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진숙 칼 갈고 기자회견 열어서 핵폭탄급 발언 던짐
“새천년NHK 김민석 씨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5·18 토론회를 개최한 저 이진숙과 5·18 전야제 날에 여성 도우미가 나오는 유흥주점에서 술판을 벌인 김민석 두 사람 중에서 누가 5·18을 모욕하고 폄훼한 것입니까?”
아까 올린 정원오 성동구청장 관련 글에 한 페친 댓글을 남겼다. 사회생활도 안해본 것처럼 왜 저런 소리를 하냐는 요지였다. 문득 호기심이 동해 포털 창에 그의 이력서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그의 화려한 스펙을 보며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서울시립대 부총학생회장, 전대협 선전부장, 구청장 비서실장, 임종석 국회의원 보좌관, 노무현 캠프 선거본부장, 민주당 부대변인, 성동구도시관리공단 이사, 그리고 성동구청장 3선.
숨이 턱 막히는 이 라인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명백한 팩트는 단 하나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민간 영역의 차가운 자본주의 시장에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20대 대학 시절부터 50대가 된 지금까지, 오직 학생 운동과 여의도 당사, 그리고 세금으로 굴러가는 지자체를 돌며 밥그릇을 채워온 완벽한 본투비 정치인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권력을 다투는 것도 사회생활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겠으나, 우리가 아는 출퇴근 지옥과 실적 압박의 그 평범한 사회생활과는 우주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기막힌 이력서 한 장에서, 한국 정치판을 지배하는 아주 서늘하고 핵심적인 통찰 하나를 얻어냈다. 바로 좌파와 우파의 좁힐 수 없는 전투력의 차이다.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의 이력은 몇몇 '예외적인' 케이스나 이번 정부들어 늘어난 보은인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원오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20대부터 아스팔트와 당사를 기어 다니며 정치 기술만 배운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치는 취미나 봉사가 아니라 유일한 생존 수단이다. 배지가 떨어지거나 선거에서 지면 갈 곳이 없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이라곤 투쟁, 위원장, 보좌관, 선거대책본부장뿐인데 어느 민간 기업이 이들을 환영하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선거판에 들어서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 흑색선전, 선동, 말 바꾸기, 안면몰수. 그 어떤 뻔뻔한 짓을 욕을 먹더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악착같이 버틴다. 여기서 밀리면 굶어 죽는다는 걸, 권력의 단물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완벽한 백수로 전락한다는 걸 뼛속 깊이 알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 정치인들은 어떤가. 우파 진영에서 저렇게 바닥부터 정치만 파고든 사람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그들은 대부분 판검사, 고위 관료, 의사, 성공한 벤처 사업가 출신이다. 애초에 자기 분야에서 엘리트 대접을 받으며 떵떵거리고 살다가, 명예직의 화룡점정을 찍기 위해 늦깎이로 여의도에 스카우트된 사람들이다.
당연히 이들은 멘탈이 약하고 맷집이 형편없다. 상대가 진흙탕을 뒹굴며 오물을 던지고 밑바닥 싸움을 걸어오면, 이 우아한 엘리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평생 1등만 하고 대접받고 살았는데, 굳이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정치를 해야 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에겐 대안이 너무나 많으니까. 국회의원 떨어져도 돌아갈 대형 로펌이 있고, 대학 강단이 있고, 내 이름을 건 병원이 있다. 한때 보수의 잠룡으로 불리던 남경필 전 지사를 보라. 가족 리스크가 터지고 정치판이 피곤해지자, 그는 쿨하게 여의도를 떠나 스타트업 업계로 가버렸다. 정치 말고도 잘 먹고 잘살 길이 널려 있는 자들의 본능적인 도피다.
생존을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는 굶주린 늑대 무리와, 주인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다 배가 부르면 사냥을 포기하는 혈통 좋은 사냥개의 싸움이다. 애초에 승부가 되는 게 신기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엔 그래도 국민들이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경력이나 삶을 돌아봐 우파를 찍어준 덕분에 조금은 승부가 가능했던 거 아닐까 싶다.
근래 우파가 매번 여론전에서 밀리고 진영 싸움에서 박살 나는 이유는 그들이 덜 똑똑해서가 아니다.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오의 빈틈없는 정치 이력서는, 잃을 게 없는 자의 독기와 언제든 도망칠 곳이 있는 자의 나약함이 맞붙었을 때 벌어지는 이 정치판의 잔혹한 결말을 가장 투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는 것 아닐까 잡생각을 해본다.
이 글을 통해 아마 많은 트친들이 날라갈 각오를 해야할 지도 모른다른 예감을 해본다. 그러나 정치관련 글을 쓴다는 건 어찌보면 마치 작두위에 올라간 것처럼 항상 위태로운 것이고, 옳다고 믿는 가치와 방향을 제시해야하는 것이라 믿으니까. 불편하실 수 있다는 거 미리 양해드린다.
나는 한때 꽤 괜찮다고 여겼던 한국의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왜 이토록 처참하게 후퇴했는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불편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성장하지 못한 건, 과거를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많은 국민이 ‘가장 호감 가는 대통령’으로 꼽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남긴 유산을 냉정하게 끊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입지전적인 이력이 주는 울림을 나도 안다. 내가 중도나 보수 그 어디쯤으로 넘어올 때, 감정적으로 가장 떨치기 힘든 사람도 그였다. 하지만 나는 내 판단을 바꿀 생각이 없다. 냉정히 말해 한국 정치를 ‘보복의 경연장’으로 만든 기원(起源)은 그의 죽음에 있다.
나는 그의 죽음이 너무나 무책임했다고 생각한다.
전직 대통령은 사인이 아니다. 역사의 평가와 법의 심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의무가 있는 공인 중의 공인이다. 그가 정말 억울했다면 법정에서 그 억울함을 다퉜어야 했다. 잘못한 게 있었다면, “내가 잘못했다”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것이 민주주의 지도자의 마지막 책임이다.
하지만 그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그 모든 절차를 증발시켰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이성의 영역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감정의 영역으로 강제 이동시켰다. 그 순간부터 한국 정치에서 ‘옳고 그름’은 사라졌다. 오직 ‘우리 편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조폭적 의리만 남았다.
그의 죽음 이후 정치는 이성이 아닌 ‘한(恨)’이 지배했다. 문재인 정권 내내 몰아쳤던 적폐 청산은 사법 정의가 아니라, “노무현을 죽인 저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굿판이었다. 진영 논리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상종 못 할 원수들을 죽이기 위한 전쟁으로 변질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과오가 드러날 때마다 노무현을 소환한다. 그를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도덕적 기저귀’로 삼는다. “검찰이 노무현을 죽이더니 이제는 이재명을 죽이려 한다”는 프레임. 이 광기 어린 선동의 뿌리는 결국 노무현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그의 비겁함은 죽음 이전에도 있었다. 한미 FTA가 대표적이다. 그는 FTA가 국익에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협상의 모든 그림을 그려놓았다. 하지만 지지층의 반발이 두려워 최종 체결의 도장은 찍지 않고 다음 정권인 이명박 정부로 떠넘겼다. 욕먹을 짓은 남에게 미루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 태도. 그 회피의 본능이 최후의 순간에도 작동한 것은 아닐까.
그를 신화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현실의 영역으로 복귀시키지 않는 한, 한국 정치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는 광기의 진영 논리를 만든 장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죽음으로 책임을 회피한 지도자를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사회에서, 살아있는 자들의 책임 정치가 설 자리는 없다. 이제는 그를 놓아줘야 한다. 아니, 부정해야 한다.
그가 떠난 후 한국 정치는 거대한 육아실이 되버렸다. 정치인들이 미성숙해서가 아니다. 유권자인 국민이 스스로 ‘유아기적 분리불안’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눈앞에 없으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처럼, 한국의 유권자는 자신이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추종할 대상을 찾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존재가 되버렸다. ‘개딸’이라 불리는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을 보자. 그들은 이재명을 대리인으로 보지 않는다. 지켜줘야 할 ‘아빠’나 나를 구원해 줄 ‘메시아’로 여긴다. 이성적 판단 회로는 꺼지고 종교적 신념만 남는다.
문제는 그들을 경멸한다는 중도나 우파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이재명이 싫다면서, 그 대척점에서 자신을 이끌어줄 또 다른 ‘강력한 지도자’를 갈구한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이 지독한 의존성.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쳇바퀴를 도는 근본 원인이다.
냉정해지자. 정치는 종교가 아니다. ‘서비스업’이다.
식당 주인이 밥을 맛없게 지으면 식당을 옮기면 그만이다. 주인에게 “나를 구원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거나, 맛없는 밥을 먹으면서 “우리 사장님 불쌍해서 어쩌나” 하고 우는 손님은 없다. 그런데 유독 정치라는 서비스 앞에서는 소비자가 을(乙)을 자처하며 공급자를 숭배한다.
대다수 국민은 여의도에 있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성실하고, 도덕적으로 산다. 당신들은 세금을 내고, 가족을 부양하고, 법을 지키며 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1980년대 잠시 거리에 나갔던 그 짧은 기억 하나를 훈장 삼아 평생 부와 권력을 누리는 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가. 그들이 당신보다 우월한 것이라곤 ‘뻔뻔함’밖에 없다.
이런 맹목적 추종은 정치인의 성장또한 가로막는다. 팬덤 뒤에 숨으면 과오가 덮이고 무능이 포장되는데, 누가 굳이 실력을 키우고 성찰을 하겠나.
성장이란 무엇인가. 과거를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틀릴 수도 있음을 깨닫고,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고통이 성장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과거를 부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과거의 망령을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좌든 우든 정치인들은 겉으로야 어떻든 내심 ‘노무현’을 꿈꾼다. 비극적으로 산화하여 지지자들의 영원한 부채의식 속에 사는 ‘성인(聖人)’. 아무도 감히 그를 비판하지 않는다.
정치 평론가나 유튜버들또한 입으로는 김어준을 욕하면서, 속으로는 ‘김어준’을 꿈꾼다. 사실 관계는 무시하고 자극적인 선동으로 거대 팬덤을 거느리는 그 ‘교주’의 지위.
정치가 서비스가 되려면, 국민이 먼저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왕을 모시는 백성이 아니라, 직원을 부리는 사장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분리불안을 떨쳐내고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고 차갑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치는 정상화된다. 그들을 숭배하기엔 당신은 너무나 아까운 존재다.
[수사권 독점한 경찰, 왜 갑자기 ‘나무늘보’가 되었나]
연일 단독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김병기·강선우 민주당 공천 비리 게이트 수사는, 이제 경찰의 의도적 지연 수사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핵심을 비켜 간 채 주변만 맴도는 이른바 ‘수사기피 쇼’는 이미 선을 넘었다.
과거 검찰 수사였다면 출국금지와 압수수색이 수차례 진행됐을 사안이다. 그러나 경찰은 법카 유용, 공천 헌금 비리 등 명백한 증거와 자료가 제시된 사안에 대해서조차 주범에 대한 강제 수사 개시를 미루고, 주변부 수사조차 ‘나무늘보식’으로 수사 흉내만 있다. 이는 사실상 비호이자 증거인멸을 위한 시간 벌기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사의 기본인 기밀성조차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점이다. 주변부 수사를 앞세운 사전 떠벌이식 수사는 말 맞추기와 증거 은폐의 시간을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부실·지연 수사가 의혹 당사자들에게 은폐의 기회를 제공하는 ‘서비스 수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나무늘보 수사로 인한 해외 도피, 휴대전화 교체를 통한 증거 인멸 시도 정황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는 수사 실패가 아니라 수사 책임의 문제다.
수사·기소 분리에 원칙적으로 동의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경찰이 수사권을 온전히 독점할 경우 우려됐던 부작용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적 관심과 분노가 집중된 사안조차 이 정도라면, 보이지 않는 민생 사범 수사는 오죽하겠는가..
검수완박 부작용의 표본이 아닌가 불안히다.
경찰의 의도적 수사 지연을 지켜보는 국민의 인내는 이미 바닥났다. 분노의 게이지는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 해법은 분명하다. 여야는 나무늘보가 되어버린 경찰 수사에서 벗어나, 특검으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대표 방탄에는 이리떼처럼 기민하던 민주당이 이 사안에서 돌연 나무늘보가 된다면, 민주당 공천의 총체적 비리를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될 뿐이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 역시 신속한 특검 관철을 위해 보다 결연하고 치열한 투쟁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깡패질에도 '급'이 있다: 미국은 '삥'을 뜯지만, 중국은 '뼈'를 삭힌다
솔직히 까고 말하자. 국제 정치판에 천사가 어디 있고 정의가 어디있는가?.
미국? 그래, 깡패짓 한다. 우리 방구석 민주투사들이 결국 석유 때문이잖아!라고 비웃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중요한 건 깡패질의 결과값이 천지 차이라는 거다.
미국이라는 형님은 심플하다. 이권을 챙기긴 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유와 빵은 던져준다. 비즈니스 마인드고 거래가 가능하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형님들은 장르가 다르다. 이들은 기름만 빨아먹는 게 아니다. 너의 영토와 민족, 문화는 원래 다 내 것이라며 아예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 티베트를 봐라. 위구르를 봐라. 그건 착취가 아니라 흡수이자 멸종이다. 빚더미에 올려놓고 장기까지 적출해 가는 사채업자보다 더한 놈들이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바보라서 성조기를 흔드는 줄 아나? 아니다. 그건 가장 처절하고 냉철한 생존 본능이다. 어차피 강대국이 털어갈 거라면, 내 영혼까지 털어가는 놈보다는 자유와 미래라도 꿈꿀수 있게해 주는 놈이 백 번 낫다는 계산이 끝난 거다.
미국이 오면 세금은 떼일지언정 장사는 계속할 수 있는데, 중국이 오면 가게 문 닫고 노예가 되어야 하니까.
방구석에서 도람프니 석유 도둑이니 비꼬며 쿨한 척하는 위선자들아, 현실을 직시해라. 니들 눈엔 검은 석유만 보이고, 독재의 감옥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숨통은 안 보이나?
미국은 지갑을 털어가지만, 중국은 영혼을 털어간다. 그 차이를 모르면, 다음 멸종 대상은 우리가 될 수도 있다.
@nylee21 법률가 한 명 또 있습니다.
대장동 관련 온갖 제보 받았을 것 같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전대통령 문재인. @moonriver365
현재 묵언 수행 中.
노무현 대통령님이 살아계셨다면 똑같이 아뭇 소리도 안 하고 계셨을지.
戰時에는 전현직 정치인들이 將帥입니다, 힘 없는 국민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