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유퀴즈 출연 거절한 이유
할머니 틀니 맞춰달라고 찾아온 중학생을 도와줬을 뿐인데,
그 학생이 의대생이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었다.
방송사에서 둘이 함께 나오라는 섭외 연락까지 왔었는데
원장은 결국 고사했다는 거임.
무의촌처럼 진짜 헌신하는 사람들이
나가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렵게 대학 갔다'는 프레임이 학생한테
평생 꼬리표로 남을까 더 걱정됐다고.
알고 보니 아버지도 치과의사, 어머니도 의사셨는데,
70~80년대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와 소매치기까지 무료로 진료했단다.
어린 시절엔 건달들이 어머니 앞에서
90도로 인사하는 모습도 봤다고.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진짜 방송을 타야될 분들이 많은데.
저야 뭐 그렇게 한번 한건데요"
방송 한번 안 나간 게 오히려 더 크게 남는 이유다.
이봉렬 기자
삼성 노조에서 호남 반도체 산단 조성 발표를 두고 노사정 협의를 해야 한다고 했대.
나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했어. 부천과 기흥이 삼성반도체의 시작이었지.
그러다 거기가 비좁아서 화성에 팹을 새로 지었지.
그 다음에 또 땅이 부족하니까 이번에는 평택에 짓고 있는 거고, 그 다음에 용인에 또 짓겠대.
모두 수도권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이제껏 기흥에서 화성, 평택, 용인으로 계속 확장하는 동안 노조에서 단 한 번도 그 위치를 두고 이따위 노사정 협의를 요구한 적이 없었어.
그냥 새로 팹 짓는 곳 주변의 아파트나 보러 다녔지.
그런데 호남에 짓겠다니까 노사정…, 야, 개XX들아.
삼성에서 중국 시안에 팹 짓고 거기에 매니저들 잔뜩 보낼 때 노사정 합의 했어?
미국 오스틴이나 테일러에 팹 짓는다고 엔지니어들 잔뜩 보낼 때 노사정 합의 했냐고.
나, 이 글을 광주 가는 KTX 안에서 쓰고 있어.
용산역에서 9시 19분에 출발한 KTX가 종착역인 광주송정역에 도착하는 시각이 11시 5분, 편하게 앉아서 1시간 46분이면 도착하는 거야.
네이버 지도를 펴고 용산역에서 대중교통으로 평택역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 차를 몰고 가도 1시간 24분이 걸려.
차 막히면 수도권보다 호남이 더 가까울 수도 있어.
이 조그만 나라안에서 그렇게 더 찢어 놔야 하겠어?
우리나라 안에서 회사가 필요로 인해 다른 곳에 생산시설을 짓는데, 니들 허락을 받아야 해?
지난번 성과급 협의 과정에서도 사내하청이나 협력업체와 연대하라니까, 니들은 공부를 잘해서 삼성 들어간 새X들이라 다르다며 연대 안한다고 했지?
난 니들보다 더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새X들을 본 적이 없어.
호남에 팹 지어도 니들 없이 얼마든지 운영이 가능해. 지금도 라인 내 대부분의 일은 하청업체 직원과 계약 맺고 일하는 장비 업체 엔지니어들이 다 하고 있잖아.
솔직히, 니들 뭐 돼?
가소로운 것들. 니들은 지금부터라도 국어 공부를 다시 해. 어찌 된 것들이 주제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설치고 있어.
이 카드뉴스를 퍼날라주세요!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협력개발기구(OECD)의 신뢰도 조사에서 9계단 상승하며 역대 최고인 6위를 기록했다.
행정안전부는 OECD가 지난 29일(현지시간) 발표한 ‘OECD 공공부문 신뢰도 조사’에서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조사 대상 38개국 중 6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순위에 올랐다고 30일 밝혔다. OECD가 격년으로 실시하는 조사는 OECD 회원국 33개국과 비회원국 5개국 등 주요국 38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국가별로 약 2000명의 국민이 온라인 설문에 답했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가
불매운동까지 번지며 논란만 가중 되고 있는
진짜 이유는 그의 과거 전적 때문이 아닐지…
모두 진의를 의심중임 ㄷㄷ
1. 면제 기준(103kg)을 1kg 초과한 체중으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고의 증량 의혹.
2. 나 홀로 20인승 벤츠 미니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로 출퇴근.
3. 조직적인 노조 설립 방해 및 직원 사찰 내부 문건 폭로.
4. 식당 여성 직원의 뒷모습을 동의 없이 찍어 SNS에 올리고 체형을 비하 함.
5. 세월호 추모 방명록 문구를 식재료 사진과 함께 SNS에 반복 사용.
6. SNS에 '멸공'을 반복 게시해 정치적 이념 논쟁을 일으켰으며, 이마트 불매운동과 주가 급락 초래.
7. SSG 랜더스 통합 우승 직후 돌연 감독 경질 및 단장 교체 등 비선 실세 개입 의혹.
8. 이마트 사상 첫 적자 및 전사적 희망퇴직 상황에서도 SNS에 골프·요리 등 여가 과시.
9. 비판적인 네티즌을 차단하거나 거친 언사로 감정적인 설전을 벌이는 등 지속적인 논란 자초.
우리 집 위층에는 거의 아흔이 다 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두 분은 늘 둘뿐이었다. 누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갈 때도 둘, 들어올 때도 둘이었다.
어느 날, 그분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집, 사시겠어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나는 이미 집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집을 또 사야 하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주신다면 3,300만원만 받겠습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이었다. 65제곱 정도..
시세로 따지면 최소 8,700만원 넘는 집이었다.
내 첫 생각은 이거였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직접 쓴 계약서였다. 글씨가 너무 반듯했다.
그 연세에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건은 세 가지 뿐이었다.
첫째, 3,300만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
둘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살 수 있게한다.
셋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집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넘긴다.
나는 두 분을 집 안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품 속에서 작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등기 관련 서류, 주민등록증 사본, 그리고 사망진단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아들의 것이었다. 서른 두살 간암.
한 장은 딸의 것이었다. 스물 아홉살 교통사고.
마지막 한 장은 유일한 손자의 것이었다. 일곱 살 백혈병.
사망한 해는 각각 2008년, 2011년, 2014년이었다.
종이 모서리는 전부 닳아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형편을 알아봤다고 했다. 대출도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사람도 괜찮아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집값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 있었다.
"우리 장례 보조금입니다."
두 분의 연금은 합쳐서 한 달에 약 136만원. 생활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섭다고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집 안에서 썩어가고, 냄새가 나고 나서야 발견이 될까 봐..
할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3,300만원을 받고 서류를 갖고 있으면, 그때부터 책임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 주고, 화장해 주고, 제일 싼 납골 자리 하나 잡아서 같이 넣어주면 됩니다. 남은 돈은 다 가져가세요.우리가 당신을 고용하는 겁니다."
나는 목이 꽉 막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 없이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안에는 세 묶음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두 분이 늘 먹는 약 목록과 건강보험 관련 서류.
두 번째는 장례식장 기본 상품 가격표.
가장 싼 193만원 짜리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세 번째는 통장 사본이었다.
잔액은 2,240만원 조금 넘게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비밀번호는 뒤에 적어 놨어요. 병원비가 부족하면 여기서 쓰세요. 남으면 그 3,300만원까지 전부 가져가세요. 공증도 하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잡을 못잤다.
머릿속에는 그 집 베란다에 걸려 있던 낡은 옷 두 벌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많이 빨아서 색이 바랜 옷이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네 시마다 위층에서 아주 작게 들리던 옛 노래 방송 소리도 떠올랐다.
사흘 뒤, 나는 현금 3,300만원을 준비했다. 두 분과 함께 공증을 받으러 갔다.
계약서에는 내가 한 줄을 더 넣었다.
나는 매주 최소 한 번, 위층에 올라가 두 분을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서명할 때 손을 심하게 떨었다.
지장을 찍고 나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겨우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위층에 올라갔다.
딱 3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두 분은 말이 많지 않았다.
나는 전구를 갈아주고, 수도꼭지를 고쳐주고, 문고리를 봐드렸다.
할머니는 가끔 직접 말린 무말랭이를 작은 봉지에 담아 내 손에 쥐여줬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곱 달 뒤, 어느 화요일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아침에 장을 보고 돌아오다 계단 복도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갔을 때, 할머니는 혼자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이미 차가워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아주 조용했다.
나를 보더니 한마디만 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두 분이 표시해 둔 가장 싼 장례 상품으로 장례식장에 연락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 베개 밑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11월 5일. 아래층 이웃이 와서 부엌 수도꼭지를 고쳐줬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내가 담근 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친 지 214일째 되는 날이다. 돈은 헛쓰지 않았다. 사람도 잘못 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화장한 지 37일째 되는 날 세상을 떠났다. 잠든 채로 갔다.
할머니 쪽 침대 협탁을 정리하다가 나는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내가 가져갔던 과일과 과자 포장지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들을 전부 깨끗이 씻어놨다. 반듯하게 눌러놨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는 새 통장 하나가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처음 드렸던 3,300만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예금주는 내 이름이었다.
나는 두 분을 한 쌍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납골묘에 모셨다.
가장 싼 곳은 고르지 않았다.
비석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떠난 해만 새겼다.
그 집을 정리하던 날, 햇빛이 좋았다.
낡은 가구들은 버리지 않았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는데,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 분이 3,300만원과 빈집 하나로 사 간 것은 내 돈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두 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내려앉을 그 기억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비싼 부탁일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크림케이크는
드라마 수사반장의 조연
탤런트 고 남성훈이 들여왔다.
그는 70년대 일본에서 생크림맛에 충격을받아
(구)여명제과를 만들었고 대한민국최초의
생크림 케이크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
생크림케이크 대중화는
파리바게트를 통해 이뤄져 빅머니가 되었고
여명제과는 신명제과로 이름을 바꿔
사업을 이어가다 고인의 사망이후
2016년 폐업했다.
버터케이크먹으며 생각난 김에
감사합니다 남선생님.
서울교육청 “2033학년도 내신·수능 절대평가…2040 수능 폐지”
별 의미도 없는 걸로, 학생들 3년 내내 고생시킬 것이 눈에 훤하네. 그런다고 창의력 교육이 되는 것도 아닌데, 이제 그런 환상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음. 주입식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시스템이 문제. 실제로 개인적으로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오히려 상당수준의 고도화된 지능체계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믿고 있음. 미적분에 대한 기본도 없이 어떻게 공학수학을 할 수 있으며, 창의력이 나올 수 있다는 건지... 입시는 그냥 수능 100%로 하고, 자유롭게 창업, 이직할 수 있는 노동유연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함
https://t.co/6p5pjUkzQ5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런가사 어케씀....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고 실패와 고뇌의 시간도 비켜갈 수가 없다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대잖어.... ㅜㅜ
나이가 2로 시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제발 드리고 싶은 말:
"아직 괜찮으니 뭘하든 지금 하세요"
지금 걱정하고 있는 그 모든게 3년을 투자하면 뭐든 결과가 나오기는 나와요. 29살에 3년을 더 투자한다해도 겨우 32살이에요. 그때도 아직 괜찮은 나이에요.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나이를 먹어요. 그럴바에는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나이드는게 훨씬 행복해요.
지금 하고 싶은일이 조금 참는다해서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가장 무서운게 5년, 10년 뒤에 "그때라도 할 걸"이라는 생각드는 거에요. 제 친구는 학교를 다시갈까하는 고민을 27살부터 37살까지 10년을 했어요. 27살에라도 전공을 바꿨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그 일로 경력 5년은 되어있겠죠.
당신의 시간을 당신이 원하는대로 쓰지 않으면 사라질뿐이에요.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요.
당신은 아직 괜찮으니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https://t.co/c6N7frv7Ez
뉴욕타임즈 "부유층의 새로운 유행 '도파민 단식'"
보자마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글이어서 퍼왔어 유튜버들이나 스피커에게 뇌를 자아의탁하고 극우화되거나 우매해지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멀리하고 독서를 자주 해야 겠다싶어 길어도 한 번쯤 읽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