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깊이 새깁니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흔들릴 때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새미래민주당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김대중 #서거17주기 #행동하는양심 #새미래민주당 #민주주의
이건 짜이밍한테 개헌 판 깔아주는거 아니냐? 이재명이 언제 지가 한 말 지키는거 봤음?
국힘당 아직도 정신 못차림?? 걍 무조건 안돼
“대통령 한 번만 한다 선언 먼저 하라”…야권, 이대통령 4년 연·중임 개헌론 정면 비판 (출처 : 네이버 뉴스) https://t.co/7ybT3gnQWR
5년간 흑자를 이어온 건보 재정이 1분기에만 3조 8,989억 원의 적자를 냈다. 30조 원대이던 누적 수지도 26조 원대로 주저앉았다. 고령화와 지출 증가라는 상수를 고려해도, 단 한 분기 만에 4조 원에 달하는 국가 복지의 여윳돈이 증발해 버린 속도는 충격적이다. 표면적인 수치의 추락을 넘어, "그래도 일은 잘한다"던 지지자들의 항변조차 궁색하게 만드는 서늘한 성적표다.
이 거대한 적자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돌발 변수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2024년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올해부터 본격적인 구조적 적자가 시작된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뻔히 예견된 시한폭탄이었다면 건조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다가올 파국을 알면서도 정부는 도대체 무슨 준비를 했고, 어떤 비상 대책을 마련했는가.
답은 절망스러울 만큼 공허하다. 수지 개선이랍시고 정부가 들이민 대책의 실체는 "국고 지원 20%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얄팍한 돌려막기가 전부다. 건보료 펑크를 국민이 낸 일반 세금으로 덮어 막겠다는 전형적인 조삼모사다. 심지어 적자 전환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보건복지부는 이재명의 대선 공약이었던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 같은 선심성 포퓰리즘은 포기할 기미조차 안보인다. 선심 쓰는 것도 곳간 사정은 좀 살펴가면서 해야하는 것 아닌가?.
재정 고갈의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리는 동안, 표가 떨어지는 쓴약인 의료·건보 구조 개혁에서는 철저히 손을 떼고 관망했다. 전임 정부가 외국인 피부양자 요건을 강화하며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무임승차 등 뻔히 보이는 누수 차단과 지출 효율화 작업은 국정 과제에서 완전히 실종됐다.
단 3개월 만에 4조 원의 적자를 내버려 두는 방관 앞에서, 지지자들이 맹신하던 유능론은 완벽한 허상으로 드러났다. 이 속도라면 26조 원의 누적 수지는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완전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게 뻔하다. 완벽한 적자의 늪에 빠지기 전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이 막대한 영수증은 결국 매월 월급명세서에서 꼬박꼬박 돈을 뜯기는 직장인들의 유리 지갑과 미래 세대의 어깨 위로 고스란히 얹힐 것이 자명하다. 급히 손봐야 할 곳은 방치하고, 조심스레 다뤄야 할 부분은 제멋대로 주무르는 참 여러 의미로 역대급 정권이다.
<이낙연의 사유>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입법이 마무리됐습니다.
명분은 개혁이지만, 내용은 잔인합니다. 약자는 피해가 커지고, 강자와 변호사만 좋게 됐습니다. 대통령은 사법권까지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됐습니다. 5개 재판을 없앨 방탄장치도 다단계로 완비됐습니다. 신형독재로 가는 고속도로가 열렸습니다. 사법붕괴의 단계별 후폭풍을 총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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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형사소송법을 읽어보지도 않았다며, 정성호에게 디테일을 물어보는건 패기가 아니라 떠넘기기 느낌!
진짜 막사네.
뭐가 어찌됐든 '내 죄만 지우면 돼' 라고 느껴져서 더 처연하다.
영상 마지막 "행안부와 법무부 원래 두분 친하잖아요. 크하하하" 그 소름돋는 웃음소리까지 들으신분만 댓글을 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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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밤새 피땀 흘려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어떻게 잘라 나눠 가질지, 반도체 공장 조감도 위에 얼마를 투입할지까지 정부가 친절하게 지침을 만들어 정해주겠단다. 주주총회와 이사회 테이블 위에 노동부가 행정 지침이라는 무거운 숟가락을 턱 하니 얹고 들어앉은 꼴이다. 시장경제의 기본이자 헌법이 보장한 계약의 자유와 경영권은 온데간데없고, 사기업을 국가의 하수인쯤으로 주무르려는 관제 경제의 나팔 소리만 요란하다.
이 신박한 지침의 출처를 따라가 보면 이재명의 지시가 자리 잡고 있다. 교섭과 쟁의의 범위를 정부 명령으로 구체화하라는 하명에 행정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결과다. 노조가 기업의 투자 판단이나 공장 이전 같은 고유 경영권까지 쟁의 대상으로 삼아 떼를 쓸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앞장서서 터주는 셈이다. 창의와 도전을 격려하기는커녕, 노조의 손에 '경영권 개입 관제 승차권'을 쥐여주는 선심성 정치가 눈부시다.
백미는 청년 고용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발적 퇴사 구직급여'다.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싣고 버텨내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세금으로, 제 발로 사표를 던지고 나간 이들에게 유급 휴직비 명목의 쌈짓돈을 쥐여주겠다는 참으로 경이로운 도덕적 해이의 창조다. 스스로 일터를 차고 나간 이에게 구직급여를 안겨주는 나라에서, 과연 누가 땀 흘려 현장을 지키고 묵묵히 내일을 일구겠는가. 일터의 근성을 기르기는커녕 국가가 앞장서서 '정부 돈으로 쉬는 요령'을 가르치는 꼴.
사기업의 이익은 노조와 나눠 먹는 몫으로 강제하고, 개인이 제 발로 차고 나간 사표의 뒷감당은 나랏돈으로 메워주는 나라. 이 극단적 대비 속에서 웃는 것은 공짜 좋아하는 일부와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거대 노조뿐이다. 반면 묵묵히 세금을 내며 현장을 지키는 기업인과 성실한 근로자들은 관제 포퓰리즘의 영수증을 처리하는 뒷설거지 담당으로 전락한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과 경영에 개입해 자율을 목 졸랐던 역사적 실험들이 어떤 비극으로 끝났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기업을 국가의 하수인으로 길들이려 드는 관제 경제의 오만함 속에서, 자율과 책임이라는 시장의 위대한 가치는 산산조각 난다.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그 만용의 대가를, 결국 또다시 국민의 주머니와 무너진 산업 현장으로 메우게 될거라는 사실이야말로 더운 날 가장 열 뻗히는 팩트다.
살인미수의 공포에서 겨우 살아남은 범죄 피해자가 "나를 구한 것은 검찰의 보완수사였다"고 피눈물로 증언하는데, 이념에 눈이 먼 자들이 찾아와 "네가 네 사건을 잘못 알고 있다"며 훈계를 두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실소조차 아깝다.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김진주 씨가 국회 좌담회와 SNS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반대하며 당시의 생생한 진실을 증언하자, 좌파 매체 오마이뉴스와 좌파 지지 먹물들이 일제히 들이닥쳐 해괴한 말장난으로 피해자를 가스라이팅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들고 나온 논리는 그야말로 기가 차다. 경찰이 단순 중상해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살인미수로 바꿔 기소하고, 항소심에서 청바지 감정과 DNA 재검증을 거쳐 강간살인미수로 공소장을 변경해 징역 20년을 이끌어낸 과정이 '검찰의 보완수사가 아니라 공판 절차상의 증거 조사일 뿐'이라는 아전인수격 궤변이다.
경찰이 초동 수사에서 놓쳐버린 성범죄 혐의를 검사가 법원에서 재감정을 신청해 밝혀낸 것이 보완수사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말장난으로 명칭만 다르게 부르면 경찰의 부실 수사와 검찰의 보완 성과라는 엄연한 팩트가 거짓으로 바뀔 것이라 믿는 그 신박한 정신승리가 눈물겹다.
이들이 억지 궤변을 늘어놓으며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드는 진짜 이유는 명확하다. 민주당이 입법 독주로 추진하는 '검찰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라는 정치적 신앙에 차질이 생길까 안절부절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밀어붙이는 사법 개혁안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검찰 수사는 백해무익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는데, 실제 범죄 현장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가해자의 성범죄가 밝혀지고 형량이 늘어났다는 피해자의 증언은 그들의 사상적 성역을 뒤흔드는 눈엣가시인 셈이다.
자신들의 정치적 당론과 진영 논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실제 범죄 피해자의 절규마저 "네가 법리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뭉개버리는 좌파의 오만함. 수사 기관의 권한 배분이라는 먹물들의 말장난 뒤에서 진짜 피눈물을 흘리는 것은 사법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할 무고한 시민들이다.
피해자가 겪은 끔찍한 진실마저 이념의 입맛에 맞춰 왜곡하려는 저 지독한 내로남불의 궤변 앞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사법 개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