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엔 철이 없다.
20대엔 답이 없다.
30대엔 집이 없다.
40대엔 여유가 없다.
50대엔 일이 없다.
60대엔 낙이 없다.
70대엔 기운이 없다.
80대엔 살날이 없다.
대신에,
10대엔 친구가 있다.
20대엔 청춘이 있다.
30대엔 가족이 있다.
40대엔 자식이 있다.
50대엔 안정이 있다.
60대엔 손주가 있다.
70대엔 쌓아온 인생에 지혜가 있다.
80대엔 남은 시간도 감사로 채울 수 있다.
마음이 만든 세계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다섯 글자를 썼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다. 그때는 그냥 외워야 할 한자 성어 중 하나였다. 시험에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다섯 글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살면서 똑같은 상황이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고, 어떤 날은 무너질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컨디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상황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뀐 거였다. 일체유심조. 그 말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 말이 무서운 건 위로가 되는 동시에 책임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보인다는 건, 불행도 상당 부분 내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상황을 탓하는 게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체유심조 앞에서는 그 도피가 오래 통하지 않는다. 결국 돌아와서 묻게 된다. 지금 내 마음은 이걸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렇다고 이 말이 무조건적인 긍정을 강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힘든 걸 힘들지 않다고 우기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같은 현실 앞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선택하느냐가 곧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것. 그 선택의 여지가 항상 내 안에 있다는 것.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말 중에 지금까지 이렇게 자주 꺼내 쓰는 말은 없다. 일체유심조. 외운 게 아니라 살면서 계속 새로 발견하고 있는 말이다.
이준석 대표,
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에
분노하는 것이 사사로운 일입니까?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모독에
분노하는 것이 사사로운 일입니까?
일베류가 만드는 혐오 문화에 기대 사는 정치인답습니다. 허황되게 무슨 연산군까지 찾습니까?
일베식 혐오·조롱 문화는
민주주의를 좀먹는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대통령은 응당 이에 대응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혐오표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제한할 수 있을지 토론해야 합니다.
그게 공인이 해야 할 일이지요.
일베 수호에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다음 날에
혐오 옹호 메시지를 내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예전 본당 신부님이셨음. 강론 도중에 정치 얘기 그만하시라고 한 노인분이 일어서서 항의함. 지금 시대에 성당에서 얘기안하면 누가합니까라고 호통치며 정치얘기 싫으면 나가시라고 하심. 그 분 조용히 앉으심.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전도 성당에서 해서 사복경찰이 항상 성당앞에서 있었음. 전두환 때
선거 공보물이 왔고 진짜 많은 말이 하고 싶은데, 이게 진짜로 너무 이해가 안 가고 화가 나네... 군복 입고 선거운동 하는 것 자체가 (전역자라 할 지라도) 군의 정치적 중립 위반 아닌지? 그리고 심지어 내란당에서 한 건데 이게 문제적이라고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아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되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 역시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로 지켜져야 합니다.
영상은 24년 9월 발생한 실제 상황으로 미국 백악관이 매우 충격적(deeply disturbing)이라고 평가했고 존 커비 등 미당국자가 혐오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까지 언급했던 일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관련 조사와 조치도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조금 다행이라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신이었다는 점이지만, 시신이라도 이와같은 처우는 국제법 위반입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비극은 인권의 소중함이 무엇보다 최고이자 최선의 가치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
뼈아픈 상처 위에 남겨진 교훈을 반복된 참혹극으로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인류 모두가 상생하는 화해와 협력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어디에서든 인권은 최후의 보루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입니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픕니다.
나의 필요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으면 미안한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아무 잘못없는 우리 국민들께서 뜬금없이 겪고 있는 이 엄청난 고통과 국가적 어려움을 지켜보는 마음이 매우 불편합니다.
보편적 인권과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습니다.>
이스라엘, ‘전시 살해=유대인 학살’ 李대통령 발언에 “용납 못해” https://t.co/R9OOeMDSr3
이스라엘 스스로 확인한 시신 앞에서, 검증을 논하는 자들에게
서안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재명 대통령의 리트윗을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 불렀습니다. 그 한 문장이,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우리가 지금 다투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SNS 소통 방식이 아닙니다. 침묵이 당연해진 세계에서, 누군가가 마침내 그들을 보아주었다는 사실 앞에서 터져 나온 눈물입니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홀로코스트 전야에 유대인 학살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이준석 의원은 검증되지 않은 영상을 공유한 것이 외교적 무게를 망각한 경솔한 행동이라 비판했습니다. 명백한 궤변입니다. 이준석 의원이야말로 공격할 빌미를 찾았다는 생각에 실수한 겁니다.
먼저 사실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유한 영상은 2024년 9월 19일 서안지구 카바티야에서 촬영된, IDF 병사들이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건물 옥상에서 투척하는 장면입니다.
BBC,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가 사실로 확인했고, 바이든 행정부의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매우 충격적(deeply disturbing)“이며 “용납할 수 없는 끔찍한 행위”라고 공개 규정했습니다. 이스라엘 군 당국 스스로도 조사에 착수한 사건입니다.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악명 높은 계정’이라는 이스라엘 외교부의 주장은, 영상이 담고 있는 행위의 실재를 단 한 글자도 지우지 못합니다.
이준석 의원이 지적한 ‘검증 문제’는 개미 손톱만큼 정당합니다. 최초 공유 당시 ‘아동을 살아서 던졌다’는 설명은 부정확했고, 이 대통령 스스로 수 시간 안에 이를 바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생존자든 시신이든, 아이이든 저항군이든, 팔레스타인인의 몸을 건물 옥상에서 내던지는 행위는 제네바 협약이 명시한 시신 존엄 보호 의무를 위반하는 국제인도법 위반입니다.
더 결정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자체 수정을 마친 이후에도 비판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판자들의 진짜 문제는 ‘검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이스라엘의 행동에 감히 의문을 제기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외교부의 반론은 더욱 황당합니다. 그들은 이 대통령이 “테러리스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낡은 방패입니다. 하마스의 테러 역시 규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IDF의 전쟁범죄 의혹을 덮는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4년 1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를 방지하라는 잠정조치를 명령했습니다. 유엔 조사위원회는 2025년 9월, 국제법이 정의하는 집단학살 행위 다섯 가지 중 네 가지가 이번 전쟁에서 자행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식량과 물의 차단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SNS 발언이 아닙니다. 국제사회의 공식 판단입니다.
홀로코스트와의 비교가 불경하다는 이스라엘 외교부의 항의는 스스로 홀로코스트의 세계사적 비극성을 우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조차 반박하고 있습니다.
-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이스라엘계 미국 역사학자인 오메르 바르토프 브라운대 석좌교수는 이스라엘의 가자 작전을 집단학살로 규정하며, 2024년 5월을 기점으로 그 결론이 더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의 아모스 골드버그 교수는 가자에서 벌어지는 일이 집단학살이며, 이를 인정하기까지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작가이자 이스라엘인인 다비드 그로스만은 오랫동안 사용을 거부해 온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마침내 직접 사용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비교는 홀로코스트를 격하한 것이 아닙니다.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그 물음을 불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네타냐후 정권에게 있는지, 저는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이준석 의원은 “북한, 중국, 러시아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원칙의 일관성을 요구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수사적 장치입니다. 국가 수반의 발언이 모든 인권 침해국을 동시에 다루어야만 정당성을 얻는다면, 세상 어떤 지도자도 어떤 발언도 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 속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강제 징용, 그리고 민간인 학살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바로 그 역사의 고통 속에서 단련된 민족으로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무원칙한 편향이 아닙니다.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길어 올린 도덕적 일관성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저작 『휴전』 속에서 경고했습니다. 진짜 위험은 괴물 같은 악인이 아니라, 질문 없이 믿고 행동할 준비가 된 평범한 사람들, 기능하는 관료들에게서 온다고.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그 만행에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외교적 수습’을 논하는 목소리입니다. 레비의 경고가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저희가 바란 것은 단지 주목받는 것, 목소리가 들리는 것뿐”이라고 썼습니다. 기적을 바란 것도, 특혜를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인간으로서 존재를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 안에서 ‘국격’과 ‘외교적 실익’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습니다. 어느 쪽이 더 부끄러운 일인지, 역사는 반드시 기억할 것입니다. 보편적 인권이 외교적 계산보다 앞서는 것이 진정한 국격의 시작입니다.
사욕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는 자들을 매국노라 부른다.
매국 행위를 하면서도 사욕을 위해 국익을 해치는 것이 나쁜 짓임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아니 알면서 감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국익을 포함한 공익추구가 사명인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도 매국행위는 버젓이 벌어진다.
결국 이 역시 우리가 힘을 모아 가르치고 극복해야할 국가적 과제,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이다.
각국의 주권과 보편적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고 침략적 전쟁은 부인된다. 그게 우리 헌법정신이자 국제적 상식이다.
역지사지는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관계에도 적용된다.
내 생명과 재산만큼 남의 생명 재산도 귀하다.
존중해야 존중받는다.
<안중근의 기개, 116년 만의 이례적 귀환>
‘貧而無諂 富而無驕’(빈이무첨 부이무교)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말라.
순국 직전 뤼순의 차가운 옥중에서 남기신 안중근의 기개가 116년의 세월을 넘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제(20일), 도쿄도가 소장하던 안 의사의 유묵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의 공공자산을 대여받는 이례적인 결실을 위해 참 많은 분이 함께 뛰었습니다.
수많은 유묵 중에서도 이번 귀환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의 침략에 반대했던 작가 도쿠토미 겐지로가 안 의사의 필치에 담긴 ‘인류 보편의 양심과 기개’에 감명받아 평생을 소중히 간직해온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지성조차 고개 숙이게 했던 위대한 정신을 이제 우리 땅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귀환을 성사시키고자 일본 정치권과 소통하며 간곡히 협조를 구했습니다. 저의 진심에 화답해 준 일본 의원들과 가교가 되어주신 염종순 박사님, 지원을 아끼지 않은 권오을 장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께서 시진핑 주석에게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요청하셨던 간절함이 이번 유묵 귀환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오는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입니다.
비록 의사님을 아직 직접 모셔오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나, 이번 유묵의 귀환이 한일 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이끄는 이정표가 되길 소망합니다. 의사님의 유해 또한 온전히 고국 땅을 밟으실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하겠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의사의 숨결과 기개가 담긴 유묵을 직접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유묵에 찍힌 선명한 단지 장인을 마주하며, 의사가 꿈꿨던 길을 함께 되새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