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원을 돌면서 병을 모을 거야. 한 병에 25센트니까
독일은 병과 캔을 살 때 보증금(Pfand)을 같이 내는데, 일회용 병과 캔은 법으로 25센트가 정해져 있다고 함. 돌려주면 돈을 돌려받는 구조인데 귀찮아서 안 돌려주는 사람이 많음. 그래서 이 병 한 개 한 개가 누군가의 수입이 됨
독일에는 병을 모아 돌려주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함. 그래서 생긴 문화가 "Pfand gehört daneben", 시간이 없거나 귀찮으면 병을 쓰레기통 옆에 두라는 뜻이라고 함
통 안에 버리면 쓰레기를 뒤져야 해서 힘들기 때문이라고 함. 심지어 쾰른의 디자이너가 쓰레기통에 끼우는 병 걸이 '판트링'을 만들어서 일부 도시에는 그게 실제로 달려 있다고 함
한국에 돌아와서 편의점 앞 쓰레기통에 빈 병을 버리려다가 한 번 멈칫했음. 옆에 세워놓으면 이상한 사람 될 것 같아서 그냥 넣었음. 근데 며칠 동안 그 생각이 났음
베를린 공원에서 맥주 한 병 마시고 빈 병을 쓰레기통에 던지려고 했음. 그 순간 옆에 있던 독일 친구가 내 팔을 잡았음
"넣지 마. 옆에 내려놔"
쓰레기를 바닥에 놓으라니 이상했음. 근데 주변을 보니 다들 병을 쓰레기통 옆에 세워놓고 가고 있었음. 줄 맞춰 세워놓은 사람도 있었음
병을 내려놓고 5분쯤 지났을 때 어떤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어와서 우리 병을 집어 가방에 넣었음.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사라짐
친구가 그 뒷모습을 보다가 낮게 말했음. "저분은 아마 하루종일
수상하게 봤다고 했음. 뭔가 숨기는 거 아니냐고
이유로 가장 유명한 설명은 칼뱅주의였음. 정직한 시민은 숨길 게 없다는 개신교 전통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많이 거론된다고 함. 집이 단정하고 커튼이 열려 있으면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커튼이 닫혀 있으면 소문이 날 수 있었다고 함
근데 집주인이 웃으면서 반전을 말해줬음. 사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풍습이라는 설도 있다고 함.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였음
요즘은 달라지고 있다고 했음.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다는 집이 눈에 띄게 늘고 있고,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함
한국에 돌아와서 거실 커튼을 열어놓고 자려고 해봤음. 3분 만에 닫았음
암스테르담에서 밤에 산책하다가 소름 돋았음. 집마다 커튼이 하나도 없어서 거실이 통째로 다 보였음
소파에 앉아 TV 보는 사람, 저녁 먹는 가족, 책 읽는 할아버지까지 전부 길에서 보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얼굴이었음
걷다가 창문 안 아저씨랑 눈이 딱 마주쳤음. 놀라서 얼어붙었는데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음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와서 집주인한테 물어봤음. 집주인이 웃으면서 말을 꺼냈음. "그게 원래 옛날엔 낮에 커튼을 닫으면 이웃들이
물을 여러 번 내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음. 소리가 신경 쓰여서
그 버튼 이름은 '오토히메'였음. 뜻은 소리 공주. 토토가 1988년부터 팔았다고 함. 공중화장실이나 사무실 건물에 쓰라고 만든 물소리 나는 장치라고 함
이 버튼 덕분에 한 번 갈 때마다 최대 20리터를 아낄 수 있다고 함. 그 습관이 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함
지금도 일본 여자 화장실 칸에는 버튼이 하나씩 붙어 있고, 들어가자마자 누르는 게 거의 습관이라고 함
한국에 돌아와서 화장실 칸에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벽에서 버튼을 찾고 있었음. 당연히 없었음
일본 공항 화장실 칸에 들어갔더니 벽에 음표 모양 버튼이 붙어 있었음
비상벨인가 싶어서 한참 쳐다봤는데 아무 설명도 없었음. 결국 호기심에 눌러봤음
그 순간 칸 안에서 갑자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쏟아졌음. 아무것도 안 했는데 25초 동안 계속
놀라서 문을 열고 나왔더니 밖에서 기다리던 일본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음. 번역 앱에 뭔가를 쳐서 화면을 내밀었는데 첫 줄이 "일본 여자들은 에도 시대부터
알고 보니 진짜 법이었음. 1963년부터 스위스에서는 모든 새 집에 대피소를 넣어야 한다고 함. 만들 수 없으면 지자체에 대피소 한 자리당 1500프랑을 내야 한다고 함. 방 세 개당 두 자리 기준이라고 함
법에는 주민 한 명당 지하에 1제곱미터씩 보호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나와 있음. 그 결과 2022년 말 기준으로 약 37만 곳에 930만 자리가 있고 인구는 약 870만 명이라고 함. 인구보다 대피소 자리가 더 많은 나라였음
친구가 마지막으로 옆방 문을 열었음. 안에는 와인이 가득 쌓여 있었음. "평화로워서 쓸 일이 없잖아. 그래서 와인 저장고로 써. 근데 문 두께는 그대로야." 실제로 일부 대피소는 와인 저장고나 파티룸으로 바뀌었다고 함
친구가 와인을 한 병 꺼내서 따줬음. 핵전쟁 대피소에서 마시는 와인은 이상하게 맛있었음
스위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지하실에서 소름 돋았음
계단 끝에 두께가 손바닥만 한 철문이 있었는데 손잡이가 금고처럼 돌려서 여는 거였음. 친구가 "열어봐" 해서 열었더니 안에 간이침대, 통조림, 환풍기, 라디오가 있었음
놀라서 쳐다봤더니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음. "우리 집 핵 대피소야. 이거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집이야"
집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게 법이라는 거였음. 그러더니 친구가 한마디를 더 했음. "근데 이게 없는 집은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