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에 학교 내 동료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존중도 없는 교사들을 보면 왜 공교육이 무너지는지 알 수 있음. 학부모,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한국 사회는 학교라는 공공성을 지닌 공간을 존중하려고 하지 않음. 그저 자기의 이전투구의 장으로 생각할 뿐. 모두가 모두의 진상민원인일 뿐임.
“너 시대가 얼마나 한심한지 아니? 세계화라는 명분 하에 지구 전체가 우경화 되고 있어. 극우 세상이 돼 간다고. 얼마나 끔찍한 일이니? 최유미, 오일권 같은 권력 지향적 1%가 나머지 99퍼센트의 삶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거잖아! 그런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고 있는 거야 우리가”
평소에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욕먹는 토지공개념이 재개발 할 때만 반짝 하고 빛나지....
'주민 80% 이상 동의 받았으니 반대하는 사람의 토지도 강제수용 할 수 있다!'
내 땅 중에도 일부 재개발 예정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면적 좁으면 땅주인의 반대 따위 아무 의미가 없음....
2030인생이 꼬이는 패턴
이런 거 보면 결국 느끼는 건 하나임.
인생이 꼬이는 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질문을 붙들고 있어서라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할까"
이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함.
인간은 언제나 자기가 더 좋아하는 걸 선택함.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불확실한 성공보다 확실한 안정을 더 좋아했을 뿐이라는 거임.
그리고 요즘 2030이 실제로 망가지는 패턴이 두 가지라고 함.
첫 번째는 학습된 완벽주의.
알고리즘이 정보를 너무 많이 띄워주다 보니까
뭘 시작하기도 전에 알아야 할 게 산더미가 됨.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으로 행동을 미루다가
결국 남 인생 평가하는 평론가가 되어버리는 거임.
두 번째는 경험 찍먹.
지루해지거나 힘들어지면 "나랑 안 맞아"라고 해석하고 떠나는 패턴.
근데 어떤 일이든 초반 흥미가 끝나면 반드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구간이 옴.
그걸 적성 문제로 착각하고 도망치면 깊이 없는 이력만 수평으로 늘어놓게 되는 거임.
신기한 건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데 동기가 없었다"는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다고 함.
전력을 다했다가 실패하면 능력 부족이 드러나니까
대충 하면서 핑계를 미리 만들어두는 거라고.
물론 능력형이냐 취향형이냐 기질 차이는 있음.
근데 둘 다 공통적으로 필요한 건 결국 시간이라고 함.
그리고 핵심은 하나.. 어설프게 양다리 걸치지 말아야 함.
20대가 "능력주의에 순응하고 공정에 민감하다"라는 걸 주제로 한참 전에 이런저런 페이퍼도 뒤적거리고 나름 생각도 정리해보고 그런 적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매우 냉소적인 생각임.
20대가 정말로 "능력주의를 지지"하나? 진짜 능력주의하면 이들이 수용할까?
예를 들어, 시험쳐서 정규직 입사했다고 치고, 분기/반기마다 실적/성과 검사 또는 테스트를 통해 하위 20퍼센트 잘라내는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자.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런 제도를 이들이 과연 수용하겠느냐는 것.
능력주의는 수시로 그 능력을 검증하기를 요구하는 제도다. 그런데 그 힘든 시험경쟁을 통과한 이들이, 이제 정규직도 되고, 탄탄대로만 달릴 일이 남았는데 계속 그 능력을 ‘검증’받으며 살기를 원하겠느냐는 것.
그간 이런저런 관찰로는 인생 극초반에 결정되는 ‘한 두번의 시험’만 ‘능력’으로 간주하고 그 이후는 결정된 ‘신분’에 따라 지대추구를 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누구도 능력주의의 ‘불안함’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능력주의’로 포장된 ‘지대추구’는 원한다.
"공정에 민감"하다는 것도 마찬가지. 수능이나 고시 같은 시험 한번으로 "신분의 증명"을 가려내는 과정을 거쳤느냐/거치지 않았느냐를 "공정"이란 키워드를 쓰는 게 아닐까?
만약 그런 의미라면, "공정에 민감"한 게 아니라 "지대추구를 위한 신분 획득 과정의 공정"이라는 말로 풀어야 할 것.
능력주의나 공정 같은 말보다 그냥 “지대 추구” 한 단어로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물론 매우 냉소적인 시각이다. 검증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
나는 아동학대든 안전사고 책임이든 면책에는 반대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함. 또한 교실 내 수업만 하고 싶다는 정규직 중심의 교원노조들의 운동 흐름도 싫음. 나는 재작년 서이초 사태 관련 집회 과정에서 교사 운동의 흐름이 우경화됐고 솔직히 말하면 망했다고 생각함.
그니까 내 또래가 엄빠가 되는 걸 곁에서 보니까 이제 스루스루 눈에 보이는 거임.
애들을 올웨이즈 오구오구 오냐오냐 그렇게 키우는 이유가 예뻐서가 아니라...애한테 밉보이기 싫어서라는 게..자녀의 첫 번째 악당이 되어서라도 훈육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교에 외주 맡기기
학교에 숨 쉬듯 민원 넣는 사람은 모르겠지.
학교에서 자기 아이가 블랙리스트로 소문이 나서 학년이 올라가면 맡기를 꺼려하고, 그 아이가 뭘 못해도 민원 들어올까봐 어떻게든 가르치지 않고 냅둔다는 것을.
경계의 대상이 되어 교사가 보내는 무형의 애정은 절대 받지 못한다는 것을.
소탐대실.
요즘 사무치게 느낀다.. 너무 많은 걸 아는 건 절대 좋은 게 아니다 무지하고 낙관적인 시기는 스스로도 가장 행복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는 시기 같다...
무지함에서 나오는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들... 요즘엔 다들 어설프게 많이 알아서, 그런걸 보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한국의 이론 대가나 석학은 말하자면 지금 모두 ‘슈뢰딩거의 석학’이다(...) 뚜껑을 열고 관측적 개입을 해야 하는데 (...) 서로의 저작을 읽고, 인용하고, 그 사람에 대한 논문이나 책을 쓰지 않으니 슈뢰딩거의 석학들은 지금 계속 박스 안에서 존재하며 비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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