니다. 덕분에 저도 의미 있게 방학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https://t.co/jJ24nLsNjA
#뚜벅뚜벅
회식에서 술을 안 마셨더니.
부장님이 제 차 키를 보며 말했습니다.
“잘됐네. 취한 사람들 좀 집에 데려다줘.”
그날 저는 34km를 돌아.
새벽 1시 42분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항생제를 먹고 있어서.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약 때문에 술 못 마십니다.”
라고 미리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장님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오히려 잘됐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회식이 끝날 무렵.
술에 취한 팀원 몇 명이 택시를 잡고 있었습니다.
부장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너 차 가져왔지?”
“네.”
“그럼 세 명만 집까지 데려다줘.���
순간 당황했습니다.
세 사람 집은 제 집과 방향도 달랐습니다.
한 명은 아예 반대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막내였고.
부장님이 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술 취한 팀원 세 명을 태웠습니다.
한 명씩 집 앞에 내려주고.
마지막 사람까지 데려다준 뒤 내비게이션을 찍었습니다.
집까지 돌아가는 길까지 합치니.
34km를 더 운전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42분이었습니다.
씻고 누우니 거의 2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부장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어제 늦었어도 지각하면 안 됩니다.”
그 문장을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늦게까지 놀아서 늦게 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팀원들 집에 데려다주느라 늦어진 거였습니다.
며칠 뒤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지난번에 사람들 데려다주면서 기름도 꽤 썼는데.”
“주유비 같은 건 처리 안 되나요?”
부장님이 웃었습니다.
“에이, 뭘 그런 걸 받아.”
“어차피 네 차 타고 너도 집에 갔잖아.”
저는 제 집과 반대 방향으로 34km를 돌았는데.
그 말로 끝이었습니다.
그 뒤로 다음 회식 날짜가 잡혔습니다.
이번에는 일부러 차를 집에 두고 갔습니다.
‘차 없으면 적어도 운전은 안 시키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회식이 끝나갈 때쯤.
부장님이 또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 차 열쇠를 내밀었습니다.
“오늘도 술 안 마셨지?”
“내 차로 애들 좀 데려다줘.”
순간 정말 황당했습니다.
이번에는 말했습니다.
“부장님.”
“이게 업무 지시라면 메일로 한번 보내주세요.”
부장님 표정이 굳었습니다.
제가 이��서 말했습니다.
“제가 운전자로 지정되는 건지.”
“운전 중 사고가 나면 회사가 책임지는 건지.”
“귀가 동선과 비용 처리는 어떻게 되는지도 같이요.”
부장님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해?”
제가 대답했습니다.
“업무라면 기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한참 서 있던 부장님은.
결국 제 손에서 차 열쇠를 다시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대리운전을 불렀습니다.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술을 안 마신다는 건.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를 태워다줄 의무가 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부탁으로 할 때는 너무 쉽게 시키던 일이.
책임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하니까.
갑자기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이 되더라고요.
■기욤 패트리가 수백억 자산가가 된 과정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기욤 패트리가 나오더라. 한눈에도 여유로워 보였다고 할까.
수영장까지 딸린 경기도 양평 2층 단독주택 별장에, 서울 자가는 따로.
1982년생 기욤은 스타크래프트 1세대 프로게이머임.
1998~2000년 리그 초창기를 평정한 톱티어 랭커였고, 비공식이지만 최초의 억대 연봉 게이머로도 거론됨.
대���차 "3개월만 있다 가려던" 한국이 20년 넘는 터전이 된 것도 이때부터.
은퇴 후엔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다 2014년 '비정상회담'으로 방송에 데뷔해 제2의 전성기를 엶.
그가 제대로 자산을 증식한 것은 투자를 통해서.
방송을 쉬는 동안 비상장사 신라젠 투자로 재미를 봤고, 그 돈을 빼서 2018년 비트코인에 넣음. 개당 700달러, 우리 돈 100만원도 안 하던 시절.
그것도 포커 치는 게이머 친구들이 해외 이동 시 현금 한도 탓에 코인을 쓰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간 케이스라고.
처음엔 조금 담갔다가 공부한 뒤 크게 실었고, 이후 안 팔고 묵히게 됐다고.
수익률은 방송마다 30배, 50배, 60~70배, 한창때 100배까지 회자됐고 누적 5400%라는 소문도 있음.
결혼 전 아내에게 "평생 돈 걱정 안 하게 해주겠다"던 프러포즈의 배경이 이 코인 대박이었던 것.
"은퇴해도 편안히 살 정도는 되고, 투자를 꾸준히 잘하면 별장 정도는 얻는다"고 말하던데, 추정키로 수백억대 자산가인 것으로 보임.
지금은 "한 번 사면 안 건드린다, 10년 장투가 답"을 신조로 전업 투자자로 살고 있고, 골프 라운딩만 매주 3~5회씩 나갈 정도로 여유롭게 지낸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관려하여 쏟아내는 말들이 대부분 사실과 다릅니다.
방위비 분담금에 관련된 일들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의 숫자도 틀립니다. 거짓이지요.
“우리 관계를 당신에게만 이익이 되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를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주는 바보처럼 보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If you do not think of our relationship as a stepping stone that only benefits you, then you would not make me look like an idiot that will only give without getting anything in return)”
2019년 8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서한의 후반 부분���니다.
김위원장은 Idiot….바보 혹은 병신이란 말까지 꺼내면서 불쾌감을 들어내며 서한은 끝납니다.
이후로는 북미간에 혹은 두 정상간에 소통은 없다고 알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소통하고 있고, 그의 긍정적 반응이 있었다는 발언이 거짓이 아니길 바랄 뿐 입니다.
추정 자산만 몇백억 강동원이 빚 갚는 이유
이 배우 집안이 좀 특이함
한 집안 안에 친일이랑 독립운동이
같이 들어있음
외증조부 되는 사람이 일제강점기 때 광산으로
큰돈 벌던 인물인데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파임
근데 반대로 외가 쪽은 독립유공자 후손임
한 핏줄에 정반대 역사가 같이 흐르고 있던 거임
문제는 옛날 인터뷰였음 2007년에 집안 어른 미담만
듣고 자란 탓에 외증조부를 자랑스럽게 말함
이게 10년쯤 뒤 다시 퍼지면서 크게 논란이 됨
보통 이런 상황이면 조용히 넘기려 하는데
강동원은 안 그랬음
직접 사과문을 냈음 과거를 제대로 몰랐던 것
미숙하게 대응한 것 다 내 잘못이라 인정함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님 말보다 행동으로 갚기 시작함
영화 1987에 나옴 이한열 열사 역할이었음
무겁고 민감한 소재라 부담 큰 작품인데도 맡음
그리고 조용히 이한열기념사업회에
2억을 익명으로 기부함 본인이 밝힌 것도 아니고
한참 뒤에 우연히 알려짐
거기서 또 안 끝남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랑 인연을 이어감 여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밤늦게 혼자 빈소를 찾아 조용히 조문하고 옴
누가 ���킨 것도 아님 안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함
근데 스스로 빚 갚는 심정이라며 계속 행동으로 보여준 거임
집안 역사는 못 고르는 거임 근데 그 뒤 어떻게 사는지는
본인이 고를 수 있음
강동원이 택한 건 도망이 아니라 정면돌파였음
친일파 후손 중에 쌉 레전드
박승유 선생님임.
을사오적인 박제순의 손자고
아버지도 친일 관료인 박부양 😱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군에 입대했지만
탈영에 광복군에서 활동했다함..
광복군 당시 자주했던 말이
'할아버지는 대체 왜 후손들을 욕��게 하는가'
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 하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
집안의 부와 명예를 버리고
미래가 안보이는 지옥으로 뛰어는 선생님
감사합니다 🇰🇷🇰🇷
사람들을 웃기던 배우 권오중이
어느 순간 ��송에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했을 것입니다.
‘인기가 떨어진 걸까.’
‘배우를 그만둔 걸까.’
하지만 이유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배우보다
아버지의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오랜 검사 끝에
아들이 극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치료 방법조차 뚜렷하지 않은 상황.
아버지라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권오중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활동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습니다.
단순히 아픈 아들을 돌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의 삶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공부한 것입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자
그 곁을 지켰고,
졸업하는 순간까지
함께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배우로서 활동하지 않았던 시간이
잃어버린 세월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권오중에게는
그 시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배우에게는 수많은 역할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오중이 살아온 역할 가운데
가장 진심이 필요했던 역할은
어쩌면
‘아버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끝나지 않는 역할.
대본도 없고,
정해진 결말도 없는 역할.
아들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아들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 함께 기뻐하며,
아들의 인생을 묵묵히 지켜주는 사람.
그것이 아버지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배우가
자신의 인생에서는
웃음보다 가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공한 사람을 보며
무엇을 이루었는지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진짜 값진 삶은
무엇을 포기했는지에서 드러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권오중에게 배우라는 이름은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라는 이름만큼은
끝까지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웃기던 배우가
가장 진심으로 살아낸 역할.
그것은 어쩌면
평생 단 한 번만 맡을 수 있는
‘아버지’라�� 역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1.요즘 전대 후보들이 너나없이 노무현 정신을 외치고 있는데, 노무현이 어려울때 곁을 지킨 분들은 사실 몇명 되지 않았지오.
2002년 4월, 대통령 후보로 뽑았으나 여론이 뜨지않아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가까이 안갔는데,
나는 그때 전직의원으로 원외에 있을때ᆢ.
9월?어느날 궁금해서 새천년민주당 9층에 이강철 후보특보를 만나려고 엘베터를 내렸는데
마침 노무현 후보가 상기된 얼굴로 젊은 위원장들과 걸어오다가 나를 보더니,
"이의원, 반갑습니다.
차한잔 합시다"
알고보니 그날 노후보는 당이 자신을 지원 안하니까,
기자실에서 마이 웨이 행보를 선언하고 후보실로 돌아오다가 나와 조우했던 것.
그 중요한 회견에도 노후보와 함께 있던 사람중,
현역의원은 송영길 한사람 뿐이었다.
원외로는 우원식 우상호 오영식 이강철 안희정(?)등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어쩌면 대선후보의 기자회견에 민주당 현역의원이 한명 뿐인가 충격을 받았었다.
(계속)
80억짜리 집 가진 사람이 8천만원 세금 내는 게 그렇게 억울하냐?
이 논리가 이상한 이유는 간단함.
80억짜리 집을 갖고 있다고
그 사람 통장에 80억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님.
집값이 30억에서 80억이 됐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면 50억의 현금이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산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매년 상당한 현금 세금을 요구하면서
80억 집 가진 사람이 그 정도도 못 내냐라고 말하는 순간 조세의 적정성에 대한 논쟁을
그 사람의 지불 능력문제로 바꿔버리는 거다.
핵심은 부자�� 불쌍하냐가 아니다.
실현되지 않은 자산가치 상승을 어느 정도까지 보유세에 반영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문제다.
소득이 늘지 않았는데 집값만 올라도 세금은 올라갈 수 있다.
그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그럼 집 팔고 나가라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수십 년 살던 집의 가격이 주변 개발과 시장 상승으로 뛰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매년 그 상승분만큼 현금을 번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부동산 보유세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산을 보유하는 데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고가 자산에 더 높은 부담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80억 집이면 8천만원쯤 내야지와 그 세금의 산정 방식과 부담 수준이 합리적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세금은 저 사람 부자니까 더 뜯어도 된다는 감정으로 설계하는 게 아니라 소득, 자산,실현 여부, 현금흐름, 조세 형평성을 놓고 설계해야 한다.
80억짜리 집에 산다고 매년 80억을 버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세금이 과도한지 따지는 사람에게
그 정도 세금도 못 내면 80억 집 가질 그릇이 아니다라고 하는 건 조세 논리가 아니라 그냥 자산가에 대한 감정론에 가깝다.
1907년 대구, 담배를 끊어 나라 빚을 갚자던 국채보상운동.
그 운동을 이끈 사람이 서상돈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이름입니다.
그의 둘째 아들 서병조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였습니다.
3·1운동이 터지자 만세를 자제하라며 만든 조직이 자제단입니다. 대구 자제단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결성됐습니다. 서병조는 발기인이자 자금줄이었습니다. ��� 돈의 뿌리는 아버지가 모은 재산입니다.
1934년 도쿄에서 열린 관앵회. 벚꽃 아래에서 천황을 볼 수 있었던 조선인은 단 두 명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서병조입니다. 그는 지존의 용안을 뵈어 일대의 광영이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1942년 서병조는 이상화가 국어를 가르치고 이육사가 다닌 대구 교남학교를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대륜으로 바꿨습니다. 대륜의 윤(倫)은 천황에 대한 충성과 효도를 뜻합니다.
대륜고등학교는 지금도 애국지사가 세운 민족사학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은 서병조의 외손자입니다. 2005년 노회찬 의원이 국회에서 읽은 삼성 X파일 떡값 명단에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함께 이름이 오른 홍석조 전 광주고검장도 같은 집안입니다.
폭로한 기자와 의원은 처벌받았습니다. 돈을 주고받은 쪽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서병조는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 14호로 붙잡혔습니다. 한 달 뒤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했고, 그는 풀려났습니다.
청산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오늘까지 이어지는지, 학교 이름 하나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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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탐사 #역사탐사 #서병조 #대륜고 #삼성X파일
민주당이 위기에 빠질 경우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원이 국민뜻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이고,
둘은, 당 지도부가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갈 때입니다.
오늘 충청지역 당대표 경선결과를 보면,
국민과 당원이 대통령과 함께 가라고 명령하고 있 습니다.
전에 말했듯이 민주당이 여당인 것은 의석이 많아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가진 정당이기 때문.
야당은 옳은 말만 하면 되지만,
여당은 대통령과 함께 결과에 책임을 집니다.
국정수행에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한데 대통령과 민주당이 따로 놀아서는 성공할 수가 없지오.
그러므로 유투브식 이상주의는 결과적 실패를 불러옵니다.
나자신도 2024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민주주의에 실망해서 제3의 정치라는 이상론으로, 민주당을 1년여 떠나있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총선결과를 보고,
민주시민의 뜻은 이상주의적 실험보다는,
하나의 민주당으로 뭉쳐 윤석열 정권에 맞서라는 것임을 깨달았지오.
국민의 뜻은 항상 이렇게 현실적이고 직선적입니다.
' 나는 이재명을 사랑하지만, 내 생각이 더 옳은 것이므로 이렇게 당정관계를 고쳐서, 결국은 이재명을 지켜내겠다, ' 는 식의 돌아가는 길을 국민은 원하지 않아요!
하물며, 이 정권은 망할 거라고 저주하면서 국민과 대통령을 사랑한다는 궤변은 자유당 때라면 몰라도 이 시대에는 믿을 국민이 없어요.
대통령도 인���이라 항상 옳은건 아니고, 생각이 나와 다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이 나라에 대통령을 비판할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야당이 소릿꾼이라면, 대통령과 여당은 수확을 거둬야 하는 농삿군입니다.
농삿군 힘빠지게 하는 민주당 지도부는 절대로 안됩니다.
어떻게 되찾은 정권입니까!
대통령을 가진 정당의 프리미엄을 무기로,
한데뭉쳐서 빛의 혁명을 완수하고, 서러운 사람 없는 복지의 대동세상을 만듭시다!
기억도 나지 않는 중학교 동창이.
제 네 살 딸에게 100만 원을 주고 갔습니다.
돈을 돌려주려고 전화하자.
친구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13년이 지나도 여전히 착하고 다정하네.”
딸과 카페에 앉아 있는데.
처음 보는 여자가 다가와 반갑게 아는 척을 했습니다.
자기는 제 중학교 동창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얼굴을 봐도 기억이 ��지 않았지만.
상대가 민망해할까 봐 저도 반가운 척 인사했습니다.
친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잠시 뒤 돌아온 친구는.
예쁜 분홍색 봉투와 명함을 건넸습니다.
“집에 가서 봐.”
명함에는 디자인 회사 대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 10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놀라서 곧바로 전화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미안한데.”
“나는 네가 잘 기억나지 않아.”
“우리가 이 정도 돈을 주고받을 만큼 친했던 것 같지도 않아.”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친구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말했습니다.
“13년 만에 만났는데도.”
“넌 여전히 착하고 다정하네.”
친구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점심시간마다 혼자 밥을 먹었는데.
제가 자기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줬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화장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썼을 때도.
다른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끝까지 친구 편에서 사실을 확인해줬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기억조차 희미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그 일을.
13년 동안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때 네가 없었으면.”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했을 수도 있어.”
친구는 카페에서 저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울고 싶을 만큼 반가웠다고 했습니다.
제가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자.
친구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거 너한테 준 거 아니야.”
“네 딸한테 준 거니까 착각하지 마.”
“나한테 잘해준 아이가.”
잘 자라서 엄마가 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해주자.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게 됐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건넨 친절을 잊고 살았지만.
누군가는 그 작은 마음을 붙잡고.
13년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것을요.
<안민석이 쏘아올린 작은 공>
안민석 교육감이 경기도내 교육장들을 지역추천 공모제로 한다는 것은 놀라운 혁신이다.
종래에는 당선한 교육감이 측근을 임명하여 엽관제나 정실인사의 우려가 높았던 것.
선거때 도와준 인사들도 많을텐데 눈질끈 감고, 자신의 인사권을 포기, 지역주민의 손에 돌려준다는 것은 쉽지않은 결단이다.
과거의 교육장은 지역사정을 모르는 과객(過客)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안민석이 쏘아올린 이 결단이, 전국에 주민자치의 교육혁신을 불러오는 큰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똥 냄새 난다"는 민원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은행나무.
"이상한 냄새, 도저히 못 참겠다." 굴러다녀서 불편하다.
냄새 때문에 욕먹는 은행나무.
정부는 왜 가로수로 쫙 깔아놨던 걸까?
사실 알고 보면 은행나무가 가로수 원탑 티어라고 함.
은행나무는 미세먼지랑 매연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났음.
도시 공해를 다 마셔주는 천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하고,
자동차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도심에서도 버틸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무임.
벌레들이 극혐하는 천연 살충 성분을 자체 보유하고 있고,
도심 한복판에 농약을 칠 필요가 없어서 관리하기도 좋다고 함.
게다가 수분이 많고 껍질이 두꺼워 불에도 잘 안 탄다고.
도심에 불이 나면 불길이 번지는 걸 막아주는 방화수 역할까지 해줌.
만약 냄새 난다고 은행나무를 다 뽑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일단 공해를 다 마셔주던 천연 필터가 사라져서 공기 질이 떡락함.
매연이랑 미세먼지를 우리가 다 마셔야 될 수도 있음.
벚나무나 느티나무로 바꾸면 예쁘긴 한데 벌레가 엄청 꼬임.
각종 해충을 잡는다고 도심 한복판에 독한 농약을 팍팍 쳐야 함.
게다가 매연에 약해서 금방 죽어버리니, 교체 비용으로 세금도 살살 녹음.
좋은 장점이 훨씬 많은데 냄새 때문에 없애자는 건 너무 아까운 거임.
냄새가 나도 이로운 점이 압도적으�� 많으니 유지하자는 의견과,
너무 불편하니 싹 다 다른 나무로 바꾸자는 의견이 갈리고 있음.
도심 속 은행나무, 다들 어떻게 ���각하나요?
그대로 보존한다 vs 세금 낭비하며 바꾼다
중국인들이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연관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먼저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한국인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 낸 민족주의적 상상이 아닙니다. 금나라 시조가 신라 또는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은 금나라와 동시대를 살았던 송나라 사람들의 기록, 원나라가 편찬한 금나라 정사, 고려의 관찬사서, 심지어 청나라 황제가 명하여 편찬한 만주족 원류서에까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이 부정해야 할 대상은 한국의 인터넷 게시물이 아닙니다. 중국 자신이 남긴 역사문헌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국가서사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옛 문헌의 문장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기록은 남송의 사신 홍호가 남긴 《송막기문》입니다. 홍호는 금나라 영역에 장기간 억류되어 여진 사회를 직접 관찰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금나라 황실의 시조에 관해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이며 완안씨라 불렸다”고 기록했습니다. 원문은 명확합니다.
“女真酋長乃新羅人,號完顏氏.”
여진 추장의 조상이 신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신라 땅 부근에 살았다고 쓴 것도 아니고, 막��하게 동쪽에서 왔다고 적은 것도 아닙니다. 금 황실의 선조를 직접 ‘신라인’이라고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같은 내용은 《삼조북맹회편》에 인용된 《신록기》와 이심전의 《건염이래조야잡기》, 《건염이래계년요록》 등 송대 계통의 여러 기록에서도 반복됩니다. 어느 하나의 후대 야사에만 의존하는 주장이 아닌 것입니다.
원나라가 편찬한 금나라 정사인 《금사》 역시 금나라 시조 함보가 여진 지역의 토착 완안부 출신이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금사》 권1은 금나라 시조 함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
“금나라의 시조는 함보인데, 처음 고려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송막기문》은 신라라고 했고 《금사》는 고려라고 했지만, 두 기록의 핵심은 같습니다. 금 황실의 시조가 여진 완안부 내부에서 자��스럽게 발생한 인물이 아니라 한반도 국가에서 여진 지역으로 건너온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신라와 고려라는 표현이 엇갈리는 것도 결정적인 모순은 아닙니다. 함보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10세기 전반��� 신라가 쇠퇴하고 고려가 한반도를 통합해 가던 시기였습니다. 출신집단을 기준으로 보면 신라인일 수 있고, 이동 당시의 정치적 영역이나 후대의 지리적 인식을 기준으로 하면 고려에서 온 사람으로 기록될 수 있습니다. 김인희의 연구는 함보 관련 전승이 고려와 여진 사회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전해졌고, 여러 기록이 모두 함보의 한반도 출자를 가리킨다는 점을 근거로 함보를 ‘신라계 고려인’으로 판단합니다.
한국 측 기록도 별도로 존재합니다. 《고려사》에는 평주의 승려 금준이 여진으로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되었다는 기록과, 평주의 승려 김행의 아들 극수가 여진으로 들어갔다는 또 다른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기록의 ‘금준’은 今俊으로 적혔지만, 두 번째 기록에는 김행이 분명히 金幸으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한국 측 계보 전승에서는 ��나라 시조가 한반도 평주 지역에서 건너간 인물이며, 그 집안이 김씨였다는 기억까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도 믿기 어렵다면 이제 청나라 황실이 직접 편찬한 《흠정만주원류고》를 보아야 합니다. 이 책은 건륭제의 명으로 만주족과 청 황실의 역사적 원류를 정리한 관찬서입니다. 한국인이 쓴 책도 아니고, 청나라를 비방하려는 한족의 반청문헌도 아닙니다. 바로 청나라가 자기 조상과 만주 역사의 정통성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오늘날의 중국식 설명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이 책까지 한국 민족주의 서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흠정만주원류고》 권7은 《금사》의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을 소개한 뒤, 《문헌통고》와 《대금국지》는 그가 본래 신라에서 왔다고 기록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신라와 고려의 영역이 서로 이어지고 옛 기록에서 두 나라의 명칭이 혼용됐다고 판단하며, 신라 왕실이 여러 대에 걸쳐 김씨(경주 김씨)였다는 사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金之自新羅來無疑.”
즉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했다는 ��은 의심할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금나라의 국호 역시 신라 왕실의 김씨와 관련하여 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적고, 금나라 영역의 금수라는 강 이름에서 국호가 유래했다는 설명은 사가가 억지로 붙인 말에 불과하다고 반박합니다.
이 기록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연관성을 주장한 주체가 현대 한국인이 아니라 청나라 황실의 관찬 사서였기 때문입니다. 청나라의 관찬 역사학자들은 단순히 “함보가 신라에서 왔다”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라 왕실이 김씨였다는 사실과 금나라의 ‘금’이라는 국호를 직접 연결했습니다.
그러므로 “금나라는 신라 김씨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한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륭제가 편찬하게 한 청나라 관찬서의 결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믿고 싶지 않다는 감정은 가질 수 있지만,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편찬한 현대 교과서가 언제나 과거 왕조가 직접 편찬한 문헌보다 우선한다는 특별한 역사학 원칙이라도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학술적으로 구분해야 할 부분은 있습니다. 함보가 신라 국가에서 온 사람이라는 기록과, 그가 오늘날 의미의 혈통적 ‘한국인’ 또는 특정 신라 김씨 왕족이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같은 명제가 아닙니다. 일부 중국 학자들은 함보를 신라나 고려에 거주했던 여진계 인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강준영의 연구도 송나라 사람들이 여진 지역 일부를 신라와 연결하여 인식했을 가능성을 검토합니다.
그러나 이 반론을 받아들이더라도 기본 골격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함보와 완안씨 집단의 역사적 기억이 신라·고려와 연결돼 있었다는 점, 여진 황실이 자신들의 시조를 고려에서 온 인물로 전승했다는 점, 청나라 관찬서가 그 출자를 신라로 판정하고 신라 김씨와 금나라 국호를 연결했다는 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해석의 범위를 조정할 수는 있어도, 사료에 적힌 문장 자체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금나라와 청나라의 연결은 단순한 상상이나 음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12세기의 금나라는 여진 완안부가 세운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약 500년 뒤 누르하치는 다시 여진 각 부족을 통합해 1616년 새로운 국가를 세우면서 그 국호를 ‘금’으로 정했습니다. 만주어 국호는 ‘아이신 구룬’, 곧 ‘금의 나라’였습니다. 후대 역사학에서는 이를 앞선 완안씨 금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후금’이라고 부릅니다. 누르하치의 후금은 과거 여진 금나라의 명칭과 정치적 기억을 명백히 계승한 국가였습니다.
누르하치가 죽은 뒤 홍타이지는 1636년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금나라가 멸망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청나라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누르하치의 후금이 그대로 청으로 개칭된 것입니다. 지배집단과 황실, 군사조직인 팔기, 국가기구가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흐름은 분명합니다.
신라·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된 함보와 완안씨 계통이 금나라를 세웠고, 후대 여진 세력이 그 금나라의 이름��� 다시 사용하여 후금을 세웠으며, 그 후금이 국호를 바꾸어 청나라가 됐습니다.
이 연결을 부정하려면 적어도 후금이라는 국호가 왜 다시 ‘금’이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과거 금나라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여진계 국가를 세우고, 우연히 똑같은 금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으며, 그것도 다시 ‘아이신 구룬’이라고 불렀다는 설명보다는 역사적 계승관계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청 황실의 성씨인 애신각라, 즉 아이신 기오로에서도 ‘아이신’이 만주어로 금을 의미한다는 점은 언어학적으로 분명합니다. 여기서 ‘아이신 기오로’는 만주어 발음을 한국어로 옮긴 표현이므로 번역본을 볼 때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나라의 만주어 명칭 역시 아이신 구룬, 즉 ‘금국’이었습니다. 아이신각라 황실은 바로 아이신 구룬, 곧 후금을 세우고 지배한 황실입니다.
다만 애신각라라는 명칭을 한국 한자음에 따라 “신라를 각별히 사랑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어원이 아닙니다. 특히 ‘각라’를 곧바로 신라와 100퍼센트 동일시하거나, 이 한자 표기에 특정한 역사적 의도가 담겼다고 단정할 만한 직접적이고 완벽한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만주어 발음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글자를 ���택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최종적으로 愛新覺羅라는 글자 조합이 정착했다는 사실은 후대 사람들에게 묘한 상상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이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 단순한 음차 과정에서 생긴 우연인지는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를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관계를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로 내세우기보다는, 이미 여러 사료에서 확인되는 신라·금나라·후금·청나라의 역사적 연결 위에서 읽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한자식 언어유희이자 상징적 해석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사실로 입증된 부분과 상징적으로 해석할 부분은 구분해야 하지만, 그 우연이 만들어 내는 역사적 함의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적어도 ‘애신각라’라는 네 글자를 바라보며 묘한 연상을 느끼는 것까��� 역사왜곡으로 공산당식으로 단속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역사란 원래 질문을 통해 깊어지는 것이지, 질문을 지워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언어유희를 모두 제외하더라도 연결고리는 충분합니다.
금나라 시조 함보가 신라 또는 고려에서 왔다는 송·원·고려의 기록이 존재합니다. 한국 측 전승에는 김씨 계통을 가리��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청나라 관찬서인 《흠정만주원류고》는 금나라가 신라에서 유래한 것이 의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신라 왕실의 김씨와 금나라 국호까지 연결했습니다. 그 뒤 누르하치는 여진족 국가를 세우며 다시 ‘금’, 즉 아이신 구룬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 후금이 청나라로 개칭됐고, 아이신각라 황실이 청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이 모든 기록을 모으면 금나라와 신라 김씨의 연관은 단순히 “금과 김의 한자가 같으니 같은 계통일 것”이라는 수준의 주장이 아닙니다. 금나라 황실의 시조 전승, 송나라의 현지 기록, 고려의 독자적 전승, 원나라의 정사, 청나라의 관찬 원류서, 후금의 국호 계승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자료가 모였는데도 아무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려면, 오히려 저처럼 관련성을 주장하는 쪽보다 더 많은 ��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국가'가 미리 정해놓은 결론은 때때로 사료보다 설명을 덜 요구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현재의 자료만으로 완안씨 금 황실과 애신각라 청 황실이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부계혈통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애신각라를 대상으로 한 유전학 연구는 누르하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일부 남성들의 Y염색체 계통을 제시했지만, 이를 신라 김씨 또는 완안씨 황족의 고대 유골과 대조한 연구는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유전학이 직계혈통을 100% 입증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계승은 DNA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집단의 시조 전승, 국호, 정치적 정통성, 민족명, 왕조의 기억도 계승의 실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나라와 후금·청나라가 밀접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후금이라는 국가 자체가 옛 여진 금나라의 이름을 되살려 세운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 신라 또는 고려에서 여진 완안부로 들어간 함보가 서 있습니다.
결국 중국인들이 정말 따져 물어야 할 질문은 “한국인이 왜 이런 주장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왜 금나라와 동시대였던 송나라 기록은 금 황실의 시조를 신라인이라고 했는가.
왜 금나라가 남긴 시조 기록을 토대로 편찬된 《금사》는 함보가 고려에서 왔다고 했는가.
왜 《고려사》에는 평주의 김씨 계통 인물이 여진으로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됐다는 기록이 남았는가.
왜 청���라 황제가 편찬시킨 《흠정만주원류고》는 “금나라가 신라에서 나온 것은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는가.
왜 누르하치는 자신의 여진 국가를 다시 ‘금’, 즉 아이신 구룬이라고 불렀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은 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반박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들이 배워 온 중국공산당식 국가 중심 역사관과 맞지 않는 기록을 외면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중국공산당식 역사서술은 오늘날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처음부터 하나의 중국사였던 것처럼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현재의 국경과 민족 구성을 과거로 소급하여 ���명하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여진, 거란, 몽골, 신라, 고려, 송, 금, 명, 청은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 서로 역할을 나누어 맡았던 지방세력이 아니었습니다. 각기 다른 정체성과 정치질서, 언어와 계보를 가진 역사적 주체였습니다.
현대 중국의 영토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모든 집단을 중국민족의 오래된 구성원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그 집단들이 한반도와 맺었던 계보적·문화적 연결은 주변부 교류 정도로 축소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설명이라기보다 현재의 지도를 과거에 덧씌우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결론을 먼저 그려놓고 옛 문헌을 그 지도 안에 단순 정렬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함보는 현대 국경선을 알지 못했습니다. 《송막기문》의 저자도 오늘날의 중화민족론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금사》의 편찬��� 역시 21세기 중국의 영토적 필요를 고려하여 “고려에서 왔다”는 문장을 쓴 것이 아닙니다. 《흠정만주원류고》 또한 오늘날의 중국공산당 역사교육 지침에 맞추어 편찬된 책이 아닙니다.
사료가 현대의 국가서사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금나라는 신라·고려와 깊이 연결된 시조 전승을 가진 여진 왕조였습니다. 그 금나라의 이름과 역사적 정통성을 다시 불러낸 국가가 후금이었고, 후금이 국호를 바꾸어 탄생한 왕조가 청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신라·고려계 시조 전승에서 금나라로, 금나라의 기억에서 후금으로, 후금에서 청나라로 이어지는 흐름은 충분한 문헌적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로 억지로 빼앗아 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가 현대의 단단한 국경선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금나라와 청나라를 오직 중원 한족사의 부속물로만 설명하거나, 반대로 오늘날 중국 영토의 선행 단계로만 정리하려는 시각이야말로 동북아시아 역사의 실제 모습을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만주는 중국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놓인 단순한 경계지대가 아니었습니다. 한반도와 북방세계, 유목과 농경, 여진과 고려, 금나라와 송나라가 만나고 충돌하며 서���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던 독자적인 역사공간이었습니다. 현재 어느 국가의 영토에 속해 있는지만으로 그 과거의 모든 관계를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이 사실을 불편해한다고 해서 자신들의 정사와 황실 관찬서에 남은 문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불편한 해석을 역사왜곡이라 부를 수는 있어도, 《송막기문》의 문장을 다시 쓸 수는 없습니다. 《금사》의 함보를 여진 토착민으로 바꿀 수도 없고, 《흠정만주원류고》의 “金之自新羅來無疑”를 없던 문장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역사는 현재의 국가가 허가한 기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국가가 가장 불편해하는 오래된 문장 하나가, 그 국가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거대한 역사서술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우리 집 택배기사님은.
1년 동안 초인종을 한 번도 누르지 않았습니다.
불친절한 줄 알았는데.
제가 잊어버린 부탁을 기사님은 계속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옆집이나 윗집에 택배가 오면.
복도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택배는.
항상 아무 소리 없이 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배송 문자를 늦게 확인한 날에는.
택배가 몇 시간씩 밖에 있기도 했습니다.
냉장식품이나 값비싼 물건을 주문해도 같았습니다.
결국 배송 요청사항에 적었습니다.
‘도착하면 꼭 초인종을 눌러주세요.’
그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옆집 초인종이 울린 직후.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택배기사님이.
상자를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기사님.”
“왜 저희 집만 초인종을 안 누르세요?”
기사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가리켰습니다.
“여기 아기 자는 집이잖아요.”
아이를 낳은 직후.
현관문에 안내문을 붙인 적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자고 있습니다.’
‘초인종 대신 문자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 종이는.
비바람에 떨어진 지 몇 달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저조차 잊고 있던 안내문을.
기사님은 계속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기가 조금 컸어도 낮잠은 자잖아요.”
“한번 깨면 부모님도 힘들고.”
알고 보니 기사님은.
상자를 내려놓는 소리까지 조심하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상자를 바닥에 먼저 댄 뒤.
손을 천천히 빼고 있었습니다.
초인종 대신.
배송 직후에는 문자를 따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이는 새벽부터 울다가.
겨우 잠든 상태였습니다.
초인종이 울렸다면.
다시 한참을 달래야 했을 겁니다.
저는 불친절하다고 오해한 것이 미안해.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1년쯤 지나.
아이는 택배 차량 소리만 들어도 현관으로 달려갈 만큼 자랐습니��.
저는 문 앞에 새로운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아이가 이제 초인종 소리를 좋아합니다.’
‘마음껏 눌러주세요.’
다음 배송 날.
처음으로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아이가 현관으로 뛰어가 외쳤습니다.
“택배 아저씨 왔다!”
문밖에서 기사님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는 눌러도 되는 집이 됐네.”
저는 이미 떼어낸 줄 알았��� 안내문을.
기사님은 1년 동안.
마음속에 붙여두고 있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삼전에 "땡큐" 한 진짜 이유
머스크가 테슬라 실적 발표에서 TSMC·삼성전자·마이크론을 콕 집어 감사를 표함. 상장사 CEO가 특정 공급업체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고맙다고 하는 건 흔치 않은 장면이라 시장이 술렁이는 중.
지금 AI 판에서 제일 귀한 물건이 메모리라는 게 이 감사의 배경. 다들 엔비디아 GPU만 쳐다볼 때 머스크는 그 GPU 옆에 붙는 HBM 같은 첨단 메모리가 진짜 병목이라는 걸 실적 콜에서 대놓고 인정하는 셈. "메모리 가격이 비정상적 수준까지 올랐다"는 말이 그 절박함을 그대로 드러냄.
머스크는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시설 '테라팹' 구상도 공개함. 설계부터 메모리, 노광 마스크, 패키징, 테스트까지 한곳에서 처리해 맞춤형 AI 칩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그림인데, 이 야심 찬 계획마저 충분한 첨단 메모리 확보가 전제라는 게 핵심.
내가 볼 때 머스크의 '땡큐'는 예의가 아니라 계산임.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에 고개를 숙이는 건, 앞으로 AI 경쟁의 승부처가 프로세서가 아니라 그 옆에 꽂히는 메모리��� 옮겨가고 있음을 그가 누구보다 먼저 읽었다는 신호임.
이재명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 갔음.
도착한 당일 하루에 만난 사람이 다리오 아모데이, 샘 올트먼, 젠슨 황, 혹 탄.
그리고 그 넷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무대에 섰음. 앞줄에는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이해진이 앉아 있었음.
들고 간 건 3조 달러짜리 계획서였음.
국내에서는 숫자가 너무 커서 과장 아니냐는 말이 나오던 참이었음.
근데 그 의심을 깬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었음.
1. 마이크를 잡은 최태원 회장이 꺼낸 건 전날 저녁 먹은 얘기였음.
전날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
젠슨 황과 만찬을 했고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도 같이 있었음.
메뉴는 마티니와 피자, 그리고 치킨.
한국 치킨은 아니었어도 미국 치킨도 맛있었다고 무���에서 굳이 덧붙였음.
그 자리에서 오간 얘기는 하나였음.
엔비디아가 앞으로 5년간 사 갈 칩이 얼마냐.
최 회장이 옮긴 말은 이랬음.
"젠슨은 계속 배가 고프다. 만날 때마다 아이 원트 모어라고 한다."
들은 숫자도 겁이 날 정도였는데,
다음에 만나면 그건 틀린 숫자라고 할 것 같다고 했음.
2. 젠슨 황은 그날 숫자 하나를 따로 꺼냈음.
대통령 면담에서 밝힌 SK와의 새 파트너십 규모가 5천억 달러.
원화로 약 730조 원임.
같은 날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엔비디아와 브룩필드가 네이버에 1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공개했음.
네이버 경영진이 토론토 브룩필드 본사를 다녀온 지 며칠 만이었음.
대통령이 무대에서 이 자리에 모인 기업들의 가치를 합치면 2경 원이 넘는다고 한 게 빈말은 아니었음.
근데 최 회장이 전한 나머지 세 사람의 주문이 더 중요함.
브로드컴 혹 탄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메모리가 필요하고,
그마저도 모자랄 수 있다고 했음.
앤스로픽 다리오 아모데이는 모델에만 집중하던 회사가 이제 컴퓨팅 인프라를 직접 짓기로 했다고 함.
그리고 샘 올트먼의 요청이 결정적이었음.
3. 올트먼은 다른 곳을 거치지 말고 오픈AI에 칩을 직접 달라고 했다는 게 최 회장의 전언임.
여태 거의 없던 얘기라고 했음.
오픈AI가 ���해와 내년에 쓸 컴퓨팅 파워가 들으면 놀랄 규모라고도 했음.
이게 왜 중요하냐. 메모리는 원래 사는 쪽이 줄을 서는 시장이 아니었음.
파는 쪽이 고객을 찾아다니고 값을 깎이던 시장이었음.
��런데 지금은 모델 회사가 유통 단계를 건너뛰고 생산자에게 직접 붙겠다고 하는 상황임.
줄이 공급보다 길다는 뜻임.
그래서 최 회장의 결론이 이랬음.
3조 달러는 허황된 숫자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숫자가 될 수 있음.
4. 여기서 한 번 뒤집어 볼 필요가 있음.
발표한 숫자가 작을 수 있다는 말은,
수요가 넘친다는 뜻인 동시에 그 수요에 맞춰 설비를 짓는 쪽이
한국이라는 뜻이기도 함.
3대 메가프로젝트는 반도체 팹 증설,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세 갈래임.
김용범 정책실장 설명 기준으로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 원 이상 투자 수요가 걸려 있음.
팹과 데이터센터는 3년에서 5년짜리 공사임.
반면 수요는 아직 계약과 약속의 형태로 존재함.
반도체 사이클이 꺾일 때는 늘 순서가 같았음.
주문이 넘친다, 증설한다, 주문이 식는다.
이번엔 다르다고 말할 근거도,
같다고 말할 근거도 아직 없음.
5.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건 네 가지였음.
대체 불가능한 AI 공급망 국가,
AI를 가장 빨리 쓰는 나라,
다른 나라���과 시장을 넓히는 허브.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AI 기본사회임.
혁신의 역동성은 유지하되 혜택이
특정 계층에 머무르지 않도록 새로운 분배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음.
아직 어느 나라도 완벽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도 같이 했음.
그리고 그 질문을 올트먼에게 직접 던졌음.
올트먼의 답은 현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기업 성과를 국민이 함께 나누는 지분 기반 모델이 낫다는 것이었음.
서밋에서 가장 조용히 지나갔지만 가장 큰 질문이 그거였음.
6. 정리하면 이렇다.
이번 서밋의 핵심은 한국이 AI 강국이 됐다가 아님.
한국이 AI 공급망의 병목이 됐다는 것임.
병목은 힘임. 젠슨 황이 730조 원짜리 파트너십을 들고 오고,
올트먼이 직접 달라고 하고,
아모데이가 직접 짓겠다고 하는 이유가 그거임.
동시에 병목은 청구서임.
그 수요�� 받으려면 800조 원을 먼저 넣어야 하고,
시점을 잘못 잡았을 때의 손실은 한국이 짊어짐.
이익은 칩값으로 들어오고,
그 칩 위에 올라탄 모델과 서비스의 이익은 대부분 저 네 회사 몫임.
그래서 진짜 승부는 팹을 몇 개 더 짓느냐가 아니라,
대통령이 던진 분배 질문에 우리가 어떤 답을 만��느냐임.
전날 저녁 마티니와 치킨 자리에서 확인된 건 수요였음.
그 수요가 우리에게 얼마나 남을지는 아직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음.
더 많은 종목 분석과 매수·매도 타이밍은 댓글이나 프로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우원식 의장의 해외 순방비용이 회자되는데,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국격을 잊은 지나친 걱정입니다.
우선 여권법 시행령에 배우자가 외교관 여권을 갖게 하는 것은 의장의 부부동반 외교가 세계관행이기 때문.
의장단 해외순방은 한국의 입법부 수장이 한���을 대표해서 방문하는 것이므로,
여야의 의원들이 다수 동행하고 보좌진들과 통역, 외교요원 경호요원등 실무진 몇십명이 수행하게 되지오.
한차례 순방에 5억 들었다는건 이 모든 분들의 항공비 식비 체제비 등을 합한 금액.
미국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일주일간 대만 방문 한번에 든 비용이 한화 3백억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은 군용 등 정부비행기를 이용하여,
국방부 회계로 잡히는데 우리는 모두 국회비용으로 잡혀 크게 보이지오.
낸시일행 대만순방후 미국의 시민단체 judicial watch의 정보공개요구로 국방부가 밝힌
Vip군용기의 한시간당 운항비만 해도 1만8천불 (2천5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워싱턴타임즈와 폭스뉴스 등이 보도했어요.
군사적 긴장을 고려한 항공모함 등의 비용은 뺀 계산.
우 의장 일행의 외교적 성과는 카타르 도하 메트로 미수금 2400억불 해결,
베트남의 한국기업 법인세 혜택, 루마니아 원전인력 체류기간 단축등, 셀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외교적 성과에는 눈감고 비용 82억 들었다고 탓하는건 과거 박정희 시대라면 몰라도, 오늘날 한국의 세계속 국격을 외면한 처사입니다.
제가 국회부의장과 외교통일위원을 할때, 선진국 의장단의 외교활동을 보아온 사람으로서, 알고도 침묵할수 없�� 한마디 하는 것을 양해바랍니다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20분 만에.
팀장이 전화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호자가 있다고 수술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다음 날.
회사는 저에게 권고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회사에 다닌 지 4년째였습니다.
아파도 급한 일은 집에서 처리했고.
야근과 주말 연락도 거의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연차는 매년 절반 이상 남았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종양 제거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아빠는 몇 년 전 돌아가셨고.
가까이 사는 가족은 저뿐이었습니다.
저는 수술 3주 전 연차를 신청했습니다.
팀장에게 사정도 설명했고.
결재까지 받았습니다.
업무자료와 비상 연락처도 모두 정리해뒀습니다.
수술 당일 아침.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20분쯤 지났을 때 팀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대신 미팅에 들어갈 직원이 준비가 안 됐대요.”
“지금 회사로 올 수 있어요?”
병원이라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팀장이 대답했습니다.
“수술은 보호자가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요.”
“미팅만 하고 다시 가면 되죠.”
이미 승인받은 연차이고.
자료도 모두 전달했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시 후 메시지가 왔습니다.
“오늘 출근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본인�� 책임져야 합니다.”
수술은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린 뒤.
엄마가 회복실에서 처음 한 말은 제 걱정이었습니다.
“회사 괜찮아?”
“나 때문에 일 망친 거 아니야?”
저는 아무 일도 없다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면담실에는.
팀장과 인사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업무 능력이 아니라.
제 ‘근무 안정성’이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가족 문제로 중요한 순간에 자리를 비우는 직원에게.”
“계속 핵심 업무를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4년 동안 가족 문제로 연차를 쓴 건.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회사는 권고사직서에 바로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명하지 않고.
사유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가족 문제 때문이 아니라.
조직개편과 ��무 조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휴대전화에는.
수술 당일 팀장의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며칠 뒤 회사를 나왔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실직보다.
엄마가 계속 미안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수술 때문에 네가 직장을 잃었구나.”
그래서 말했습니다.
“엄마 때문에 나온 게 아니야.”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엄마 수술 날 알게 된 거야.”
퇴사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오랫동안 담당했던 고객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침 경력직을 채용 중이었고.
함께 일해본 담당자가 저를 추천해줬습니다.
결국 이전보다 높은 연봉으로 입사했습니다.
새 회사 첫 출근 날.
전 직장 팀장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인수인계 자료만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통화 가능할까요?”
저는 짧게 답했습니다.
“퇴사 전 전달한 문서에 모두 정리돼 있습니다.”
“추가 업무 지원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더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 회사로 가지 않은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회사는 언제든 다른 직원을 채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나온 엄마가 처음 눈을 떴던 순간에는.
누구도 저를 대신할 수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