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 제 책 첫 리뷰가 올라왔는데, 제 의도를 너무나 정확하게 읽어내셔서 소오름... 일부만 인용해 봅니다.
"박치욱 교수의 《인간 생존 연구소》는 인체를 단순히 생물학적 유기체로 보는 시선을 넘어, 수십억 년의 진화가 빚어낸 경이로운 생존 시스템으로 재해석합니다."
차라리 외국인 접객에 어려움과 메뉴 선택의 용이함을 위해 메뉴가 분리돼 있다고 고지만 하면 될것을.
후지클래식 컨트리클럽은 외국인에 1만엔 정도 더 받는다고 고지하고 있잖아. 히로시마 아키 골프장은 외국인��� 부킹하면 취소한다고 고지하고 있고.
그럼 선택할 수 있잖아.
FSD v14 Lite 이야기로 X가 뜨겁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국토교통부를 '현토부'라며 비난하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고요.
저도 사람들이 왜 그런 비판을 하는지 심정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이야기라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국토교통부는 현행법상 여러분이 원하는 FSD를 허용해줄 권한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공무원으로서 현행법에 따라 행정 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니 비난하서도 안되고요. 현토부 이야기는 적어도 이 경우에는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토교통부는 법령에 따라 현행 EU의 DCAS 01 규정을 KMVSS에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 절차가 마무리되면 테슬라는 거기에 맞춰 형식승인을 받을 수 있고 아마도 내년에 중국산 차량에 FSD를 배포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이 FSD는 EU의 DCAS 01를 준용한 KMVSS를 따라야하기 때문에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에서만 SIM(자동차선변경)이 되고 시내주행 때에는 SIM이 안되는 한국 버전이어야 할 겁니다.
따라서 테슬라가 한국만을 위한 한국 버전을 내놓을지도 불분명하고 만약 한국 버전을 내놓더라도 미국 버전은 물론이고 Article 39를 통해 규제 면제를 받은 EU 버전보다도 기능이 떨어지는 제약이 걸린 버전일 겁니다.
여기에 시간이 더 흘러 EU의 DCAS 02가 내년에 시행되고 그걸 KMVSS에 다시 적용된 후에 테슬라가 다시 형식승인을 받아 중국산 차량에 FSD를 새로 배포하거나 업데이트를 하더라도 시내주행에서 스티어링휠을 잡고 전방주시 하는 상태에서 SIM이 가능해지는 등 DCAS 01에서 02로 개정된만큼은 기능이 나아지겠지만 여전히 Ariclre 39로 규제 면제를 받는 기능은 안될 겁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되는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애먼 국토교통부를 탓하고 화풀이성 비난에 시간과 노력을 뺏기지 마시고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를 빨리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되는 현행법을 국회가 개정하게 해야 할 듯합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일을 어느 국회의원이 그리고 어느 당이 앞장설지 지켜보고 유도하고 해야 합니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차/기아 노조는 이런 상황이 그렇게 반갑지는 않을텐데 그런 분위기를 극복하고 법 개정에 앞장서고 결국 이뤄내는 국회의원과 정당은 더 칭찬하고 후원해 주셔야 하고요.
법이 제대로 개정되면 국토교통부는 그 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국토교통부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국회와 여러분들입니다.
결국 병실당 천만원 이상의 간병비 지출을 만들지만 본인부담 메리트는 없을테고, 질적인 향상은 턱 없다.
24시간 간병은 포기해야 한다. 차라리 중증 환자는 2인실로 케어하는 시스��으로 가야한다. 그 비용을 수가에 반영하고 간호인력이 담당하게 하면 훨씬 좋은 수준을 공급할게야.
복지부 너무 상황 편승태도가 장기적 재정이나 비전을 망치는 주범 중의 주범이다.
본인부담 줄어드는건 서울이나 경기권 요양병원의 경우이고 어쩌면 지방은 비용이 늘어날거다.
3교대 간병을 하면 서비스 질이 좋아지냐? 글쎄올씨다. 간병질과 연관되는게 인력의 수준과 강도 외에 없을텐데,
의료혁신 시민패널 토의.
취지는 이해한다.
지역 필수의료 문제를 국민과 함께 논의하겠다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
그런데 방식이 우려된다.
강의를 듣고, 팀별로 토의하고, 숙의해서 결론을 내는 구조.
의학교육에서 해온 TBL(team based learning), CBL(case based learning)과 꽤 닮아 있다.
직접 해본 사람은 안다.
이런 방식의 결론은 생각보다 강의자료와 진행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어떤 자료를 주는가.
어떤 프레임으로 설명하는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누가 토론을 조율하는가.
여기서 결론의 방향이 상당 부분 정해질 수 있다.
시민참여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시민참여라는 이름으로
이미 설계된 결론에 민주적 외피를 씌우는 일이다.
정말 공론화라면 자료, 반대근거, 전문가 구성, 모더레이터 원칙까지 공개해야 한다.
의료정책은
현장과 환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까.
@Sing_0925 후쿠오카 골프 여행에 와이프랑 늦잠 자서 비행기 놓치는 상황에서 동반자 두 명 먼저 보내고 공항카운터에서 티켓 구매해서 두 시간 뒤 도착 합류.
렌터카 수령하고 골프장에 전화해서(전화 처음해봄) 절반만 플레이 하고.
가는 비행기 안타면 왕복 모두 취소되는걸 모르고 귀국 카운터에서 또 발권…
좀비(?) 요양병원 퇴출?
아침 신문에서 ‘좀비 요양병원’이라는 활자를 보았다.
좀비란 걷기는 하되 살아 있지는 않은 ���재라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책의 잣대 또한 걸음이다.
걸을 수 있으면 경증이고, 경증이면 집으로 가도 된다는 등식. 행정은 이렇게 단정한 등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삼십 년 진료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삶이 등식으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열 걸음은 걸어도 숟가락을 쥐지 못하고,
세수 한 ��에 하루 기운을 다 쓰는 노인이 있다.
국가는 재기 쉬운 것을 재고, 재야 할 것은 재지 않는다.
서류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세지만,
가족은 그가 할 수 없는 일과 함께 산다.
이런 입원에 ‘사회적 입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병이 아니라 사정 때문에 누워 있다는,
은근한 낙인의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사정을 안다.
9년을 어머니 곁에서 쪽잠을 자던 딸이 끝내 쓰러진 자리, 거기에 병원이 들어섰을 뿐이다.
기묘한 일이다.
사회적 입원이라는 네 글자에서 정작 빠져 있는 것이 사회다.
비용을 아낀다지만,
비용이란 본디 사라지는 법이 없다.
자리를 옮겨 앉을 뿐이다.
나라의 장부에서 지워진 숫자는 어느 딸의 사직서에, 어느 아들의 새벽잠에 다시 적힌다.
장부는 가벼워지고, 삶은 꼭 그만큼 무거워진다.
그러니 다시 좀비를 생각한다.
��기만 할 뿐 살아 있지 않은 것.
삶을 만져 보지 않고 걸어 다니는 등식이 그렇고,
병상 곁에 한 번도 앉아 ���지 않고 쓰인 문장이 그렇다.
활자는 하루를 살다 가지만,
그 말에 베인 사람들은 오늘 밤도 누군가의 곁에서 깨어 있다.
https://t.co/YBBIiW8lDL
그래도 예전에는 postive 규제의 보완을 위해 ‘위 항목 중 몇 가지 이상인 경우’라는 단서라도 달았었는데, 언제가부터 폭력적이게도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로 바뀌고 있다.
목줄을 걸고, 손발까지 묶는 형국이다.
쓴 입맛에 여기에나 지꺼리는 말이지만, 세상을 이렇게 편평하게 보는 그들이 싫다.
텍스트로 세상을 구성하는 복지부-심평원이 내놓는 해답이 얼마나 얼척없는지 질의 대화를 하면 마지막은 ‘일단 그렇습니다’로 끝이 난다.
임상적 상황은 ‘어쩌구저쩌구…’해도 특정 항목에 해당하는 명시된 기준이 충분조건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냥 안된다.
그냥 not my pay g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