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페미니스트란 상태가 아니라 지향점이다. 페미니스트 선언은 단지 나는 남페미가 되었으니 다른 남성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만을 만끽하겠노란 선언이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한 끝없는 행동과 실천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선언일뿐이다. 나도 더 공부하고 노력하자...
킬리언 머피가 낙태 금지 헌법 투표를 하기 전에, 남자들에게 투표권 등록을 해서 여자를 사람답게 살게 하자는 요지로 찍은 설득 영상. 여성을 지지한다고 말만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는 게 슬퍼졌다. 한국엔 아예 없는 존재라서...
그러니까 대충 민주당의 스탠스는 ‘국힘은 싫고 치워버리고 싶지만 덩치가 커서 해산청구하긴 부담이고 선거법 개정으로 다당제 하는 건 우리 지지자 마음에 안 드니까 맘껏 형해화할 거고 골프 치면서 국정 파트너 예우는 해줄 거지만 맘에 안드니까 다 우리만 찍어서 없애줬으면 좋겠어’라는거죠.
지금 K-pop 산업은 소프트파워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봄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K-pop의 세계화를 위해 외국인 멤버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는 느낌
원래라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음악 → 외국인 멤버의 참여 → 한국 문화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관심 증가
라는 구조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재의 K-pop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익 극대화 → 국적별 팬덤 형성 → 자국 출신 멤버에 대한 강한 감정이입 → 국가 간 경쟁 구도 형성 →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반감으로 전이되는 구조가 형성됨
해외 팬덤(특히 개발도상국 출신)에서는 자국 출신 멤버를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 멤버에게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투영하는 모습을 보임 이들에게는 자국 출신 멤버가 한국인 멤버를 제치고 한국 대중에게 인정받거나 한국인 멤버보다 더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것은 단순한 아이돌의 성공을 넘어 자국의 위상이 한국보다 높아지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함
그렇다 보니 한국인 멤버는 같은 그룹의 동료라기보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자국 출신 멤버가 넘어야 할 경쟁자로 인식되고 한국 대중이 자국 출신 멤버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될 경우 그 불만이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에 대한 반감으로 확대되기도 함
이러한 현상은 한국 여성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고 생각함
해외 kpop 여성 팬덤에서는 아이돌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감정적으로 투영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남
한국 남성 아이돌의 경우에는 이성적인 호감의 대상이기 때문에 자국 출신 남성 아이돌과 반드시 경쟁 관계로 인식하지 않고 함께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 아이돌은 동경의 대상이자 자아를 투영하는 대상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한국 여성 아이돌이나 나아가 일반적인 한국 여성까지 자신이 넘어서야 할 경쟁 집단으로 인식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결국 아이돌을 둘러싼 이러한 경쟁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현실의 한국 여성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우리나라 여성은 한국 여성보다 예쁘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기회만 생기면 한국 여성보다 더 인정받을 수 있다” 와 같은 비교와 혐오가 kpop 해외팬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생산되는거임
이렇게 되면 K-pop을 통해 해외에 전달되는 한국의 이미지는 더 이상 음악과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호감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음
오히려 자국 출신 아이돌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과 팬덤 갈등이 한국에 대한 반감으로 전환되는 역설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게 됨
엔터 회사들이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지만 모로 가든 도로 가든 돈만 벌면 끝인 분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임..
김대중대통령님을 추도하며
전당대회가 끝나고 김대중대통령 추모식이다.
김대중 대통령!
행동하는 양심의 표상이신 분
세례명 토마스 모어
추도식장에서 왜 토마스 모어라는 세례명을 택하셨을까 생각해본다.
헨리8세가 대법관이자 정치가인 그의 신앙을 침해하고 굴종을 강요하자
그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과 정치적 입장을 지켰다.
하지만 헨리8세는 그의 침묵을 문제 삼아 반역죄로 기소하고 투옥하고
결국 참수했다.
정치인 김대중을 고난에 빠뜨린 것도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그를 지킨 것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의로운 양심이었고
그를 기릴 수 있는 역사적 스승으로 평가하는 것도 빛바라지 않는 양심이다.
행동하는 양심은 굴종의 반대 편이다.
양심은 직관과 사유의 바탕이다.
사유와 비판 능력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생기를 잃게 된다.
집체화된 하나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안목과 통찰은 무조건적 순응과 맹종으로 길들이려하는 풍토에서 길러질 수가 없다.
이번 전당대회는 위험했다.
내부를 향한 공격과 적대시는 제몸을 향해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과 같았다.
민주당의 저력,
권력 수렴식 단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심에 기반한 집단 지성과 사유가 민주당과 대한민국의 올바른 미래를 가꾸는 힘이 될 것이다.
김대중의 유산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자.
20대가 "능력주의에 순응하고 공정에 민감하다"라는 걸 주제로 한참 전에 이런저런 페이퍼도 뒤적거리고 나름 생각도 정리해보고 그런 적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매우 냉소적인 생각임.
20대가 정말로 "능력주의를 지지"하나? 진짜 능력주의하면 이들이 수용할까?
예를 들어, 시험쳐서 정규직 입사했다고 치고, 분기/반기마다 실적/성과 검사 또는 테스트를 통해 하위 20퍼센트 잘라내는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하자.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런 제도를 이들이 과연 수용하겠느냐는 것.
능력주의는 수시로 그 능력을 검증하기를 요구하는 제도다. 그런데 그 힘든 시험경쟁을 통과한 이들이, 이제 정규직도 되고, 탄탄대로만 달릴 일이 남았는데 계속 그 능력을 ‘검증’받으며 살기를 원하겠느냐는 것.
그간 이런저런 관찰로는 인생 극초반에 결정되는 ‘한 두번의 시험’만 ‘능력’으로 간주하고 그 이후는 결정된 ‘신분’에 따라 지대추구를 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누구도 능력주의의 ‘불안함’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능력주의’로 포장된 ‘지대추구’는 원한다.
"공정에 민감"하다는 것도 마찬가지. 수능이나 고시 같은 시험 한번으로 "신분의 증명"을 가려내는 과정을 거쳤느냐/거치지 않았느냐를 "공정"이란 키워드를 쓰는 게 아닐까?
만약 그런 의미라면, "공정에 민감"한 게 아니라 "지대추구를 위한 신분 획득 과정의 공정"이라는 말로 풀어야 할 것.
능력주의나 공정 같은 말보다 그냥 “지대 추구” 한 단어로 많은 걸 설명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물론 매우 냉소적인 시각이다. 검증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에 물대포를 쏘고 경찰방패로 얼굴을 찍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수진영은 공산당에 선동당한 폭도들이라 비아냥거렸습니다.
잠실 체육관에 물대포가 있습니까? 방패로 머리를 찍는 경찰이 있습니까?
평화시위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누구 덕분인지 감이 좀 오십니까?
탈정치는 구태가 만든 허상이며, 가족 친구들과는 머리아픈 정치사회이야기 안한다는 것은 사회성이 아니라 회피성이고, 에코챔버 내에서 반복하는 행동은 진보가 아니라 현실안주임 그렇게 행동하는 동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태극기부대가 되고있음 그걸 외면할수있는 제한시간이 끝나기 직전임