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샘
노종면의 기울어진 저울
노종면 의원의 글은 시작부터 '균형'과 '존중'을 자처한다.
"'보완수사권을 예외 없이 없애자'는 입장 자체는 결코 적대하지 않는다", "'공소취소 반대' 입장도 당연히 존중한다." 양쪽 모두를 포용하는 듯한 이 문장들만 놓고 보면 제법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서두의 선언을 지나 본문이 실제로 하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보완수사권 예외 존치'와 '공소취소 요구'를 향한 비판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왜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지, 왜 공소취소에 그토록 깊은 우려를 표하는지는 단 한 줄도 검토하지 않는다. 존중하겠다던 두 입장 중 자신에게 불리한 논거는 완전히 지워버린, 전형적인 '은폐된 증거의 오류'다.
이는 균형이 아니다. 반대파를 '선동'과 '딱지 붙이기'로 규정하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수사일 뿐이다. 시작부터 결론을 숨긴 채 판을 짜는 식이다.
더 근본적인 왜곡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안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버린 데서 발생한다. '보완수사권 범위 설정'은 사법 제도의 기틀을 짜는 제도 설계의 문제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 개인 사건의 공소취소'는 특정 권력자에 대한 개별적 처분 문제다.
이 두 사안을 '반개혁'과 '줄서기'라는 프레임으로 묶는 순간,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정당한 개혁적 목소리마저 졸지에 진영 내 분란 세력과 같은 부류로 왜곡되고 만다. 백년대계의 제도 설계와 권력자 구제라는 이질적인 문제를 같은 저울에 올려버린, 범주 자체가 다른 두 사안의 부당한 결합이다.
사법 제도의 온전한 개혁을 위한 원칙적인 요구는, 특정 인물의 구제를 둘러싼 공방이나 정치적 줄서기 논란과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독립적으로 다루어졌어야 했다. 사안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해야 할 노 의원이 도리어 이 프레임 결합에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결합을 순전히 계산된 정치적 전략으로만 보기도 어렵다. 사안의 경중도, 성격도 다른 두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인식적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증일 수 있다.
검찰개혁이라는 공적 대의와 대통령 개인 사건의 처리가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하나로 융합되어 있어서, 굳이 구분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이는 '개혁'이라는 가치가 '대통령 호위'와 완벽히 동의어가 되어버린 진영의 맹목을 무심코 노출한 장면에 가깝다. 전략적 결합이든 무의식적 등치이든, 둘 다 좋은 신호는 아니다.
이 글에서 가장 교묘한 프레이밍은 마지막 인용에서 정점에 달한다. 노 의원은 자기 주장을 정면으로 논증하는 대신, 열 달 전 조국의 발언 전문을 끄집어내 방패로 삼는다. '이 사람도 이미 예외를 인정했고 공소취소를 말했다'는 식의 '권위에 기대는 오류'다.
그러나 이 인용의 진짜 목적은 비판자들을 향한 논리적 덫이다. 조국의 과거 발언을 전면에 내세우는 순간, 이 주장에 반대하는 이는 암묵적으로 조국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진영 내 결속을 해치는 주범이 된다. 반대파의 입에 미리 재갈을 물리는 '우물에 독 타기' 수법이다.
결국 정책의 타당성을 다투던 논쟁은 슬그머니 '진영 내에서 감히 싸움을 거는가'를 묻는 진영 논리로 변질된다.
말로는 양쪽을 존중한다면서 실질적인 변론은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었고, 성격이 다른 사안을 결합해 합리적 반론을 차단했으며, 정책 논쟁을 진영 내 당위의 영역으로 치환했다.
균형을 표방한 글치고, 속내가 너무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노종면 의원의 글: https://t.co/nkCARR5y1V
@right_mind_2 투표가이드를 정청래의원이 올렸나? 저 가이드 올라온걸 가지고 정청래에게 답해라 말아라 하는 정민철은 저런걸 정청래가 하명, 지시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정민철은 본인이 지지하는 분께 그런 지령을 받고 움직여서 모두가 그럴것이라고 생각하는건가?
민주당의 뉴이재명들이 조국을 국회에 진입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선 패배를 감수하고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이유를 어느정도 알 거 같지 않나. 검찰개혁과 관련돼 있다고 이미 얘기했잖아. 청와대+뉴이재명들 작품이다. 헌법학 교수 출신 조국이 국회입성하면 마음대로 할 수 없거든.
백혜룡
“대통령님의 지시였던 '성과', 저는 5,400쪽의 기록으로 답했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입니다.”
2025년 10월 12일, 대통령님께서는 서울동부지검 세관 마약수사 합동수사단에 저 백해룡의 파견을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10월 14일 오후, 갑자기 경찰청장의 '백해룡 1인' 파견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절차가 무시된 파견 명령에 대해 '이의 제기'와 '거부 의사 표시'도 했습니다. 그러나 명령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단 공직자로서 복종의무를 택했고 결국 파견 명령에 응했습니다.
"공직자는 성과로 말해야 한다." 대통령님의 말씀을 무겁게 새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 한 달간 사법 전산망(KICS) 차단 • 통신수사 결재선 폐쇄 • 압수수색 영장 원천 차단 • 정식 직제조차 없는 고립 • 합수단 구성원 명단 및 수사서류 공유 거부 • 합수단 사무실 및 지검장실로 가는 통로 차단 • 사실상 백해룡 수사팀 유령 조직으로 방치.
수사 환경을 열어 달라며 보낸 공문만 20회. 돌아온 것은 침묵과 철저한 외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버텼습니다.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답하기 위해. 저와 팀원 4명이 만들어낸 성과는 5,400쪽 분량의 수사기록입니다.
✔ 국경의 안보 시스템이 마약 밀수 과정에서 어떻게 무력화됐는지 — 전산 자료와 기록
✔ 세관 연루와 공범 구조가 왜 수사되지 않았는지 — 아날로그·디지털 증거
✔ 검찰이 마약 밀수 범죄 구조를 파악하고도 핵심 자료를 외면·누락하고 사건을 축소·은폐 종결한 정황과 증거
✔ 영장 한 번 집행하지 못한 환경에서 오직 임의수사로 확인해 낸 5,400쪽의 실증 기록
이 기록은 정치적 구호가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만든 공직자의 성과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이 기록에 보인 답은 비난과 감찰이었습니다.
기록의 내용을 확인하기보다, 기록을 만든 사람의 입을 먼저 막으려 합니다.
성과를 요구한 국가가 정작 그 성과를 외면하는 것 — 저는 이것을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이자 직권남용의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더 이상 수사하게 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수사관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소임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제가 여쭙니다.
이 기록이 가리키는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성역 없는 수사 지시가 현장에서 왜 성역 앞에 멈춰 섰는지 확인하시겠습니까?
대통령님, 이제는 국가가 답할 차례입니다.
▶ 5,400쪽의 전말과 기록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 [블로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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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욱
< ‘합리성’이라는 함정: 최승호의 유시민 비판이 놓친 정치의 본질>
쿤밍의 낮,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스며든 단골 카페의 그늘에서 유시민 작가의 방송을 들었다. 그의 모든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출범 1년을 넘어선 정부와 집권당인 민주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경청해야 할 뼈아픈 조언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소회다.
어둠이 내린 숙소에서 펼쳐본 SNS에는 예상대로 뜨거운 설전이 한창이었다. 그중에서도 유 작가를 향한 최승호 전 PD의 비판이 단연 눈에 띄었다. 음모론적 가설을 경계하고, 전문가들의 조사 통계를 인용하며 정책의 다원성을 옹호하고,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들어 결과론적 과오를 짚어내는 그의 방식은 이성적 비평의 전형처럼 보인다. 언뜻 대단히 명징하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정치는 수학 공식이나 닫힌 실험실의 연구 과제가 아니다. 최승호의 글은 논리적 정당성의 외견을 갖추었지만, 정작 ‘정치 평론의 역할’, ‘통치 권력의 속성’, 그리고 ‘역사의 진짜 인과관계’라는 세 가지 지점에서 중대한 논리적 왜곡과 현실 오인을 드러내고 있다.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세찬 폭우가 창문을 두드리는 쿤밍의 밤, 잠 못 드는 필부의 마음으로 그의 글이 놓친 정치의 본질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평론의 ‘귀납적 경고’를 무책임한 ‘음모론’으로 폄하한다.
최승호는 유시민이 이재명 대통령의 ‘숨겨진 구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채 비판하는 것을 두고 "반증 불가능한 가설이자 억측"이라 몰아붙인다. 그러나 정치 평론가의 책무는 권력이 던지는 정제된 홍보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적는 것이 아니다. 인사의 편중, 개혁의 지체, 당 장악 시도 등 눈앞에 펼쳐지는 구체적인 정치적 징후들을 연결하여 그 막후의 ‘거대한 경향성’을 포착하고 선제적으로 경고하는 것이 평론의 본령이다.
특히 유시민이 대통령의 구상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은 것은 오만이 아니라, 오히려 평론가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정무적 절제다. 최종 종착지를 함부로 예단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권력이 걸어가고 있는 궤적이 ‘당의 자율성 해체’와 ‘독주’라는 위험한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경고한 정당한 귀납적 분석을, 최승호는 단순한 음모론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둘째, 정책의 다원성을 핑계로 ‘권력의 공약 후퇴’를 변호한다.
최승호는 민변의 보완수사권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므로 대통령의 속도 조절을 '의지 부족'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단히 객관적인 지적처럼 보이지만, 이는 권력기관 개혁이 가진 ‘정치적 선언성과 책무’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물타기 논리에 가깝다.
검찰개혁은 치열한 사회적 논쟁과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표출된 ‘시대적 명령’이자 정권의 핵심 공약이었다. 모든 정책에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집권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문가의 반대를 명분 삼아 개혁을 유예하거나 내용을 약화시키는 것은 대의 정치의 관점에서 ‘후퇴’이자 ‘약속 파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 유시민의 지적은 정책적 무지가 아니라, 권력이 대중과의 약속을 저버릴 때 발생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를 경고한 것이다. 최승호는 복잡한 기술적 대안과 통계 수치 뒤로 물러나, 본질적인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흐리고 있다.
셋째, ‘조국 사태’에 대한 인과관계를 완전히 뒤바꾼 전형적인 결과론적 오류다.
글의 핵심 고리인 조국 사태 인용은 최승호 논리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그는 "조국 임명 강행이라는 진영 결속의 선택이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키웠다"며 유시민의 공식을 반박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복잡한 맥락을 거칠게 단선화한 결과론적 오독에 불과하다. 당시 사태의 본질은 진영 결속이 과도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이 선출된 권력의 인사권에 집단 항명하며 전방위적 압수수색으로 정치에 개입한 ‘구조적 반란’이었다.
만약 그때 임명을 철회하고 후퇴했더라면 윤석열 검찰의 폭주가 멈추고 정권이 평화로웠을 것인가? 개혁의 칼날을 쥐어보지도 전에 검찰의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면, 정권의 정당성과 개혁 동력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정치 세력의 탄생은 임명 강행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 청와대와 여당이 강력한 지지층의 결속을 바탕으로 검찰의 저항을 단호하게 제압하지 못하고, 정무적 타협과 망설임으로 일관하며 돌파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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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말한 '화위귀(和為貴)'를 불의와 변절 앞에서도 실실 웃는, '좋은 게 좋은 처세'로 이해하시는군요
시시비비를 칼같이 가려 정의를 세우는 것이 진정한 화(和)의 시작입니다
유시민의 불같은 말(火)은 가짜 화의 얼음판을 깨부수고 진짜 통합으로 가기 위한 파쇄 망치올시다
이재석
좋은 평론, 바람직한 비평이라는 것은, ①내가 격파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주장을 ②최대한 선의로 해석하고 ③상대방 명제를 가지런히 정렬한 뒤 ④그것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깨뜨리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건 세대교체는 늘 옳다는 차원에서, 비평계 역시 세대교체는 있어야 하고 얼마든지 환영할 만하다.
모 의원은 최근 나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비유를 했는데, '젊은 이어령이 서정주를 들이받았을 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최근의 열기가 뜨겁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거기에 덧붙였다. '김동리도 있었지요'.
조롱, 독심술, 인물평, 파묘 등 논쟁과 사실상 무관한 명제들이 거침없이 난무하고, 그것을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공중파에서 틀고 있다.
나의 이 글은 특정인에 대한 지지도 비판도 아니고, 궁극적으로 정치평론도 아니다. 미디어 비평이고 커뮤니케이션 비평이다.
@jiwoongingoyang 김용은 왜 이렇게 까지 하면서 최고위원이 되고싶은건가?
정말로 당을 생각하고 정권에 도움이 되고싶다면 백의종군하면 된다.
임지웅씨말대로 선배들이 목숨걸고 지킨 민주주의고 민주당이다. 규칙을 지키고 따르면 될일이다.
특정인에 대한 특혜는 없다.
배국남
수십 년 동안 유시민을 지켜보고, 그리고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유시민이 ‘잠수함 속의 토끼’와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잠수함 속 공기가 없는 것을 빠르게 알아채는 토끼나 탄광 속 유독물질 유무를 먼저 아는 카나리아처럼 유시민은 우리 정치나 사회, 경제에 다가오는 재난, 위기, 불합리를 먼저 깨닫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의 비평과 평론, 현실 진단이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시민은 치열한 공부와 고민을 토대로 정치와 사회, 경제에 대해 비평하고 예견하며 또한 부당한 권력과 싸워왔다. 그것만으로 유시민의 역할은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유시민의 발언 반응을 보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생계형 평론가 혹은 촉탁·용역 유튜버의 속 보이는 행태가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유시민이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주야장천 떠들던 진보와 보수 언론이 발언의 맥락과 실체, 진의를 파악하지 않고 폄하하기에 급급한 것은 의제 설정 기능과 영향력에서 이미 특정 개인에 밀리는 재래식 언론의 민낯이자 최후의 발악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건강한 비판이 건강한 민주주의와 정당, 그리고 정권을 만든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던 정치인들이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비판을 할 때에는 혐오의 언어를 동원하며 비난하는 것은 권력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이비 정치인의 속내 표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평론가와 비평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면서 비평의 토대가 되는 공부도, 논리도, 지식도 부재하고 해석과 분석의 틀마저 턱없이 부족한 데도 이를 보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조롱과 자극·폭력의 힐난으로 클릭 수를 올리며 주목받으려는 작태는 방송과 미디어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국힘 시의원이 이제 갓 12살 초등생을 호텔에 데리고가 섹스를 했는데, 그 많던 여성단체 목에 핏대 세우고 나서는 곳 하나 없어. 경찰이 요구한 통신영장 "검찰"이 반려해도 피해자의 억울함은 눈뜨고 못보는(?) 김남희 고민정 조용하고. 이 아이가 당한 범죄는 내 이익과 관련이 없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