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은 위안부, 양공주라는 국가의 폭력 위에서 세워진 곳이고
강제이주, 보상 미흡 등의 문제는 수습되지 않은 채 재개발을 위해 혹은 꼴보기싫다고 빨리처리하려 듦
이 저항은 그곳에 있는 여성들을 위한 일임
그리고 중요한건 저곳이 사라진다해도 성매매는 안사라져요 형태가 더 다양해질뿐
갑자기 경찰서에서
"고소당했으니 조사받으러 오라"고
전화 오면 다들 머리가 하얗게 비지?
당황해서 그 자리에서 담당 수사관한테
이것저것 다 말하려고 하지 마라.
첫 전화 받았을 때
딱 이 3가지만 기억해라:
1. "고소장 정보공개청구부터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일정 미뤄라.
(상대방이 날 무슨 내용으로 고소
했는지도 모르고 조사받으러 가면
100% 말려든다.)
2. 전화로 수사관 질문에 엉겁결에
"아, 네.. 그랬던 것 같아요" 같은
모호한 대답 절대 금지.
3. 고소장 열람해서
내용 정확히 파악한 뒤에
진술 정리해서 가라. 죄가 있든 없든,
내가 무슨 혐의를 받는지 정확히 알고
대응하는 게 기본이다.
당황해서 첫 단추 잘못 꿰면
나중에 뒤집기 진짜 힘들어진다.
일단 저장해 두고 주변에 당황한 친구
있으면 보여줘라.
정보공개청구는
'열린포털(정보공개포털)'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5분 만에 신청 가능함.
편집부엔 꼰대가잇어야됨 실제로 나이도 많고 젊은애들 프린팅넝마 입고와도 자기는 셔츠 벨트 갖추고 종이신문 바삭바삭 읽고 데모한얘기는 안해줄려고하고 내향적이어야됨 안경껴야되고 여자는 머리짧아야되고 은근 성차별적이면서 살아있는 국립국어원이어야됨 집에 한쪽벽 누래진 녹색평론이어야됨
외교부는 심우정 전 검찰총장 딸 심아무개씨의 공무직 연구원 최종 합격을 취소했다고 17일 밝혔습니다. 심씨는 지난해 2월 국립외교원 공무직 연구원 채용에 지원해 서류·필기·면접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심씨의 경력이 과대 인정됐고 접수 기한 만료 후 제출한 서류가 받아들여졌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https://t.co/fVpJAvdCCH
배재고 사태 이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광주에 '좋은 피해자'가 될 것을 강요한다. 더 성숙하게 대처하고, 더 이해하고, 더 포용하고, 그래서 가해자 입장에서 더 편한 피해자가 되라고. 대체 왜 그래야 하나. 그날 그라운드에 있었던 건 같은 나이의 미성년자들이다.
한국 설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의 큰 테마로 반복이 된다.
구미호 → 인간이 되려고 함.
호랑이(단군신화) → 사람이 되려고 수행함
곰(단군신화) → 사람이 되어 웅녀가 됨
이무기 → 용이 되려고 수행함('상위 존재가 되려는 서사'라는 점에서 유사)
도깨비 → 인간과 혼인하거나 인간 사회에 편입되려는 이야기가 있음.
너무 가슴아프다 ㅠㅠ
나는 오래보는게 아니라 진실하게 만나는 것이 좋고, 관계를 보존하는게 아니라 관계를 경험하는게 더 좋은데.. 상처받을 가능성보다 아무일도 안 일어날 가능성이 더 답답해 나에겐...
안전하게 아무것도 안하는것보다 결과를 모르더라도 부딪혀 보는 게 좋다 ㅠㅠ
이준석 풍의 논리 놀음질에 너무 취약하심. 딱 그거임. 자기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대 의견을 지지하는 척하며 싸움을 붙임. 정작 싸움 붙인 자기는 사실 그 어느쪽도 별로 상관 없는 사람임. 그저 분란으로 상대방이 무너지는 것만이 목표일 뿐.
이자카야에서 혼술하면서 한화이글스 야구 보는데…
국민의례 하면서 한화 에오로 산재 사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한다는 중계진에 발언에 차마 짜증을 감출 수 없어서 껐다.
방산산업은 노조의 파업권을 없앴다. 그 결과가 뭔가. 8년간 13명이 죽었다.
제3자개입금지법이 사라졌지만 방산 업체에
알티가 돼서 덧붙이자면, 한나 아렌트는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를 구분합니다. 고독은 나 자신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긍정적인 사유의 시간이지만, 외로움의 경우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연결마저 끊어져 무기력해지는 파괴적인 상태를 의미하죠.
얼핏 날카로워 보이지만 사실 아주 흔한 논점 이탈입니다.
누군가 평등을 말하면서 강남 아파트를 사고, 명품을 사고, 자녀 교육에 특권을 누렸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건 좌파라서가 아니라 위선자라서 비판받는 겁니다.
그런데 일부 위선자를 들고 와서 평등, 공정, 복지, 자산불평등 문제 자체를 조롱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목사가 위선적이라고 해서
사랑이라는 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고,
판사가 부패했다고 해서 법치주의가 무의미해지는 게 아니며,
의사가 돈을 밝힌다고 해서 의료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평등을 말한 사람이 위선적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평등이 정당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말로는 자유와 시장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부동산 불로소득과 세금 회피를 누구보다 원하고,
청년 세대가 감당 못 할 집값 앞에 서 있는데도
“시장 원리”라는 말로 기득권을 방어하는 태도.
그것도 똑같이 추악한 모순입니다.
좌파의 위선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위선을 핑계로 자산불평등을 못 본 척하는 건 비판이 아니라 기득권의 자기변호입니다.
위선자를 비판하는 것과
불평등을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좌파 위선자가 싫다고 해서
강남 아파트가 갑자기 정의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 불로소득이 갑자기 노동의 대가가 되는 것도 아니며, 청년의 주거 절망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위선을 공격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구조의 불평등을 보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늘 사람만 물어뜯고, 정작 구조는 끝까지 못 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